죽음을 공부하면 삶이 더욱 선명하게 보인다

김민수 2025. 4. 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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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지음 <죽음과 죽어감>

[김민수 기자]

초고령화 사회가 도래했다. 그러나 오래 사는 것만이 축복은 아니다. 인간답게 살지 못한다면 초고령화는 오히려 저주일 수 있다. 조너선 스위프트의 풍자소설 <걸리버 여행기>(1726)에 등장하는 스트럴드브러그(Struldbrugs)는 죽지 않는 생명을 얻었지만, 그것은 축복이 아닌 고통스러운 생존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영생의 삶이 아니라 유한한 생을 살고 있으며, 그 덕에 죽음이라는 '불가피한 경계'를 맞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행운을 누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닥치지만, 누구도 그것에 대해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이 문장은 <죽음과 죽어감>(2018년 1월 출간)이 전하는 중심 메시지 가운데 하나다. 죽음이 예외 없는 현실임을 알면서도, 정작 그것과 마주할 때에야 비로소 그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우리는 '웰빙'에 관해 많은 이야기를 하지만, '웰다잉'에 관해서는 여전히 침묵한다. 더욱이 억울한 죽음에 대한 진상규명을 불온시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죽음에 대한 논의는 필수적인 과제가 되었다.

죽음학 입문서 <죽음과 죽어감>
▲ 죽음과 죽어감/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 초판 8쇄(2023년 4월 10일)/ 청미출판사 / 가격 23,000원
ⓒ 청미출판사
최근 국내에서도 '죽음학'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한국싸나톨로지협회를 중심으로 대학의 계절학기나 특별강좌로 '죽음교육상담전문가' 과정이 운영되며,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죽음과 죽어감>은 입문서로 읽히고 있다.

이 책은 말기 환자들과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그들이 죽음을 어떻게 인식하고 받아들이는지를 생생하게 기록한다. 저자는 의학, 심리학, 인간학, 윤리학을 넘나들며, 죽음을 마주한 인간의 내면과 정서를 조명한다. 죽음을 다루지만, 결국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묻는 책이기도 하다.

저자는 의학과 심리학, 인간학과 윤리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죽음을 앞둔 이들의 목소리를 '있는 그대로' 들어주고, 그들이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깊이 있는 관찰과 인터뷰를 통해 기록하고 있다.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지만, 결국은 현재의 삶을 더 진실하게 마주하도록 이끌며,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준다는 점에서 '삶'에 대한 책이다.

죽음의 5단계

이 책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개념은 '죽음의 5단계'이다. 말기 환자들이 죽음을 맞이하면서 겪는 심리적 변화 과정을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다섯 단계로 설명한다.

퀴블러 로스는 이 단계를 단순한 시간의 순서가 아니라, 죽음을 앞둔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정서의 움직임으로 이해한다. 어떤 이는 부정을 오래 붙잡고, 어떤 이는 분노를 건너뛰며, 또 어떤 이는 수용에 이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각 단계가 그 자체로 의미 있다는 것이다. 단계마다 인간이 자신의 운명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위한 통과제의의 순간이 담겨 있다. 이 이론은 단지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사별과 상실을 겪는 이들의 애도 과정에도 폭넓게 적용되며, 이 책이 처음 해외에서 발간된 1976년 이후, 심리학과 상담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제1단계인 '부정과 고립'은 불치병의 진단 초기에 많이 나타난다. 불치병 진단을 받으면 대체로 이런 심리의 과정을 겪는다. 불치병에 걸렸다는 것을 부정하고 싶고, 왜 그런 병에 걸렸는지 화도 나고, 그 분노를 삭일 수 없어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결국은 타협하고 수용하는 단계를 거치게 된다는 것이다. 물론, 누구나 다 이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다. 타협이나 수용의 단계에 이르기 전에 죽음을 맞이하는 이들도 많은 것이다.

죽음과 죽어감에 대한 태도
▲ 죽음은 삶이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인간은 죽음을 향해서 간다. (chatGPT에게 명령어를 주고 그린 그림)
ⓒ chatGPT
아파트와 공동주택이라는 주거문화는 죽음을 우리로부터 소외시켰다. 요즘은 자기가 살던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일이 쉽지 않고, 설령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사망신고 절차가 복잡한 까닭에 병원에서 주로 죽음을 맞이한다.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가족들도 죽음으로부터 소외되는 현상이 장례 절차에서도 나타나는 것이다. 그리하여 현대인들은 과거에 비하여 죽음을 외면하고 부정하며, 불쾌한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가지게 된다. 불쾌한 것이므로 죽음에 대해 침묵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끝'으로 보지 않는다. 그녀에게 죽음은 말할 수 없던 것들을 말하게 하고, 마침내 침묵 속에 머물게 하는 일종의 진실의 시간인 것이다. 일반적으로 당사자에게 죽음을 '알리지 않는 것'을 배려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그녀는 이것은 비인간적인 방식이라고 말한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환자를 비인간적인 방식으로 무기력하게 연명하게 하기 보다는 진정으로 살도록 도움으로써 그들의 죽음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다."
- 62p

<죽음과 죽어감>에서는 이러한 구조적 침묵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기 환자가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고, 삶을 정리하고, 사랑하는 이들과 이별할 수 있도록 적절한 대화의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은, 인간에 대한 깊은 신뢰와 윤리적 책임을 전제로 한다.

함께 있는 법을 배우다

이 책은 궁극적으로 '어떻게 죽을 것인가'를 넘어, '어떻게 함께 있을 것인가'를 묻는다. 죽음을 맞이한 이들을 위로하거나 돕는 것은 단순한 기술의 문제가 아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곁에 있는 것이, 진단이나 격려의 말보다 더 큰 힘이 된다. 환자의 감정에 억지로 반응하거나, 희망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느끼는 감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태도, 바로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함께하는 자의 윤리다.

이것은 죽음을 맞이하는 당사자뿐 아니라 남아있는 가족들 역시도 죽음을 편안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서로가 서로를 돕는 것이다. 이때 죽음은 우리로부터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연결되어 '죽음과 삶'이라는 상호관계성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천안함 사건(2010), 세월호 참사(2014), 이태원 참사(2022), 채수근 상병 사망 사건(2023) 등을 통해 공적 죽음을 경험했지만, 여전히 제대로 된 애도에 서툴다. 죽음에 대한 성찰도 부족했지만, 무엇보다 진실 규명과 책임이 회피된 채로 방치되었기 때문이다.

책임 있는 이들이 죽음을 정치화하거나 덮으려 할 때, 사회는 집단적인 트라우마에 빠지게 된다. 죽음을 둘러싼 진실과 애도의 과정이 생략되면, 그 죽음은 기억되지도, 위로되지도 못한다. 결국 우리 사회는 죽음을 통과하지 못하고, 상처만을 안은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죽음을 통해 삶을 보다

<죽음과 죽어감>은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이 아니다. 이 책은 죽음을 외면하는 사회를 향한 경고이자, 죽음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위한 초대장이다.

퀴블러 로스는 죽음을 미화하지 않는다. 그녀는 죽음을 '삶의 가장 정직한 거울'로 제시하며, 그 거울 앞에 선 인간의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줄 뿐이다. 이 책은 병리학이 아니라 인간학이고, 심리학이지만 동시에 문학적인 울림을 지닌다. 그 어떤 분석보다도, 말기 환자들이 들려주는 짧은 문장 하나하나가 진실을 말한다.

초고령화 시대, 삶의 의미를 묻지 않으면 의미 없는 연명의 삶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 잘 죽는 것은 잘 사는 것의 완성이다. 죽음을 공부하면, 삶이 더욱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외면하고 있다면, 이 책을 반드시 읽어보기를 권한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싸나톨로지협회에서 주관한 '죽음교육 전문가 2급' 민간자격증 시험에 합격하여 죽음교육전문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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