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를 위한 '쉬운 도서관', 여기 있네요
[느린IN뉴스]
무심코 집어든 책이 너무 어려워 덮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걸쳐 겪고 있는 일상일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많은 정보들이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책을 읽고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가 높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12일부터 오는 18일까지는 '도서관 주간'이다. 책과 정보, 그리고 사람을 잇는 도서관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생긴 날이다. 최근 도서관은 정적인 지식의 저장소에서 벗어나 '도시의 거실'로 변모하고 있다. 점차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안에서 문화를 누리고 관계를 맺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찾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동덕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전공 도서관 서비스 기획 동아리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이다. 오늘은 정보취약계층, 그중에서도 느린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있는 '쉬운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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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덕의 마스코트인 새끼 오리 '더기'와 큰 오리 '부기'. 더기는 '피치마켓'처럼 정보 격차가 없는 사회인 복숭아 책에서 태어났고, 부기는 불공평한 정보 시장이 남아 있는 현대 사회를 뜻하는 레몬 책에서 테어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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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월 쉬운 도서관의 북큐레이션은 '반려식물'을 주제로 진행된다. 책장에 놓인 쉬운 글 도서들은 '쉬운도서관'이라고 검색하면 한번에 모아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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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달 전시는 '반려식물'이다. 이렇게 주제가 정해지면 반려식물에 관한 쉬운 글 카드뉴스를 만들고, 각자 반려식물을 소개하는 참여전시도 진행한다. 감수 과정에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도움을 받아 콘텐츠 소비자의 시선에서 내용을 검토한다. 북덕의 이진주 회장은 이 과정을 강조해 설명했다.
"동아리 내부에는 느린학습자 당사자가 없기 때문에 외부 감수를 꼭 거쳐요. 누군가를 위해 만든 콘텐츠라면, 그 누군가의 관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니까요."
느린학습자와 같은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북덕은 '모두에게 필요한 주제', '쉬운 문장과 단어', '직관적인 자료'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실생활에서 필요한 정보인지, 과하게 배려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는지를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든다.
예로, 초창기에는 '대출'과 '반납'을 '책 빌리기', '책 돌려주기' 같은 단어로 바꾸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단어는 모든 도서관에서는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각주를 통해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대신,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은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글을 만들면 실물 사진이나 직관적인 그림 등 시각 자료를 함께 넣어 이해를 돕는다. 이렇게 완성된 콘텐츠는 내부에서 제작한 체크리스트를 통해 다시 한번 검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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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진영 사서가 AAC(보완대체 의사소통) 존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설명하고 있다. AAC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장애인, 느린학습자, 고령자, 외국인 등)이 표정, 몸짓, 그림 등의 형태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말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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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북덕 멤버들과 장진영 사서가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쉬운 글 도서와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을 들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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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주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문헌정보학전공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이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편히 드나들던 부원들이 많았다. 그런데 전공 시간에 '도서관 공포증'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실제 현장에서 느린학습자를 접하며 모두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활동을 통해 도서관이 '큐레이션', '대출/반납' 같은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자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는 장이라는 사실을 배워나가는 중이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은 이미 법률 속에 명시돼 있어요."
현재 북덕을 이끌고 있는 이진주 회장은 동아리를 만든 1대 회장으로부터 수없이 강조받은 내용이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이 실천하고 있는 변화는 「도서관법」과 「서울특별시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등 법적 근거 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미 법과 조례 속에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 돼야 한다는 방향이 명시돼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문장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닿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획과 손길이 필요하다. '쉬운 도서관'은 바로 그 실천 중 하나다. 누구나 책과 정보를 누릴 수 있는 공간, 도서관이 진짜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움직임은 이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느린IN뉴스에도 실립니다.(https://www.slowlearner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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