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학습자를 위한 '쉬운 도서관', 여기 있네요

느린IN뉴스 2025. 4. 1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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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주간에 알아본 동덕여대동아리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

[느린IN뉴스]

무심코 집어든 책이 너무 어려워 덮어 본 경험이 있는가? 그런 일이 누군가에게는 일생에 걸쳐 겪고 있는 일상일 수 있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그 많은 정보들이 모두를 위한 것은 아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책을 읽고 도서관에 가는 것 자체가 높은 벽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지난 12일부터 오는 18일까지는 '도서관 주간'이다. 책과 정보, 그리고 사람을 잇는 도서관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생긴 날이다. 최근 도서관은 정적인 지식의 저장소에서 벗어나 '도시의 거실'로 변모하고 있다. 점차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안에서 문화를 누리고 관계를 맺는 커뮤니티 공간으로서 도서관을 찾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있는 이들이 있다. 바로 동덕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전공 도서관 서비스 기획 동아리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이다. 오늘은 정보취약계층, 그중에서도 느린학습자를 위한 콘텐츠를 만들고 있고 있는 '쉬운 도서관'의 이야기를 들여다봤다.

"북덕이는 도서관, 모두를 위한 책장을 만들다"
 북덕의 마스코트인 새끼 오리 '더기'와 큰 오리 '부기'. 더기는 '피치마켓'처럼 정보 격차가 없는 사회인 복숭아 책에서 태어났고, 부기는 불공평한 정보 시장이 남아 있는 현대 사회를 뜻하는 레몬 책에서 테어났다.
ⓒ 느린IN뉴스
동덕여자대학교 문헌정보학전공 도서관 서비스 기획 동아리 '북덕'은 2023년 7월 만들어졌다. 북덕이라는 이름은 '북덕거리다'에서 따온 말로, 책에 대한 열정과 흥미를 가진 부원들이 '모두를 위한 도서관'을 만들기 위해 모여 활동하고 있다. 귀여운 마스코트 오리 '부기'와 '더기'도 함께한다. 두 캐릭터는 각각 경제학 용어인 피치마켓과 레몬마켓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현재 북덕은 성북구에 위치한 성북길빛도서관과 함께 '쉬운 도서관' 프로젝트를 3년째 운영하고 있다. 성북길빛도서관은 가족 단위 이용자들이 많은 길음동 아파트 단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정보취약계층 사업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장진영 사서는 다양한 세대 이용자들이 찾는 도서관인 만큼 생애주기별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북덕과 함께하는 '쉬운 도서관'도 정보취약계층 대상을 위한 고민에서 시작됐다.
 3~4월 쉬운 도서관의 북큐레이션은 '반려식물'을 주제로 진행된다. 책장에 놓인 쉬운 글 도서들은 '쉬운도서관'이라고 검색하면 한번에 모아볼 수 있다.
ⓒ 느린IN뉴스
쉬운 도서관은 북큐레이션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다. 도서관에서 소장하고 있는 '쉬운 글' 도서는 현재 약 60권. 여기에 덧붙여, 북덕은 해마다 도서관, 올림픽 같은 특정한 주제를 정해 '쉬운 책장'을 연다. 북덕의 부원들이 주제를 선정하기 위한 아이디어 공유부터 제작물 제작, 감수, 전시까지의 과정을 모두 소화하고 있다.

이번 달 전시는 '반려식물'이다. 이렇게 주제가 정해지면 반려식물에 관한 쉬운 글 카드뉴스를 만들고, 각자 반려식물을 소개하는 참여전시도 진행한다. 감수 과정에서는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도움을 받아 콘텐츠 소비자의 시선에서 내용을 검토한다. 북덕의 이진주 회장은 이 과정을 강조해 설명했다.

"동아리 내부에는 느린학습자 당사자가 없기 때문에 외부 감수를 꼭 거쳐요. 누군가를 위해 만든 콘텐츠라면, 그 누군가의 관점을 반드시 확인해야 하니까요."

느린학습자와 같은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할 때 북덕은 '모두에게 필요한 주제', '쉬운 문장과 단어', '직관적인 자료'를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다. 실생활에서 필요한 정보인지, 과하게 배려한 표현을 쓰지는 않았는지를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든다.

예로, 초창기에는 '대출'과 '반납'을 '책 빌리기', '책 돌려주기' 같은 단어로 바꾸는 방향을 고민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단어는 모든 도서관에서는 사용되는 표현이기 때문에 각주를 통해 설명을 덧붙이는 방식을 선택했다.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대신, 실생활에서 자주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은 익힐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글을 만들면 실물 사진이나 직관적인 그림 등 시각 자료를 함께 넣어 이해를 돕는다. 이렇게 완성된 콘텐츠는 내부에서 제작한 체크리스트를 통해 다시 한번 검토한다.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은 도서관을 누구나 문화를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있다. 이진주 회장은 "쉬운 도서관이 생기면 '쉬운 책이 있다'는 걸 넘어서, '도서관 자체가 쉬워진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장진영 사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장 사서는 "학창시절에는 몰랐는데 사회에 나와보니 기본적인 정보도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걸 느꼈다는 이용자 분이 계셨다"며 "이런 이들이 정보에서 소외되지 않도록 돕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쉬운 글과 쉬운 도서관"이라고 말했다.
 장진영 사서가 AAC(보완대체 의사소통) 존에서 사용되는 도구를 설명하고 있다. AAC란 의사소통에 어려움이 있는 사람(장애인, 느린학습자, 고령자, 외국인 등)이 표정, 몸짓, 그림 등의 형태로 의사소통하는 방법을 말한다.
ⓒ 느린IN뉴스
성북길빛도서관은 북덕과 함께하는 쉬운 도서관 외에도 노인, 장애인 등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도서관에 마련된 AAC(보완대체의사소통) 존이 눈에 띄었다. 장 사서는 실제로 사용하는 인원은 많지 않지만 도서관이 이런 도구를 갖추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마치 쉬운 도서관이 도서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느린학습자를 비롯한 정보취약계층의 존재를 알리는 역할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는 도서관이 단순히 독서와 공부의 공간을 넘어 모두를 환대하는 공간이 돼야 한다며 앞으로도 포용적 공간으로서 도서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싶다고 말했다.
북덕 역시 쉬운 도서관에만 머물지 않았다. 학내에서 진행한 느린학습자 인식개선 전시를 비롯해 지난해 열린 '북돋움축제'에서는 점자를 주제로 한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때도 점자 키링 키트를 배포하기 전, 사용설명서를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다시 작성하는 작업을 거쳤다. 오는 19일 성북길빛도서관에서 열리는 느린학습자 관련 강연 행사 준비도 함께했다. 이 회장은 "앞으로 느린학습자뿐만 아니라 환경 등 사회적 가치를 가진 기업과 협업하며 활동을 넓혀나가고 싶다"며 포부를 밝혔다.
 북덕 멤버들과 장진영 사서가 정보취약계층을 위한 쉬운 글 도서와 의사소통 도움 그림 글자판을 들고 있다.
ⓒ 느린IN뉴스
"저희 부원들이 모두 처음부터 큰 목표를 가지고 들어온 건 아니예요."

이진주 회장이 웃으며 말했다. 문헌정보학전공생들이 모여 만든 동아리이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도서관을 편히 드나들던 부원들이 많았다. 그런데 전공 시간에 '도서관 공포증'이라는 개념을 알게 되고, 실제 현장에서 느린학습자를 접하며 모두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를 고민하게 됐다고 한다. 이들은 활동을 통해 도서관이 '큐레이션', '대출/반납' 같은 기능적인 역할을 넘어, 휴식과 만남의 공간이자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는 장이라는 사실을 배워나가는 중이었다.

"모두를 위한 도서관은 이미 법률 속에 명시돼 있어요."

현재 북덕을 이끌고 있는 이진주 회장은 동아리를 만든 1대 회장으로부터 수없이 강조받은 내용이라며 마지막 말을 덧붙였다. 북덕과 성북길빛도서관이 실천하고 있는 변화는 「도서관법」과 「서울특별시 도서관 및 독서문화 진흥 조례」 등 법적 근거 위에서 출발했다고 한다. 이미 법과 조례 속에는 '모두를 위한 도서관'이 돼야 한다는 방향이 명시돼 있는 것이다.

다만, 그 문장들이 실제 사람들의 삶에 닿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기획과 손길이 필요하다. '쉬운 도서관'은 바로 그 실천 중 하나다. 누구나 책과 정보를 누릴 수 있는 공간, 도서관이 진짜 '모두의 공간'이 되기 위한 작지만 단단한 움직임은 이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느린IN뉴스에도 실립니다.(https://www.slowlearnernew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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