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입니다, 당신은 어떻게 지내시나요?
[김상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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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안부> 스틸 |
ⓒ 연분홍치마 |
4월 16일이 돌아왔다. 11번째 맞이하는 사회적 참사의 기억이다. 해마다 잊지 않기 위해 매년 새로 등장하는 관련 작품을 소개해 왔다. 2025년에도 신작을 소개하려 했지만, 새로 등장한 작품들은 (주관적인 시선에서) 딱히 마음이 동하지 않았다. 심정은 이해가 가도 언급하기 부담스럽거나, 사전 정보가 부재한 터라 난처하던 중 뉴스타파에서 소식이 들렸다. 10주년을 맞이해 소개되었던 <세 가지 안부>를 1달 동안 온라인 공개한다는 것이다. 밀린 숙제 겸 반갑게, 한편으로는 부담 잔뜩 안고 보기 시작했다. 옴니버스 구성인 <세 가지 안부>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에 적합하게 개별 단편 별로 열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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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안부> 스틸 |
ⓒ 연분홍치마 |
다음으로 거센 분노의 대상으로 미디어가 지목된 이유에 관한 경험담이 소개된다. 그들이 겪어야 했던 혼란과 고민을 통해 사고 초반 전 국민이 목격한 무정부 상태 아비규환을 복기한다. 전례 없는 참사 앞에서 선진국이라던 대한민국 민낯이 폭로되던 기억이 고통스럽게 재연되는 순간이다. 언론인으로서 회의를 느꼈던 지점, 타인의 고통을 어떻게 '그림' 되도록 잡을지 집착하던 본인에 관한 혐오감을 고백한다. 그들은 인터뷰 와중에 종종 울컥하거나 눈시울 붉힌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녹음기를 휴대하고 카메라를 들이밀던 걸까?
관객이 지치지 않도록 적절히 조절한 당시 현장 자료화면이 소개되고, 그날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진도 체육관 현장을 비추며 인터뷰를 빌린 고백은 계속된다. '속보' 강박, 보도 명목으로 행해지던 폭력 속에서 하이에나처럼 휩쓸리던 기억을 소환하는 건 형벌과 다를 바 없지만, 그들은 증언해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은 고통 가득한 터널을 경유하며 언론인의 사명을 복습하고 작은 변화를 겪는다. 미래의 참사를 어떻게 대처할지 모색은 계속된다. 회개한 미디어들의 소소한 노력과 작지만 의미 있는 변화 사례와 여전한 한국 사회의 망각증상이 더불어 소개된다.
그렇게 제목 그대로 '회색지대'에 속한 존재들이 목격한 국가의 직무유기와 무정부 상태 참상을 반성하고, 미디어의 책무가 제안된다. 물론 고통을 나눠 짊어지는 일이다. 우리 사회가 흩어진 모래알이 아니라 유기적 관계로 연결된 공동체의 시민이란 전제를 확인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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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안부> 스틸 |
ⓒ 연분홍치마 |
'부자'도 막내 '호성'과 이별을 맞았다. 그는 첫째에게 각오를 밝히고 진상규명 활동에 합류했다. 거리를 누비며 예전엔 상상할 수 없던 분노를 토한다. 걸어 다니는 폭탄처럼 10년을 달려왔다. 여전히 할 일은 쌓여 있다. 그런데 예기치 못했던 문제가 엄습한다. 엄마는 한을 풀기 전에는 자식을 마음에서 지울 수 없다. 그는 자식의 방을 고스란히 놔두고 돌본다. 호성의 휴대전화 요금까지 계속 내가면서 답장 없는 문자를 계속 보낸다. 진상규명이 완료되기 전까지는 사망 신고도 할 수 없다며 보험료나 공과금도 꼬박꼬박 내는 참이다. 그 역시 단원고를 졸업하고 동생을 잃은 아픔을 간직한 큰아들은 곤혹스럽다. 모자 관계는 점점 악화된다.
어느 날, 순화는 아들 친구로부터 뜻밖의 동영상을 받고 이젠 다시 볼 수없는 창현의 생전 모습을 발견한다. 자신이 모르던 아들의 일면을 한참 늦게 목격한 엄마는 그저 반갑다. 한편, 부자는 큰아들과 화해를 도모한다. 아직 첫째에겐 만회할 기회가 남아 있으니 뭐든 해야만 한다. 오랜 서먹함이 단번에 해소될 리 없지만, 엄마는 찬찬히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침몰한 배에는 존재하지 않던 복원력이 엄마 품에서는 발생한다. 그렇게 마치 연옥에 떨어진 것 같은 유가족에 관한 편견을 꿰뚫고, 지난 10년 세월이 그들을 어떻게 단단하게 만들었는지 목격할 기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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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안부> 스틸 |
ⓒ 연분홍치마 |
그렇게 출발한 1997년생 인연은 2017년 옴니버스 다큐멘터리 <공동의 기억: 트라우마> 수록 단편 <어른이 되어>로 첫 결실을 이룬다. 이제 22살인 '애진'은 친구들의 죽음을 겪으며 진로를 변경해 응급구조사 과정을 밟고 있었다. 두 사람은 4.16 기억을 공유하며 어떤 어른이 될지 고민을 나눈다. 인연은 이어져 작업을 재개한다. < 드라이브97 >의 출발이다.
애진은 매년 친구 민지가 잠든 평택의 봉안당으로 향한다. 10년간 늘 그래왔다. 친구 '혜진'이 늘 함께였다. 민지-애진-혜진은 중3 같은 반으로 만나 '절친'이 되었다. 하지만 애진과 혜진이 '어른'이 되어가건만, 민지는 18살에 머물러 있다. 감독은 둘을 교대로 인터뷰하며 셋의 인연과 당시의 상황을 복기한다. 그들이 서로 의지하고 위로하며, 때로는 각각 속앓이를 겪으며 지내온 세월을 점검한다. 그동안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나 미디어 보도에 제법 등장한 애진의 사연도 흥미롭지만, 혜진의 존재감이 촉매 역할을 톡톡히 수행한다.
애진과 민지가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함께 진학해 2014년 4월 16일 생사가 엇갈렸다면, 다른 학교지만 여전히 둘과 친교를 유지하던 혜진은 한 친구의 생존을 기뻐할지, 다른 친구의 불운을 탄식할지 잔혹한 선택에 놓인다. 그런 아이러니를 애진에게 말하기도 어렵다. 그저 살아남은 이를 챙기고 위로할 뿐이다. 애진은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 열심히 살려 애써왔다. 그런 친구를 지켜보며 혜진은 그렇게 안 해도 된다며 수천 번 되뇌었을 것이다. 그러나 입 밖으로 내뱉을 수 없었다. 애진이 왜 그리 열심히 사는지 이유를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카메라 앞에서 10년간 묻어둔 외침을 간신히 끄집어낸 혜진 역시 여전히 그날 세월호에 결박당한 것처럼 느끼고 있었다.
감독은 그들의 여정에 동행하기로 결의한다. 마치 민지의 자리를 채우려는 것처럼, 동년배를 넘어 같은 기억과 경험을 공유하는 세대의 일원으로서 둘만의 상처와 슬픔이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렇게 이번엔 세 사람이 흰색 승용차에 올라타 민지에게 향한다. 의도적으로 마치 소풍이나 꽃놀이하듯 경쾌한 분위기로 담아낸 여행의 기록은 보통의 청춘 로드무비와 별반 다를 게 없어 보일 정도다. 그저 음울한 분위기를 피하고 싶은 게 아니라, 그 10년의 상실과 부채의식을 힘겹게 짊어지고 생을 이어온 이들 앞에 미래가 열려 있다는 전망을 관객에게도 제시하고픈 일념일 것이다.
죽은 이를 향한 추모와 고이 간직한 기억, 그들이 맞이할 수 없는 내일을 사는 우리들 삶이 절대 헛되면 안 된다는 집념이 유쾌한 감성과 어우러져 작품이 의도한 정조를 화면 가득 구현한다. 그저 아기자기한 팬시함과 궤를 달리하는,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기법의 적극적 활용과 함께 친구와 함께할 수 없는 현실을 극복하려는 노력 일부로 함께 정성 가득히 담은 미니어처 제작까지 뭉클함 속에서 '살아남은 자'의 의지가 분출한다.
◆ 더 나은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기억 투쟁의 장
옴니버스 작업의 대미를 장식하는 <드라이브97>은 과거를 반추하고 ("그레이존") 현재를 꿋꿋하게 감당하면서 ("흔적") 경유한 다음, 살아남은 자의 책임을 다하려는 굳센 의지를 전면적으로 표출한다. 그런 영화 전체의 기조에 딱 맞춤형의 기운이 넘실거린다. 기성세대의 한계와 오류를 넘어 고통의 기억을 망각이 아니라 더 분명히 명심하며 '세월호 세대'가 건설할 미래의 청사진을 화면에 구현하고 그런 의지를 확산하려는 진심의 작업이다.
<세 가지 안부>는 좌표 설정이 유독 돋보이는 결과물이다. 미흡한 진실 규명 때문에 2014년 참사 현장에 갇힌 채 연옥을 견디는 당사자가 적지 않은 상황에서 과거에 매몰되지 않고, 어떻게 다음 세대에 이 슬픔과 교훈을 전할지 치열한 모색이 구현된 이야기다. 3편의 구성 순서와 작품별 정서 모두 공히 정교한 토론의 결실인 셈이다.
이 옴니버스 다큐멘터리는 이제는 뻔히 어떤 내용인지 다 안다는 우리들의 망각과 오만을 일깨우며 우리 공동체 안에 거대한 '회색지대'가 존재함을 웅변한다. 회색지대가 과연 슬픔을 외면하고 진실을 망각해 이태원 참사처럼 거의 판박이인 사회적 참사를 되풀이할지, 비극의 교훈을 새겨 밝은 미래로 전진할 것인지는 공동체 시민들의 몫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인위적 재난의 피해자가 그저 '재수 없는 소수(the unlucky few)'가 아니게 하고자 우리는 11주년을 맞이해 다시금 그날의 기억과 대면해야 한다.
<작품정보>
세 가지 안부
Three Sides to Every Story
2024|한국|다큐멘터리|109분
감독 <그레이존> 주현숙, <흔적> 한영희, < 드라이브97 > 오지수
제작 연분홍치마, (사)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배급 연분홍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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