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 한참 넘은 사랑, 박은빈과의 피폐 멜로 매력 있더라고요"

장혜령 2025. 4. 16.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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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디즈니플러스 <하이퍼나이프> 설경구 배우

[장혜령 기자]

<하이퍼나이프>는 과거 촉망받는 천재 의사였던 '세옥(박은빈)'이 자신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스승 '덕희(설경구)'와 재회하며 펼치는 치열한 대립을 그린 메디컬 스릴러다. 메디컬 장르를 표방하지만 인물 간의 관계성을 중심에 두는 독특한 전개 방식을 택했다.

극 중 모두의 존경을 받는 세계 최고의 신경외과 의사 '최덕희'로 분한 배우 설경구를 4월 14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났다. 자신과 닮은 제자 세옥과 대결, 애증, 아가페 사랑을 펼치는 이상한 관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낸 장본인으로 이전과는 다른 캐릭터를 선보였다.

설경구는 자타 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영화배우지만 드라마, 시리즈에서는 신인에 가까웠다. 김희애와 투톱으로 등장한 넷플릭스 시리즈 <돌풍>을 시작으로 디즈니플러스 <하이퍼나이프>는 두 번째 OTT 시리즈물이다.

다음은 배우 설경구와 나눈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이상한 관계, 끝까지 따라와 줘서 기뻐
 설경구 배우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하이퍼나이프>가 종영했다. 소감이 어떤가.
"솔직히 작년 11월에 싱가포르 쇼케이스 현장에서 디즈니 라인업에 발표되었을 때까지만 좋았다. (웃음) 예고편이 잘 나와서 디즈니 본사의 반응도 좋고, 저도 고무되었다. (다 끝났으니까 말하는 말인데) 평범하지 않은 이야기와 캐릭터에 시청자들이 공감해 줄까 걱정했다. 4회까지 스크린으로 감상할 기회가 있었는데 늘 제 연기가 불안하고 어색하다. 특히 캐릭터의 감정선도 과잉되어 있으니까 온전히 집중하기도 힘들었다. 모두 공개돼서 다행이고 잘 받아들여 주셔서 감사했다.

<불한당> 때도 관객들이 둘의 관계성을 분석해 줘서 놀랐는데 <하이퍼나이프>도 '대체 저 둘의 심리는 뭘까' 분석하는 반응이 많더라. 지금까지 했던 작품 중에 분석이 가장 많은 것 같다. 잘 된 작품이 분석이 많이 된다는 말을 들어서 그런지 안심된다. (웃음) 생각지도 못한 반응, 네티즌의 분석을 듣고 보며 한 수 배우게 되었다. 이런 화제성이 시청자의 애정인 것 같아 기분 좋다."

-기존의 장르물과도 다르고 쉽게 공감하기 어려운 캐릭터의 충돌이다. 그럼에도 <하이퍼나이프>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뭔가.
"시나리오를 받고 감정이 묘했다. 글만 보고 선뜻할 작품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만난 감정, 일상적인 부딪힘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타고난 본능으로 연기하는 배우도 아니고 서로의 관계로 연기를 확장해 나가는 스타일이라. 은빈씨의 캐스팅이 큰 역할을 했다. 선한 역할을 주로 했던 은빈 씨에게 시나리오가 갔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작품 선택의 8할이었던 박은빈과 직접 호흡을 맞춰 본 소감도 궁금하다.
"은빈씨는 후배라기 보다 동료다. 덕희와 세옥으로 만나 물리적, 심리적으로 싸우는 게 재미있었다. 현장에서는 서로 동선만 체크하고 어떻게 하겠다는 약속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놀랐던 게 은빈 씨가 리허설 때는 소리도 안 지르다가, 슛 들어가면 갑자기 소리를 확 질러 버리더라. 연기가 아닌 실제 제 반응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계산할 수 없는 감정선으로 꽝 부딪혔을 때 나오는 즉흥성, 티키타카 주고받는 대화도 즐거웠다. 지금까지 현장에서 대화를 가장 많이 한 사람은 처음이다. 사적인 것부터 작품 이야기 등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이 장면에서 포인트를 주어야지'라면서 욕심내지 않았던 편한 현장이기도 했는데, 아마 상대방을 믿고 의지했던 게 가장 컸지 싶다."

-자신과 닮은 세옥과 처음에는 대결 구도를 보이다가, 갑자기 애증으로 변하고, 종국에는 이해하기 힘든 관계를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덕희의 감정선 완급조절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초반에는 한 명씩 사라지니 칼춤 그 자체였다. (웃음) 시청자에게 그게 불편하게 와닿을 수 있을 거다. 둘의 관계성을 설득해야 했고 살인을 잊게 하는 게 큰 숙제였다. 보편적으로 다가갔다가는 이해를 얻지 못할 캐릭터였다. 과잉과 비정상적인 캐릭터, 허구의 인물이라 생각하고 접근했더니 오히려 덕희의 감정이 이상하다는 생각을 못 했다. 8회에 한현호(박병은) 선생에게 세옥을 향한 마음을 고백하잖냐. 물론 세옥에게도 마음을 오픈한다. 덕희의 살인은 어리숙한 소통이라 생각해 점차 감정에 변주를 주었다."

-덕희와 세옥의 관계를 공감한다기보다,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이해한다고 봐야 하나.
"둘의 관계는 멜로라기 보다 '사랑'이다. 남녀, 부녀 관계도 아니다. 은빈씨가 어느 날 '피폐 멜로'라고 메시지를 보내더라. 그 표현이 딱이었다. 선을 한참 넘은 사랑이고 다 주는 사랑이다. 제자가 죽고 못 사는 수술방에서 내쫓고, 뇌를 다치면서 세옥이 떠오르고, 수술을 맡겨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때가 돼서야 '다 주자'라고 깨닫는다. 또 병을 악화시켜 세옥이 자기 뇌를 열게 만든다는 건 상식적인 개념도 아니다. 그래서 덕희는 살아도 산 인간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변주의 재미가 있는 새로운 작품
 설경구 배우
ⓒ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아픈 덕희를 위해 후반부 10kg을 감량해 화제가 되었다. 외형 변화를 두어 몰입을 유도했다.
"시나리오에 죽어가는 덕희의 최후가 적혀 있었다. 메마른 모습일 거라 상상했고, 감량을 염두에 두었다. 건강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덕희를 표현한다는 게 납득도 안 가고 저도 부끄러웠다. 그래서 마지막 촬영 때 쥐어짜면서 3일 정도 단식했다. 단식도 쉬면서 해야 하는데 촬영하면서 하니까 힘에 부쳤다. 다만 문제는 영화처럼 큰 스케줄이 나오지 않았다는 데 있다. 시간도 많지 않았다. 이해는 되지만 화가 나더라. (웃음) 어떨 때는 하루에 과거와 현재를 번갈아 찍을 때도 있었다. 흰머리를 한 올 한 올 심어서 한 시간 반 정도 작업해야 하는데, 사고 자체를 전환하는 게 쉽지 않았다. 외모는 금세 변했지만 마음이 확 바뀌지 않아서 내내 불편했다."

-목소리마저도 병이 악화될수록 달라진다. 평소 말투와 성량과는 차이가 느껴졌다.
"캐릭터의 반대 성향이 뚜렷했다. 덕희는 '차다', '어둡다', '감정을 안으로 넣는다'였고, 세옥은 '뜨겁다', '밝다', '감정을 밖으로 내 짖는다'였다. 세옥은 조폭, 경찰 등도 만나지만 저는 주로 세옥만 만나니. 매력도 없고 재미도 없을까 봐 애드리브도 치고, 빈틈을 찾아 들어가게 되었다. 저만의 변주를 주려던 의도다. 잘 들어보면 쇳소리, 장난기 어린 소리, 투정 같은 소리도 번갈아 낸다. 덕희는 뇌에 대해서는 완벽한 사람이지만 다른 관계는 어리숙한 사람이다. 사회성도 없고 인간관계 맺는 것도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이다. 하지만 어느 면에서는 둘이 같은 사람처럼 보이도록 했다. 덕희는 허둥지둥이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지만 아이 같은 면도 살짝 보여주었다. 자기 생각을 들켰을 때 흔들기도 하는데 세옥과 같은 눈높이에서 싸워보자고 시도했다. 어른이 애 다루듯이 말고, 저도 유치하게 행동하기로 했다."

-<하이퍼나이프>를 통해 변주의 의미를 알게 된 것 같다. 앞으로 작품 선택 기준이나 캐릭터도 변화를 맞을 것 같나.
"매번 달라질 거다. 변주를 해보면 생각의 폭은 넓어지지만 자칫 잘못하면 캐릭터가 망가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잘 살피고 해야만 한다."

-평소 전문직 역할을 많이 했지만 의사 캐릭터는 처음이다. 의학 용어도 많고 수술 장면도 찍어야 했을 텐데 어려움은 없었나.
"메디컬 소재지만 다행히 의학 용어가 많지 않았다. 그전에도 의학드라마 제안이 들어오면 '이걸 다 어떻게 외우나' 싶어서 겁을 먹었더랬다. 머리로 이해가 되어야 외워지는데 잘 못하겠더라. 아마 모든 에피소드가 의학 용어라면 힘들었을 거다. 수술 장면은 어려워서 교수님께 부탁했다. (웃음) 수술 교육을 몇 번 받긴 했는데 워낙 조심스럽게 다뤄야 했고 디테일도 살아야 했었다. 저는 잘 안되더라. 은빈 씨는 교육받고 빨리 배워서 인서트도 직접 찍었을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얼마 전 <조명가게> 인터뷰에서 김민하 배우가 연기의 길을 열어준 은인이라 말했다. <파친코> 이후 승승장구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떤가. 앞으로 같이 호흡 맞출 것도 기대될 것 같다.
"<조명가게>를 너무 재미있게 봤다. 김희원 감독이랑 민하에게도 잘했다고 연락했었다. 언젠가는 함께 연기했으면 좋겠다. 사실 저는 민하 보다 민하 부모님과 친했다. 집에 민하를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봐왔다. 자주 놀러 오기도 하고 부모님에게 연기를 시켜 보라고 권하기도 했었다. 인터뷰에서 민하가 아이들과 놀아주는 모습을 보고 제가 설득했다고 하던데, 제 기억은 다르다. (웃음) 부모님과 술자리 이후 노래방에 갔는데 그때 노래를 한 번 하고 갔다. 평소에는 말없이 쭈뼛거리기만 하던 애가 갑자기 돌변하더라. 부모조차도 몰랐던 재능이었다. 고3 때 진로 고민하길래 '연기 시켜라'라고 말해줬다. 훗날 <파친코> 캐스팅되고 한 시간이나 통화했다. 혼자 오디션도 많이 보러 다니고 열심히 살았더라. 이후에도 독립영화도 하고 변하지 않는 모습이 멋있었다. '계속 그렇게만 살아라'라고 말해줬다."

-마지막 장면에서 덕희의 생존 여부를 두고 말이 많다. 시즌 2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다.
"시청자는 덕희를 살리고 싶었겠지만 저는 엘렌 킴(한준우)이라 생각한다. 자세히 보면 알겠지만 제 발도 아니고 걸음걸이도 아니다. 제가 안 찍어서 더 헷갈리게 연출되었다. (웃음) 덕희는 마지막에 다 주고 떠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세옥이 실패를 경험하고 한 단계 뛰어넘도록 해주려 한다. 덕희 입장에서 마지막 회는 뭉클하기만 하다. 세옥은 덕희를 살리려고 하고 덕희는 다른 입장이니까. 극한 뜨거움과 극한 차가움의 만남이다.

그래도 만약 시즌 2가 나온다면 저는 회상 장면이라도.. 넣어 줬으면 좋겠다. (웃음) 아마 현호(박병은)만 세옥의 실체를 모르니, 진실을 알고 소름 끼쳐 떠나는 장면부터 시작하지 않을까? 세옥은 모든 것을 얻고 자기 세상이 되니 거칠 것도 없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었을 수도 있다. 아무튼 디즈니플러스를 틀면 모든 회차가 나온다. 정주행을 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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