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체 쇠락한다는 감각, 중국 혐오로 등장했다"
[김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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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묵 작가가 지난 10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김성욱 |
12.3 비상계엄 이후 4개월간 이어진 탄핵 반대 집회에서는 중국 혐오 정서가 새롭게 대두됐다. 8년 전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때까지만 해도 관성적으로 등장한 '종북', '빨갱이' 대신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이 세워졌다. 집회 현장에선 기자나 경찰에게 다가가 "중국인 아니냐"며 한국말을 해보라고 따져 드는 시위대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이들은 중국이 한국의 정치권과 헌법재판소를 모두 장악해 배후에서 조종하고, 부정 선거를 일으키고 있다는 음모론을 폈다.
아스팔트 보수에서 떠오른 중국 혐오는 무엇을 의미할까? 이들은 왜 갑자기 중국이라는 새로운 적을 만들어냈을까?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2018), <K를 생각한다>(2021),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2023)의 저자로 서울대학교 아시아언어문명학부 대학원 석사 과정 중인 임명묵(31) 작가는 혐중 정서 발현의 근저에 "공동체가 쇠락하고 있다는 감각이 있다"고 설명했다. "바닥을 찍은 출산율, 세계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답보 상태에 빠진 산업 등 삐걱거리기 시작한 한국 시스템 자체에 대한 위기감이 고조되면서 '적'을 찾고 만악의 근원으로 모는 혐중 우파 포퓰리즘이 성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특히 "1980년대 중반부터 지속돼온 탈냉전 세계화 체제의 승자라고 할 수 있는 '서울 중산층 정상가족'이 아닌, 현 체제에서 소외되고 배제되고 자리잡지 못한 이들에 의해 우파 포퓰리즘이 힘을 얻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세계화 체제를 이끌어온 미국·서유럽의 자유주의 진영 역시 낙오된 자들의 불만을 관리하지 못해 현재 우파 포퓰리즘의 파도에 휩쓸리고 있다"라며 "기존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적 기획을 제시해 압력 밥솥의 증기를 빼내지 못한다면, 포퓰리즘이 폭력을 동반하는 파시즘으로 악화될 위험성도 있다"고 경고했다. 임 작가를 지난 10일 경기도 광명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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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15일 오후 서울 광화문에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이끄는 탄핵 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
| ⓒ 김성욱 |
"한국에 머물지 않고 세계적 차원으로 시야를 넓혀볼 필요가 있다. 지금은 격변기다. 2016년 탄핵 때와 비교해 가장 크게 달라진 건 중국과 미국의 위상 교차다. 8년 전만 해도 중국의 성장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많은 상황이었다. 한국에선 중국도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IMF 같은 위기를 겪으리란 막연한 예측과 함께 과거 '후진국' 중국을 상정한 특유의 멸시가 공존했다. 그러나 중국은 예상을 깨고 진화했다. 딥시크와 BYD 같은 최첨단 기업을 만들어 세계를 놀라게 했고, 미국 패권의 탈냉전 자유주의 세계화 질서를 위협할 국가로 올라섰다. 최근의 미중 관세 전쟁은 이 역학 구도 변화를 잘 드러낸다.
사실 그간 한국은 미국을 위시한 세계화 자유주의 체제의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였다. 한국은 1980년대 중반 이후 공고해진 탈냉전 세계화와 자유 무역의 흐름에 탑승해 세계 시장에 선박·자동차 등을 팔아 막대한 부를 쌓았고, 2010년대 선진국 대열에 안착했다. 동시에 한국은 광활한 중국 시장을 가까이 둬 이득을 본 나라이기도 했다. 2008년 금융위기 때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피해가 덜했는데, 이는 중국 덕분이었다. 당시만 해도 중국은 미국 중심의 세계무역 질서의 충실한 참가자였기 때문에 한국 경제는 중국 시장에 기대 금융위기의 충격을 완화할 수 있었다. 한국 입장에서 지난 30년은 미국과 중국 모두에게서 과실을 따먹을 수 있는 호시절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황금기는 끝나가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이 격화되면서 한국은 언제라도 선택을 강요 받을 수 있는 입장에 처했다. 도리어 중국은 조선·자동차 등 주요 산업에서 한국을 위협하고 있고, AI 같은 새로운 분야에선 이미 압도적으로 앞서가고 있다. 한국은 정체된 반면 중국이 급부상하자, 기회 요인이었던 중국과 근접한 지정학적 위치는 안보 긴장의 위협 요인이 됐다. 이같은 전환기의 불안은 침체의 책임을 중국에 뒤집어 씌우는 우파 포퓰리즘으로 발전했다."
- 세계 질서 변화가 한국의 극우 집회에 영향을 미쳤다는 건가.
"아스팔트 우파의 태극기 집회를 보면 모두가 한 손에는 태극기, 다른 한 손에는 성조기를 들고 있다. 태극기 집회가 아니라 태극기·성조기 집회다. 태극기·성조기 집회의 판을 깔고 있는 세력 역시 미국·서구 문화로부터 유래한 개신교 단체들이다. 그만큼 미국과의 일체감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오늘의 중국에 대한 혐오는 과거 소련이나 북한에 가졌던 적대감의 구조와 흡사하다. 냉전적 구도에서 '소련'의 위치에 '중국'을 대입하면 그대로 통한다.
다만, 현 상황을 '신냉전'이라고 부르는 것은 정확한 명명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미·중이 각자의 이념을 갖고 지구적 세계관을 통일하겠다고 싸우는 건 아니기 때문에 '냉전'은 아니라는 얘기다. 과거 미소 냉전 때만큼 강력한 양대 국가가 재출현한 것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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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고대인들 주최로 지난 2월 21일 오후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문 앞에서 탄핵반대 시국선언이 열리는 동안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교문에 매달린 채 윤석열 대통령 탄핵의 배후에는 중국이 있다며 시위를 하고 있다. |
| ⓒ 이정민 |
"포퓰리즘은 공동체가 겪는 하나의 '증상'이다. 더 중요한 건 표출된 증상 아래 켜켜이 쌓인 대중의 불만이다. 세계화 체제는 이 체제에서 승리한 '세계 도시'의 굉장히 동질적인 중산층과, 거기 진입하지 못한 바깥의 사람들로 극명하게 나뉜다. 미국의 경우 뉴욕이나 캘리포니아에 사는 중산층 리버럴과 내륙 지역의 러스트벨트 노동자 집단은 사고 방식도, 향유하는 문화도, 쓰는 언어도 다르다. 2008년 금융 위기부터 '야 너도 노력하면 할 수 있어'라는 신자유주의의 약속은 금이 가기 시작했고, 패자들의 불만과 불평등은 공동체 유지가 힘들어질 정도로 심화됐다. 이 간극이 벌어지다 못해 폭발해버린 게 2016년 트럼프의 첫 당선이었다.
시차가 있을 뿐, 한국도 비슷한 경로를 거치고 있다. 한국 내의 관점에서 세계화 체제의 승자는 '서울에 자산을 가진 중산층'이다. 세계적으로 1980년대 중반 이후 미국 중심 자유무역 흐름이 주류로 자리매김했다면, 한국에선 이와 맞물려 '87체제'가 들어섰다. 노태우 정부 때인 1992년 한국은 중국과 수교를 맺고, 수도권에 아파트를 대규모 공급했다. '서울'이라는 세계 도시에 자리 잡은 '중산층 가족'이라는 '노태우식 정상성'이 한국 사회의 헤게모니를 이룬 것이다. 2010년대까지 30년간 이 헤게모니는 한국 사회에서 잘 작동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2014년을 기점으로 '헬조선론'이 본격적으로 분출했다. 심지어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했다는 'N포 세대론', '9급 공무원수험생 10만 시대', '노오력' 같은 담론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졌다. '공부 열심히 하고 노력하면 좋은 대학 갈 수 있고, 대학 가면 좋은 곳 취업할 수 있고, 취업하면 아파트 사고 가정을 이룰 수 있다'는 식의 신자유주의의 오래된 약속은 점차 현실성을 잃어가고 있었다. 대신 '이렇게 해 봤자 좋은 대학도 못 가고 취업도 안 되고 아파트도 못 사고 가정을 이루기도 어렵다'는 정서적 위축과 심리적 위기가 팽배했다.
중요한 건 '나도 이 체제의 참여자로서 누군가에 얹혀살지 않을 수 있고, 독립된 가족을 형성할 수 있고, 노후를 보장받을 수 있다'는 기대, 최소한 이 체제에서 공동체가 재생산되고 이어질 수 있을 거란 안정감이 무너졌다는 점이다. 공동체가 쇠락해간다는 감각. 그 결과가 바로 역대 최저로 곤두박질친 출산율, 갈수록 좁아지는 중산층으로의 문, 그리고 오늘날 우파의 급진화다."
- 우파가 급진화됐다는 건가.
"이번 탄핵 찬성·반대 집회만 봐도 그렇다. 우파의 탄핵 반대 집회는 아예 이 체제를 갈아엎자는 급진적 목소리였다. 반면 탄핵 찬성 쪽의 요구는 '헌정 질서 회복'이었다. 어느 쪽이 주류가 됐는지를 보여준다. '헌정 회복' 같은 최소주의적 목표에 집중하는 것은 도시 중산층이 주도하는 집회의 특징이다. 최대 다수 시민의 목소리를 끌어내 압박을 가하기 위해선 내용상으로는 최소공약수를 내세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이 주류 수도권 중산층을 대표하게 된 정치 집단이 바로 민주당이다.
문제는 지금의 상황이 헌정 질서를 정상적으로 복원하는 정도로 타개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라는 데 있다. 세계의 표준이 굳건하게 있고, 그걸 기준 삼아 잘 조정해가기만 하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풀리는 시기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그런 시대가 아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가 귀환해 세계를 휘젓고 있고, 영국·프랑스·독일 같은 서유럽에서도 우익 포퓰리즘이 득세하고 있다. 자유주의 체제 자체가 그 수명을 다했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울리고 있는데, 한국은 물론 세계적으로 좌파 진영에선 그 어떤 대안도 내지 못하고 있다. 앞으로 국제 사회가 다시 탈냉전 시대로 온전히 돌아가기는 어렵다는 점부터 객관적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과연 민주당 세력이 이런 고민을 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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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임명묵 작가가 지난 10일 경기도 광명시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하고 있다. |
| ⓒ 김성욱 |
"지금은 압력 밥솥에 증기가 가득 찬 상태다. 어떻게 전환해 이 증기를 빼낼 수 있을지 대선 기간에 많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 특히 미국에서 트럼프 2기가 재림한 과정을 잘 복기해봐야 한다고 본다. 미국은 8년 전 트럼프 1기라는 우파 포퓰리즘 증상을 심하게 앓고도, 뒤이어 집권한 민주당의 바이든 정부가 대중의 불만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고 관성적 언어만 되풀이하다 결국 트럼프에게 다시 권좌를 넘겨줬다. 트럼프 2기는 더 강력한 우파 포퓰리즘으로 돌아왔다.
한국은 이미 비슷한 실패를 한 차례 겪었다. 2014년부터 헬조선으로 터져나온 대중의 불만은 2016년 탄핵 집회를 통해 광장에서도 그 실체가 확인됐다. 하지만 직후 출범한 민주당의 문재인 정부는 근본적인 체제 개혁이 아니라 좌파 포퓰리즘으로 불만의 방향을 돌리는 미봉책을 택했다. 포퓰리즘은 기본적으로 '내 삶은 왜 이렇게 팍팍하지?'라는 현실 자각에서 출발해 '기존의 타락한 엘리트들이 나라를 팔아먹고 있어서 그렇다'는 불신과 음모론의 구조로 전개된다. 현재 한국의 우파가 중국을 '타락한 엘리트'와 관계 짓고 있다면, 당시 좌파는 친일파·재벌·검찰·보수언론을 '타락한 엘리트'의 연합체로 지목했다. 그렇게 나온 게 '적폐청산'이라는 좌파 포퓰리즘이었다.
좌파 포퓰리즘의 실패는 계엄까지 일으킨 윤석열 정부, 그리고 우파 포퓰리즘의 태동으로 이어졌다. 포퓰리즘은 단지 증상이기 때문에 포퓰리즘만 건드려서는 병을 고칠 수 없다. 포퓰리즘을 유발하는 불만과 불안의 요체를 파고들어야 한다. 모든 불안에는 근거가 있다. 포퓰리즘의 형태를 바꿔가며 나타나고 있는 지금의 불안은 이 체제와 패러다임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가리키고 있다. 그에 맞는 새로운 언어와 정치적 기획이 필요하다. 87체제 이후 30년간 한국이 겪은 변화는 무엇이었는지부터 성찰해야 한다. 적어도 불만을 제대로 접수했다는 사인을 보내야만 그래도 아직 공동체가 존재하며, 다시 부활할 수 있다는 의식을 심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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