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기념일 첫 해 '4.28 산재노동자의 날'을 맞아
[손진우]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의 유래
다가오는 4월 28일은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아래 4.28)이다. 4.28은 1993년 5월 10일 태국 케이더 장난감 공장에서 발생한 화재참사로 188명의 노동자가 사망한 사건이 계기가 됐다. 케이더 공장 화재참사는 미국의 유명 캐릭터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여성 노동자들이 자신의 하루치 일당보다 비싼 인형을 훔쳐 갈까 봐 출입구를 바깥에서 잠가두고 일을 시키다, 화재가 발생했는데도 탈출하지 못한 수많은 노동자들이 희생된 비극적 사건이다.
그로부터 3년 뒤 'UN 지속가능한 발전위원회' 회의에 참석한 각국의 노동조합 대표자들이 '선진국 아이들의 장난감에 제3세계 노동자들의 피와 눈물이 담겼다'며 유엔회의장 앞에서 추모 촛불을 들었고, 이를 시작으로 국제노동기구(ILO)가 4월 28일을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로 지정했다. 이미 미국, 영국, 캐나다 등 19개 국가는 4월 28일을 국가기념일로 지정해 추모행사를 벌이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110개국 이상에서 이날 다양한 행사와 직접행동을 전개한다.
국가적으로 되새기게 된 4.28 '세계 산재사망 노동자 추모의 날'
4.28은 한국에서는 민주노총을 비롯한 각급 노동조합, 노동안전보건운동단체를 비롯한 시민사회 등이 함께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건강을 담은 한 해의 요구를 발표하고, 투쟁을 선포하는 자리로서 의미를 가져왔다. 4월을 '노동자 건강권 쟁취 투쟁의 달'로 지정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매해 발표되는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를 기초자료로 활용하여[1] 전국적으로, 혹은 지역단위로 살인기업을 선정하여 발표하는 '살인기업 선정식'을 진행하기도 하며, 추모와 투쟁을 병행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안전보건관리 책임을 공론화하는 한편, 안전·보건의 절박한 요구와 제도 변화를 촉구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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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하라! 투쟁하라! 4.28 산재노동자의 날" 민주노총 결의대회 홍보 웹포스터 |
ⓒ 민주노총 |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이라는 명칭에는 다소 아쉬움이 있지만, 4.28이 법정기념일이 된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운동진영의 고유한 행사를 넘어, 산재사망의 문제를 국가적 차원에서 모두 함께 돌아보는 계기가 형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4.28의 유래가 된 케이더 공장의 화재참사는 지난해인 2024년 6월 24일 발생해 23명의 목숨을 잃게 만든 아리셀 중대재해 참사[2]를 떠올리게 하고, 2025년 2월 14일 6명이 사망한 반얀트리 화재 참사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산재사망의 문제가 현재 진행형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는 산재사망 감축을 위해 우리 사회가 산재사망 노동자들을 추모하고 기리는 것에 멈추어 설 수 없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법정기념일이 된 4.28을 앞둔 지금, 법정기념일이 되었다는 의미 외에 범국가적 차원에서 그간의 산재사망 감축을 위해서 수립한 계획의 추진 경과에 대한 점검과 진단에 대한 흔적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이는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와 그의 파면 여부가 확정되지 않으면서 요동치는 정국이 2024년 말부터 2025년 3월까지 이어져 왔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산재사망 감축이라는 중요한 과제를 여전히 '자기규율예방체계의 확립'이라는 미명하에 각급 일터와 사업장에만 맡겨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산업재해근로자의 날'을 맞이하는 범정부적 행사 또한 뚜렷하게 준비되거나, 계획되고 있지 않은 모양새로 보인다. 일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고용노동부가 올해 처음으로 실시하는 산재노동자의 사회복귀에 기여한 유공자를 포상하기 위해 올 초부터 제1회 수상자 대상을 추천받았고, 그에 따라 추천 후보자들에 대한 공개 검증 절차를 거친 상태라는 것, 그리고 그와 관련한 행사가 추진될 것이라는 점 정도이다. 확대 해석일지 모르나, 노동재해 문제에 있어서 무엇보다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 산재 예방 과제에 무게를 두기보다는 산재 발생의 결과에 따른 후속 조치인 산재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사회복귀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
4.28이 산재사망 감축 방향에 대해 사회적 논의를 촉발하는 계기 되길
올해부터 국가의 법정기념일의 하나로 자리매김 되는 4.28의 박제화를 우려하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한국은 여전히 OECD 가입국 중 산재사망이 가장 심각한 국가이다. 이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절박한 공감대는 근래 몇 년에 걸쳐 산업안전보건법의 전부 개정과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등과 같은 법제도의 보완과 정비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누군가 일터에서 사망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어야 하는 지금의 현실은, 다시금 산재 예방과 대응에 있어 어떤 부족함이 있는지를 진지하게 검토하고 논의하는 전 사회적인 숙고 과정이 필요함을 강력히 제기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선, 법제도가 지속적으로 보완·정비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산재사망 감축이 정체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되짚어야 한다.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지만, 법원을 통해 이뤄지는 산재사망에 대한 법적용에 있어 관대한 처벌의 경향성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로 인해 잘못된 시그널이 기업과 사업주를 향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검토해야 한다.
또한 국가적 차원의 산재사망 감축 정책 우선순위 설정과 그에 따른 행정의 집행 의지를 되물어야 한다. 한국 사회에서 우리가 목도하는 대다수의 산재사망 사고가 여전히 '후진국'형 사고로 일컬어지는 '재래형 사고'라는 점은 예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점에서 무척이나 아프다. 중대재해 감축로드맵이 담고 있던 정책 방향에 한계가 있다면 이를 보완해야 하고, 정책을 실제화하고 뒷받침할 행정력이 부족한 거라면 행정력을 보완하고 갖추기 위한 인력과 예산 편성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또한 행정의 정책 실현 의지가 실제로 존재했는지도 검토의 대상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윤석열 파면 이후 구성될 정부는 광장에서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는 안전한 일터를 요구하는 목소리에 주목하고, 이러한 요구를 수렴함으로써 산재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렇게 광장의 민주주의를 일터에서 실현해나가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사업장의 안전보건 활동의 정착과 중대재해 예방의 핵심 고리로서 강조되는 '자기규율예방체계, 위험성평가'가 형식적이라는 비판에 놓이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검토해야 한다. 사업주의 책무로 일터의 유해위험 관리를 부과하는 현행법의 한계로 인해, 전 국가적 수준의 유해·위험관리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정부/국가는 오히려 비켜나 있었던 것은 아닌지도 살펴보아야 한다. 전통적 고용관계가 형해화되며, 공급사슬의 말단에서 노동자들의 죽음이 '위험의 외주화', '위험의 이주화'로 증폭되고, 안전보건역량이 가장 부족한 소규모사업장에 위험이 집중되는 현실을 사업장 자체에만 맡겨두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4.28'이 법정기념일이라는 의미를 넘어, 한국 사회 산재사망의 현실을 올바로 직시하고 산재사망에 대한 국가 책임을 다시금 상기하는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가 기억을 넘어 추모하고 행동하는 까닭이 거기에 있을 테다.
각주
[1] 정부의 산재사망 통계는 근로복지공단이 제공하는 산재보험 통계만을 기초로 하기에 한계가 있다. 산재보험 적용 범위에서 제외된 다수의 일하는 사람의 업무관련 사망(가령, 공무원, 교직원, 군인 등 다른 보험법 적용 대상자는 제외하고 있으며, 특수고용 노동자 산재보상도 14개 직종만 대상으로 하고 있어,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 플랫폼·프리랜서·특수고용노동자 등은 제외되었을 가능성이 높음)은 산재보험 통계에는 포함하지 않고 있기에, 국가적 차원의 산재사망 공식 통계로서의 한계가 있다. 매년 4.28을 맞아 노동시민사회가 정부의 공식 산재사망 통계보다 높은 수치의 산재사망 추정치를 발표, 언급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2] 아리셀 참사는 다수의 희생자가 중국동포 '여성'노동자였다는 점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에게만 비상구를 열 수 있는 출입카드가 제공됐다는 점에서, 안전보건관리가 사실상 전무했고, 공급구조의 말단의 노동자들이 희생자가 됐다는 점에서 케이더 공장 화재참사와 다르지 않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인 손진우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소장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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