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쓰레기의 비밀, 국민 모두 위험해졌다
기후위기와 생태학살로 드러나는 우리 사회의 불평등과 부정의. 하루하루 현실로 다가오는 생존의 위기 앞에서 과연 다른 세계는 가능할 것인가를 묻는다. 다른 세계는 물론 가능하다고 믿는다. 다만 다른 행성이 아니라 바로 여기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우리가 발 딛고 있는 땅과 아직 푸른 하늘과 바다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나무와 새들, 함께 호흡하는 뭇생명들이 공존하는 세계를 함께 상상하고자 한다. <기자말>
[변정정희 기자]
쓰레기 더미 앞에서 거대한 무력감을 느꼈다. 매립지와 소각장, 재활용 선별장을 도는 '쓰레기 현장 투어'에서 엄청난 양의 쓰레기를 마주했다. 묻고, 태우고, 압축했지만, 더 많은 쓰레기가 계속 밀려왔다.
유엔환경계획에 따르면 전 세계 도시폐기물 발생량은 2023년 23억 톤이다. 우리가 집과 회사에서 버린 바로 그 쓰레기다. 지구 둘레를 몇십 바퀴 돌 정도의 많은 양이다. 사실 멀리 갈 필요도 없이 분리배출하는 날, 집 앞 쓰레기장에만 나가도 많은 쓰레기를 마주할 수 있다. 우리가 내놓은 쓰레기는 수거 차량을 통해 각 지역 매립지와 소각장, 재활용 선별장으로 이송된다. 매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에서만 5000여 톤의 쓰레기가 땅에 묻히고, 서울 시내 5개 구에서만 600여 톤의 쓰레기가 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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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홍수열 소장 |
ⓒ 변정정희 |
오늘도 '예쁜 쓰레기'를 샀다
'질소를 샀더니 과자가 따라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내용물보다 포장재가 더 많은 현실을 비꼬는 말이다. 반짝이고 화려한 용기에 담긴 '예쁜 쓰레기' 대표주자 화장품도 마찬가지이다. 제품보다 용기의 무게가 더 많이 나간다. 명절과 기념일이 가까워져 오면 포장은 더 심해진다. 포장재는 보통 플라스틱이나 종이로 재활용이 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원통형 감자칩만 해도 외면은 코팅한 종이, 내면은 폴리에틸렌, 바닥은 알루미늄, 입구는 비닐이며, 그 위에 플라스틱 뚜껑을 덮었다. 한 마디로, 일반쓰레기이다.
경영학 이론 중 '계획적 진부화'란 개념이 있다. 제품을 생산할 때 계획적으로 수명을 제한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쓸 수 없게 만들어 버리는 전략이다. 새 모델이 나올 시기에 맞춰 배터리 수명이 끝나는 스마트폰, 부모님 세대에서 수십 년 사용했지만 금방 고장 나는 요즘 가전제품, 몇 주만 지나도 보풀이 생기고 뒤처진 유행이 되어버리는 '패스트패션'은 음모론이 아니다. 여기에 더해 스마트폰 배터리를 교체하려면 전문 수리업체를 찾아야 하고, 가전제품의 부품은 빠르게 단종되어 수리업체에서도 고치지 못한다. 보풀이 난 옷은 수선하는 것보다 새로 사는 게 훨씬 저렴하다. 수리하는 일은 새로 구매하는 일보다 훨씬 큰 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자원 채굴부터 시작해 생산, 유통, 소비, 폐기, 처리라는 게 결국 연결된 물질의 흐름이에요. 서로 영향을 주거든요. 상류가 더러우면 하류는 당연히 더러울 수밖에 없어요."
많이 팔아야 하니 갖은 포장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이미 산 제품은 빠른 고장으로 또 새 제품을 구매하게 만든다.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의 결말은 풍요가 아닌 대량 쓰레기이다. 소비자가 아무리 발버둥 친다 한들 처음부터 쓰레기를 만들어 판다면 결코 그 양은 줄지 않을 것이다.
태초에 '쓰레기'가 있었다. 종말에도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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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 재활용수집소에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
ⓒ 변정정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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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포시 재활용수집소에서 쌓여있는 플라스틱 쓰레기 |
ⓒ 변정정희 |
플라스틱 보관 용기만이 아니다. 전쟁은 신소재를 이용해 빠르게, 많이, 싸게 생산하는 기술을 발전시켰다. 전쟁 중에는 수명이 다하기 전에 제품이 부서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내구성을 키울 필요는 없었다. 한 번 쓰고 버려도 좋을 물건이 대량으로 만들어졌다. 그러자 1950년대 미국에서 일회용 쓰레기에 대한 문제의식이 나오기 시작했다. 플라스틱 기업들은 재단을 꾸려 '킵 아메리카 뷰티풀(Keep America Beautiful)'이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고 대대적인 환경 캠페인을 실시했다. '쓰레기를 주워서 미국을 깨끗하고 아름답게 만들자'는 목표였다. 하지만 이는 문제의 책임을 '쓰레기를 버린 개인'에게 돌려 일회용품에 대한 규제를 막는 영업 전략일 뿐이었다.
쓰레기를 만든 자가 책임져라!
쓰레기를 열심히 주워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1990년대 유럽에서 생산자의 책임을 강화하는 규제를 만들었다.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이다. 기업이 생산한 제품에서 발생한 쓰레기를 다시 그 기업이 책임지고 가져가 재활용하도록 요구한다. 우리나라는 2003년부터 시행하고 있는데, 형식에 그치고 있다.
기업은 직접 쓰레기를 가져가 재활용하는 대신 대행 기구에 '재활용 분담금'을 지불한다. 돈을 내면 책임은 끝난다. 그런데 이 돈마저 실제로는 소비자의 주머니에서 나가고 있다. 기업이 판매가에 재활용 분담금을 추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제품을 살 때 우리도 모르게 재활용 분담금을 지불한다. 일반 쓰레기는 종량제 봉투 비용을 내고 버리지만, 재활용 쓰레기는 따로 돈을 내지 않고 버리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과연 쓰레기는 누가 '책임'지고 있는 걸까?
"이런 식으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걸 다 알아요. 기업이 '재활용을 더 열심히 한다'고 해도, 시민들은 '90년대부터 지긋지긋하게 한 캠페인 아니야? 사기 치지 마'라고 의심하는 거죠."
지난해 9월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세계 최대 플라스틱 제조사인 엑손모빌을 상대로 기후 소송을 제기했다. 수십 년간 플라스틱 재활용으로 환경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며 사람들을 기만했다는 내용이었다. 시민들에게 떠넘긴 환경 비용으로 수십억 달러의 손해 배상을 청구했다. 재판 결과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지금 방식으로 쓰레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한 결과다.
쓰레기를 자원으로 되돌리는 '순환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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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넓은 땅 아래 켜켜이 쓰레기가 묻혀있는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매립장 |
ⓒ 변정정희 |
"최근 유엔환경총회에서 기후 위기, 환경오염, 생물 다양성 손실이 심각한 위기라고 선언했어요. 자원 소비가 급격히 늘면서 지구 시스템의 균형이 붕괴하고 있다는 거죠. '균형'과 '순환'은 같은 뜻인데요. 순환 경제는 '재활용을 잘하자'는 것을 넘어 '지구 시스템의 순환성을 회복시키자'는 거예요."
순환 경제를 목표로 지난해 7월 유럽의회는 '에코디자인 규정'을 실행했다. 기업은 제품을 설계해서 폐기할 때까지 내구성, 재사용성, 재활용 가능성, 수리 가능성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한 이 정보를 큐알코드와 같은 전자여권으로 소비자에게 공개해야 한다. 유럽연합에서는 에코디자인 규정을 따른 제품만 유통할 수 있다. 아쉽게도 우리나라는 순환 경제를 못 따라가고 있다. 에코디자인 관련 법률이 있지만 여러 곳에 산재해 있고, 그마저도 권고사항이라 강제성이 없다. 하지만 급속한 환경 위기 속에 순환 경제는 피할 수 없는 흐름으로 다가오고 있다.
흔들리지 않는 장기적인 환경정책이 필요하다
이윤을 포기하면서 스스로 환경을 책임지는 생산자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정치다.
"정부는 장기 목표를 분명하게 제시하고 흔들리지 않아야죠. 여론이 안 좋다고 목표를 변경하거나 폐기하면 안 돼요. 환경 정책은 개인의 소비가 바뀌는 것을 넘어 사회 전체 시스템이 바뀌는 문제라 단기간에 해결할 수 없어요. 예를 들어 '재활용이 잘 되는 제품을 만들자'는 정책을 세우면, 기업은 공장에 있는 기계를 다 뜯어고쳐야 해요. 갑자기 다 바꾸라고 하면 받아들일 수 없죠."
2023년 11월 환경부는 일회용 종이컵의 실내 사용 규제를 철회하며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지 사용을 제한하는 계도기간을 무기한 연장했다. 갑자기 뒤바뀐 정책에 피해를 본 것은 종이 빨대 생산자였다. 실제로 종이 빨대가 환경적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란을 접어두더라도, 기껏 만든 빨대와 그 설비가 쓰레기가 되어버린 일은 결코 환경적이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를 신뢰할 수 있을까?
기업의 로비에 따라, 대중들의 욕망에 따라 갈팡질팡하는 정책은 안된다. 임기 안에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위해 고민 없이 달려가는 정책도 안된다. 순환 경제를 위해 분명한 목표를 세우고 흔들림 없이 장기적으로 추진해 가는 정책이 필요하다. 신뢰를 잃은 정부는 몰락할 수밖에 없다.
시민의 의무를 넘어 권리를 챙기자!
모든 책임을 정부와 생산자에게 돌리면 해결되는 걸까? 정치는 국민의 뜻을 대표하며, 생산자는 소비자가 있기에 존재한다.
"생산자가 책임을 전부 져야 한다는 게 아니에요. 소비자가 할 수 없는 생산 영역에서 책임지라는 거고요, 다음에 생산자와 소비자의 공동 책임 부분에서 리더가 되라는 의미에요. 소비자의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니죠. 더 강화해야죠. 그래야 실질적인 변화로 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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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로웨이스트 축제에서 ‘고쳐 쓰자! 오래 쓰자! 수리하자!’ 요구하는 시민의 플래카드 |
ⓒ 변정정희 |
우리는 매일 소비한다. 먹고 입고 자는 모든 것이 소비를 바탕으로 이뤄진다. 소비의 종류는 무척 다양해서 정부나 환경단체가 포착하지 못하는 쓰레기 문제가 많다. 일상에서 매 순간 소비하며 문제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이는 바로 소비자다. 실제로 불필요한 두유 팩 빨대와 캔햄 뚜껑을 쓰레기로 느껴 이를 모아 기업으로 반납한 시민들이 있다. 기업은 다음 제품 생산 때 요구를 반영했다. 이외에도 쓰레기를 많이 배출하는 기업 제품을 사지 않거나, SNS를 통해 직접 불만을 제시할 수도 있다. 요즘은 온라인에 제로웨이스트 정보나 관련 모임이 많은 편이다. 의무에 따른 개인의 실천을 넘어, 소비자의 권리에 따른 시민 행동을 넘어, 생산자와 정부를 대상으로 한 시민의 저항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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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후정의행진에서 생산자와 정부를 향해 저항하는 시민들 |
ⓒ 변정정희 |
[필자 소개] 변정정희: 다큐멘터리와 라디오 방송 작가로 활동했으며, 최근 르포르타주 작업을 하며 새로운 글쓰기를 모색하고 있습니다. 책 <작가 노동 선언>, <기억의 공간에서 너를 그린다>를 함께 썼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기획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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