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에 한방 먹었다"는 민주, 재탄핵엔 거리두는 까닭

8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전격 지명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발칵 뒤집어졌다. 한 대행은 열흘 뒤 임기가 종료되는 진보 성향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후임자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측근인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날 대장동 특혜 의혹 사건 재판 도중 이 소식을 접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법원을 나서며 “한 총리에게 지명할 권한이 없는데 오버한 것”이라며 “자기가 대통령이 된 것으로 착각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이어 한 권한대행을 ‘토끼’에 비유하며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토끼가 호랑이가 되는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특히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한 반발이 거셌다. 김용민 원내수석부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이 처장은 계엄 직후 안가회동에 참석하는 등 내란 공범일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처장은 진보 진영으로부터 지난해 12월 4일 저녁 서울 삼청동 대통령 안가(안전가옥)에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김주현 대통령실 민정수석비서관과 만찬 회동을 한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의 민주당 의원들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법 제5조에 따르면 정당의 당원 신분을 상실한 날로부터 3년이 경과되지 아니한 사람은 재판관으로 임명될 수 없다. 2022년 윤석열 대선 캠프에 속했던 이 처장은 당원 활동 기간과 탈당 일자를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당 지도부는 비공개 긴급 최고위원회의를 열고 “권한쟁의 심판과 효력 정지 가처분 신청 등을 통해 바로 잡겠다”(한민수 대변인)고 예고하는 등 대응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입장문을 통해 “권한대행이 국민이 부여한 고유 권한을 행사하려고 드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며 “인사청문회 요청을 접수 받지 않고,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고 밝혔다. 군소 정당들은 한 권한대행에 대한 즉각 재(再)탄핵을 촉구했다.

다만 민주당은 재탄핵에 대해선 신중한 분위기다. 당내에서도 “즉각 탄핵해야 한다”(정진욱 의원)는 등의 요구가 있지만, 실질적으로 지명권 행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마땅찮아 실익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오전 비공개 회의에 참석한 지도부 관계자는 “탄핵으로 압박한다고 한 대행이 이를 철회할 가능성도 없고, 탄핵 된 후 대행의 대행이 임명하면 끝이기 때문에 실익이 없다”며 “더군다나 사퇴 후 국민의힘 대권 주자로 나선다는 얘기까지 도는데 탄핵은 우리가 나서서 도와주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법조인 출신의 한 의원은 “대행의 지명권 행사에 위헌성 논란은 있지만 이를 막을 뾰족한 법적 수단이 없다”며 “재판관 임기가 6년인 만큼 헌법재판소가 보수 우위 구도로 장기간 고착화 될 가능성도 크다. 한방 먹은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한 권한대행의 지명을 용단이라고 평가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권한대행께서 헌법 공백을 막기 위해 헌법재판관을 지명했다는 점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며 “용단을 내린 것이고 용기를 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민주당은 자신들 후보만 임명하라고 하지 말고 한 권한대행께서 지명한 두 명에 대해서도 이른 시일 안에 인사청문회를 열어 의견을 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 내부에선 한 대행의 대선 출마설도 돌고 있다. 한 TK(대구ㆍ경북) 지역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파면 이후부터 당원들이 ‘한덕수를 대통령 후보로 만들자’고 문자를 막 보낸다. 의원들도 최근 들어 ‘한덕수 대망론’을 거론한다”고 전했다.

호남 출신 인사란 점도 ‘한덕수 대망론’을 띄우는 이들이 꼽는 한 대행의 강점이다. 한 중진 의원은 “지난 담양 보궐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이 민주당을 이기며 호남의 ‘이재명 비토 정서’가 드러났다”며 “호남 주자인 한 대행이 뛰어들면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한 대행은 전주 출생으로, 전주북중학교를 졸업했다. 박수영 의원은 8일 페이스북에 “안동 출신 ‘막 산 이’ vs. 전주 출신 ‘갓생(모범적 삶을 뜻하는 표현)이’”라고 썼다. 안동 출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한 대행을 비교한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불과 2개월 앞으로 다가온 대선을 고려할 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카드”(3선 의원)라는 분석도 있다.
성지원·김정재 기자 kim.je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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