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궁이 기형이어도 문제 상황을 제거하면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할 수 있다. Gettyimage
자고로 여성은 '겉'이 아닌 '속'이 예뻐야 한다고 했다. 마음씨를 일컫는 게 아니다. 인체의 신비롭고도 거룩한 생식기를 이른바 '속(體內)'으로 지칭한 것이다.
‘속이 예쁜'이라는 표현은 산부인과 의사라면, 특히 난임 전문의라면 절로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세상 남성들은 여성을 바라보며 '겉과 속이 같기'를 기대하겠지만 천만의 말씀. 속이 겉을 매몰차게 배신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미인내추(美人內醜)라고 하면 어지간히 맞는 말이라고 본다. 물론 미인이면서 속도 예쁜 여성도 많고 많지만.
예를 들어 생식기관의 하나인 질(膣) 혹은 자궁이 없는 MRKH증후군을 지닌 여성 중에는 유독 미인이 많다. 여성인데 어찌하여 질 혹은 자궁이 비정상적이거나 아예 없을 수 있을까. MRKH증후군은 '뮐러관 무형성증'이라고도 불리는 희귀 유전질환으로 자궁과 질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아 생식기 발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X염색체의 돌연변이가 주된 원인으로 알려져 있다.
자궁과 질의 상부가 없다지만 난소, 유방 및 외음부의 체모는 정상이니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가 대개는 무월경, 성교통 같은 증상이 나타나거나 임신이 안 되는 난임 상태에 이르렀을 때 치료할 목적으로 산부인과 의사를 만나고서야 MRKH증후군임을 알게 된다. MRKH증후군은 유전질환이므로 증상에 따라 치료법을 달리해야 한다. 질 확장술만으로 문제가 해결되는 경우도 있고, 상태가 심각해 피부와 장의 일부로 질(膣)의 상부를 만들어야 하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무자궁(無子宮)이다. 자궁 이식만이 유일한 치료법인데 지금의 현대 의학으로는 힘든 수술이며, 이식에 성공한다고 해도 자궁이 제 역할을 할지 장담할 수 없다. 자궁 이식을 통해 출산에 성공한 여성이 있긴 하다.
자궁은 태아 시절(임신 초기) 생식관인 2개의 뮐러관이 합쳐지면서(융합) 만들어진다. 각각의 공동 내측 부분이 녹으면서(융해) 자궁강이 만들어지고 아래쪽으로는 자궁경부가 형성된다. 신비롭게도 태아의 항문(이때에는 없음) 근처 표피 일부가 함몰되면서 질강이 형성되고 자궁경부와 소통이 이뤄지게 된다.
바로 이 두 개의 뮐러관이 잘 융합·융해되지 않으면 자궁과 질이 없거나 만들어지더라도 기형적 형태와 구조를 갖게 된다. 뮬러관이 제대로 생성되지 않으면 난소와 질강만 있는 무자궁증(로키탄스키 질환)이 되고, 한쪽 뮬러관만 생기면 단각자궁이 된다. 또한 두 개의 뮬러관이 융합되지 않으면 두 개의 쌍자궁이 생기고, 뮬러관 융합이 좀 더 밑에서 이뤄지고 융해가 일어나면 쌍각자궁이 된다. 융합이 잘됐으나 융해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정형 쌍자궁(완전 중격자궁)이 된다.
19세기 오스트리아에 빈 의과대학을 설립한 의사 겸 병리학자 카를 폰 로키탄스키(Carl von Rokitansky)가 1838년 그린 그림. 끝이 막힌 질과 자궁 흔적을 가진 MRKH 증후군의 자궁질 형태를 보여준다. 위키피디아
‘기형'에 대한 오해
자궁이 기형이면 또 다른 기형을 동반할 여지가 있다. 자궁경부가 두 개면 질 중격(완전 또는 부분)이 동반될 수 있다. 또 한쪽 신장이 없는 외신장도 동반될 수 있다.
자궁이 기형인 여성은 대부분 자신의 몸 상태를 모른 채 살아간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힌트(복선)가 있다. 건강상 별다른 이상이 없는데 초경도 하지 않은 무(無)생리 여성이라면 MRKH증후군을 의심해 봐야 한다. 생리를 하더라도 희발월경(드문 생리)이거나 생리량과 생리통이 비정상적이라면 산부인과 진료를 받을 필요가 있다. 통계상 여성의 3~5%가 자궁 기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자궁이 기형일 경우에는 임신이 되더라도 아기를 낳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착상에 실패하거나 착상이 돼도 태아 성장에 영향을 미쳐 유산하거나 조산할 수 있다. 자궁이 한쪽만 발달한 단각자궁의 경우 배아가 착상돼도 태아가 성장할 공간이 좁아 유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다반사다. 물론 자궁 기형이어도 임신과 출산을 무사히 한 사례가 많다. 최근 한 영국 여성은 자궁 두 곳(중복자궁)에 각각 다른 배아가 착상해 쌍둥이를 임신했다. 기적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필자도 자궁이 기형인 여성을 많이 만났다. 7년 전, 당시 학생이던 결혼 1년차 주부(27세)가 찾아왔다. 그녀는 "평소 월경이 불규칙해서 배란유도제를 복용해야만 배란이 일어나고 월경이 규칙적으로 나온다"고 했다. 그녀가 자신의 질과 자궁이 기형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첫 임신 5주 만에 유산을 하면서다. 다시 임신하려고 다니던 병원에서 페마라(배란유도제)를 처방받았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고민 끝에 필자를 찾아온 것이다. 내진해 보니 질 중격에 자궁경부가 두 개였다.
자궁내시경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1차적으로 질 중격 제거 수술부터 했다. 그러고 2회에 걸친 수술로 자궁 중격을 완전히 제거했다. 필자를 만나 질 기형과 자궁 기형 문제를 해결한 그녀는 이전에 다니던 병원으로 가서 시험관아기시술(IVF)로 임신에 성공했다. 임신 초기 그녀가 나를 다시 찾아와 태아 상태와 앞으로 어떻게 하면 좋은지 물었다. 그제야 나는 그녀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됐다. 참으로 어여쁜 그녀가 드디어 엄마가 될 수 있다니 내 눈시울까지 뜨거워졌다. 그녀는 제왕절개로 건강한 사내아이를 출산했다.
자궁 기형을 주제로 이야기할 때 우려되는 부분이 있다. 기형(Deformed·奇形)이라고 하면 으레 '비정상' '이상' '장애' 같은 단어를 떠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잘못된 매칭이다. 구조의 차이가 다소 정상에서 벗어난 '형태학적 이상'일 뿐, 기능을 상실한 불구인 것처럼 해석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기형(奇形)을 '이상(異常)' 혹은 '다름'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자궁이상증' '자궁다름증'이라 명명하면 걱정을 덜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과일나무와 어머니의 인생 여정
난임은 외모와 직접적 관련이 없다. 그럼에도 난임 병원을 방문하는 여성 중에는 유독 미인이 많다. '사람의 팔자가 공평하다'는 옛말이 맞는 것일까. 신(神)이 모든 것을 주지는 않는 것 같다. 예로부터 다산상(多産相)은 가냘픈 듯 쭉쭉 빵빵한 몸매가 아니라 아담한 체구에 평범하지만 다부진 외모의 소유자에게 주는 최고의 찬사였다.
혹시 과일나무를 주의 깊게 본 적이 있는가. 못난이 나무가 즐비하다. 아름다운 꽃을 피우며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과일나무는 대체로 작고 아담하다. 나무가 크고 웅장하면 수확하기가 힘들어서 일부러 작고 아담하게 키운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과일나무가 열매를 주렁주렁 맺기 위해서는 많은 양분을 쓰기 때문에 크게 성장하기 힘들다고 한다. 과일나무의 이러한 운명이 어머니의 인생 여정을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무가 화려한 꽃을 피우고 나서야 비로소 주렁주렁 열매를 맺듯 우리 모두는 어머니의 사랑과 희생과 헌신으로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 세상에 어떤 것도 당연하지 않다. 어머니의 거룩한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