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 온 멋진 소식" 지구 반대편에서 탄핵 지켜본 이 남자
[박수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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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민주화운동 마지막을 목격한 도널드 베이커 브티리시컬럼비아대학교(UBC) 교수가 지난 4일 오후 윤석열씨 탄핵 소식을 듣고 짤막한 소회를 남겼다. |
| ⓒ 도널드 베이커 페이스북 갈무리 |
"한국에서 온 멋진 소식. 윤 전 대통령 탄핵 성공은 오늘날에도 (한국에) 5.18민주화운동(5.18) 정신이 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미국에 계신 분들이 대한민국 국민에게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배우면 좋겠다!"
그는 현재 브티리시컬럼비아대학교(UBC) 아시아학과 교수이자 한국연구센터 공동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미국이 국적인 그는 광주를 '제2의 고향'으로 여길 만큼 사랑한다. 광주와의 인연은 반세기 전인 1971~1974년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하며 처음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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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71~1974년 광주에서 평화봉사단으로 활동했던 도널드 베이커. 1980년 연구를 위해 서울에 머물고 있던 그는 1980년 5월 27일 광주에 가 5.18민주화운동의 참상의 끝자락을 목격했다. 그는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 아시아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
| ⓒ 도널드 베이커 제공 |
베이커 교수는 "5 대 3으로 탄핵이 기각될까 걱정했다"면서도 "헌법재판소(헌재)의 만장일치 인용 결정이 발표되었을 때 안도감을 느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계엄 선포 당시 "1980년 5월로 플래시백(트라우마가 상기되는 현상) 되는 경험을 했다"던 그는 "우리는 계속해서 광주 사람들의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역사학자로서 반세기 동안 한국의 극적인 변화를 목격할 수 있어 매우 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아래 베이커 교수와 나눈 인터뷰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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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재, 윤석열 대통령 '파면' 4일 헌법재판소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 사건에 대해 인용 선고를 했다. 탄핵 소추 111일, 변론 종결 38일 만이다. 사진은 지난 2024 3월 3차 민주주의 정상회의 장관급 회의 개회식에 참석한 윤 전 대통령. |
| ⓒ 연합뉴스 |
"UBC 한국연구센터 소속 대학원생 연구원들과 저녁을 먹으며(선고 당시 밴쿠버는 2025년 4월 3일 오후 7시 - 기자 말) 휴대전화로 생중계를 켜두고 헌재 선고를 지켜봤다. 함께 있었던 대학원생 연구원은 두 명인데, 모두 한국 출신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다고 선언할 때 우리는 모두 축하했고 환호했다."
- 윤석열의 탄핵을 예상했나.
"역사학자로서 미래 예측은 불가능함을 배웠다. 이에 헌재 결정이 발표되기 전까지 희망적이면서도 우려스러웠다. 그간 윤 전 대통령과 관련해 (국회 측) 증거가 압도적이었고, 윤 전 대통령 측 변명이 매우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8명의 재판관 중 대부분이 그에게 불리한 판결을 내릴 것으로 생각하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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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윤석열 탄핵 투표 가결, 꺼지지 않는 응원봉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14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열린 '내란수괴 윤석열 즉각 탄핵 범국민 촛불 대행진'에서 시민들이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표결에서 탄핵 투표가 가결된 뒤 응원봉을 흔들며 노래를 합창하고 있다. |
| ⓒ 이정민 |
"1980년에 우리가 본 것과 같은 대규모 폭력이 없었다는 점에서 큰 안도감을 느꼈다. 계엄 이후 상황이 전개되면서는 한국인을 매우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신속하고 용감하게 반응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인터넷(생중계 등)이 쿠데타 시도에 맞서 시민들을 동원하는데 어떻게 작용하는지 고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또 한국이 1980년 이후 얼마나 많이 변했는지, 그리고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얼마나 헌신적인지 깨닫지 못하는 듯했다.
역사학자로서는 내가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인과 한국사에 관여하며 한국의 극적인 변화를 목격할 수 있어 운이 매우 좋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동안 한국이 빈곤과 독재에서 번영과 민주주의로 변화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한국계 캐나다 학생들에게도 한국 사회의 유산을 자랑스러워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인들은 다른 국가 사람들이 달성하지 못한 것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달성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인용한 헌재 판결은 한국인에 대한 저의 존경심을 더욱 강화했다. 저는 미국 사람들이 한국인들처럼 민주주의를 수호하려고 결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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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18민주화 운동 당시 광주 제일은행(현재 무등빌딩) 앞에서 최루탄이 터진 상황에서 한 시민이 방독면을 쓴 계엄군에 둘러 싸여 겁에 질린 모습을 하고 있다. |
| ⓒ 나경택 촬영, 5.18기념재단 제공 |
"지난해 12월 3일 이른 아침(계엄 당시 밴쿠버는 2024년 12월 3일 오전 6시 30분 - 기자 말) 밴쿠버에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것을 알게 됐다. 그 즉시 저는 1980년 5월로 플래시백 되는 경험을 했고,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정말 걱정했다. 하지만 유튜브 라이브 스트리밍 덕분에 서울 사람들, 특히 젊은 여성들이 쿠데타를 저지하기 위해 얼마나 빨리 행동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국사학자로서 저는 1980년 광주 사람들이 민주주의를 달성하기 위해 목숨을 걸지 않았더라도 한국은 결국 민주주의 국가가 되었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당시 광주 사람들이 치른 희생이 한국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가 되는 데 있어 진전을 가속했다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그해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뒤늦게 알게 된 후, 군사 정부가 얼마나 위험한지 깨닫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대거 일어났다. 당시 광주 사람들이 흘린 피가 오늘날 한국에서 볼 수 있는 튼튼한 민주주의 나무에 비료가 된 거다.
5.18은 지금도 한국인들에게 계속 영감을 주고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윤 전 대통령의 쿠데타 시도를 막기 위해 빠르게 반응한 이유 중 하나라고 믿는다."
- 5.18을 배경으로 한 소설 <소년이 온다>의 저자인 한강 작가가 얼마 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그는 노벨문학상 수상 당시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을까?',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곰곰이 생각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1980년 5.18 희생자들이 현재의 대한민국 국민과 민주주의를 지켰다는 평가가 이어지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최근 대학에서 현대한국사 수업을 진행하다 학생들에게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읽고 과제를 작성하게 했다. 지난주 수요일 수업에서는 그 책에 대해 학생들과 의견을 교환했는데, 학생들이 책 내용에 매우 감동한 모습이었다. 그들 중 일부는 '책을 읽으며 울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울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한강 작가가 지적했듯 우리는 1980년 5월의 희생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광주 사람들이 보여준 용감함을 기억하며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야 한다. 또 그 희생을 기억하며 더 정의로운 세상으로 향하는 길을 막는 모든 것들에 저항해야 한다."
- 쿠데타를 일으킨 전두환과 윤석열을 비교해 본다면.
"난 역사가로서 과거의 사건과 그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중립적인 입장을 취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동시에 1980년 5월 광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직접 목격한 불행한 감정을 가진 인간이기도 하다. 내 감정은 나에게 '중립적인 입장을 포기하고 두 사람을 모두 매우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선언하라'고 주문한다.
두 사람은 동료 시민보다 자신의 권력에 대한 개인적인 욕망을 우선시했다. 듣자 하니 윤석열은 전두환만큼 재정적으로 부패하진 않은 것 같다. (이번 계엄 당시) 민중의 의지를 억압하려는 시도에서도 전두환만큼 폭력적이지는 않았다. 그래서 난 전두환이 윤석열보다 더 나쁜 인간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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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평화봉사단 자격으로 1971년~1974년 광주에 머물렀던 도널드 베이커의 모습이 담긴 사진. |
| ⓒ 도널드 베이커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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