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 가시거든 채동선과 태백산맥 문학기행길 찾으세요

안태식 2025. 4. 7. 1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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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보성군 벌교 탐방기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안태식 기자]

따뜻한 바람이 살랑거리는 지난 6일 벌교의 선린 공원을 찾았다. 2022년 2월 28일 조성되었는데 안규홍 의병장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 선린 공원은 보성군에서 조성하였는데 이는 <벌교 100년사> 기록의 벌교 주민(한만호, 손공현)의 구술에 의한 것이다.

"장터에서 나뭇짐을 지고 내려오다가 보니께, 일본 헌병들이 조선 사람 장사꾼들을 발로 걷어차고, 짐짝들을 막 집어던져 불면서 횡포를 부리고 있었던 모양이여. 이걸 보고 못 참은 안 대장이 지개 짐을 떡 받쳐놓고 쫓아와서, 그대로 주먹으로 대그빡 헐 것 없이 몇 대 처분께 그냥 쫙 뻗어 불드라여."

이처럼 "벌교에서 주먹 자랑하지 마라"라는 말이 생긴 이유가, 의병장 안규홍이 벌교 장터에서 주먹을 휘두른 일 때문이라고 한다.
▲ 의병장 안규홍 동상 벌교 선린공원에 2022.2.28일 안규홍 의병장 동상을 건립하였다
ⓒ 안태식
안규홍은 보성 사람으로 동소산에서 가난한 사람들에 의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안규홍 의병부대는 1908년 4월부터 1909년 10월까지 약 1년 6개월 동안 무려 26차례나 일본군과 싸워 승리했다. 일본은 1909년 6월에 이르러 당시 가장 우세한 안규홍 의병장을 비롯하여 전남 의병장들의 근거지를 찾아 대대적인 탄압을 하였다. 이것이 바로 '남한 대토벌작전'이었다. 이때 잡혀간 안규홍은 대구 감옥에서 여러 의병장들과 형장의 이슬로 순국하였다.
선린공원 안규홍 동상 뒤편에 채동선(1901~1953)의 연혁이 있다. 채동선 음악가는 벌교에 생가가 있으며, 그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으로는 고향, 조국, 독립축전곡, 개천절, 한글날, 3.1절 노래 이외에도 진도 아리랑, 도라지타령 등 1백여 편에 달하는 민족성과 애국성을 지닌 음악을 남겼다. 1979년 은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 작곡가 채동선 벌교 출신 채동선은 민족성과 애국성을 지닌 100여편의 음악을 남겼다
ⓒ 안태식
▲ 음악가 채동선 생가 선린공원에서 홍교 쪽으로 1km 정도 가면 생가가 있음
ⓒ 안태식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 문학관

소설 <태백산맥>은 여순사건이 1948년 발생하여 벌교에서 빨치산 토벌작전이 끝나가는 1953년까지 민족의 아픈 과거의 이야기다. 열 권의 대하소설은 7년이 걸렸다. 작가는 소설의 연재와 완간 후에도 고초를 겪었다. 보수단체와 인사들이 온갖 협박과 '빨갱이'로 몰아 11년에 걸쳐 송사에 시달리게 했다.

1983년 암울한 군사정권 시절 작가가 새벽 1시쯤 잠자던 아내(김초혜)를 깨웠다. "이렇게 쓰면 반드시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아들하고 둘이 견뎌낼 수 있겠는가?"라고 말했다. 시인인 아내는 잠시 생각하더니 "그러한 이유로 못쓴다면 작가가 아니다. 집안 걱정하지 말라"라고 했다.

문학관은 4층 건물로 1층에 태백산맥 육필원고와 기증된 책들, 필기구, 카메라, 시계, 옷, 지팡이, 젊은 시절 사진, 고초를 겪었던 내용, 사용했던 용품들과 기타 여러 가지 물품들을 전시하고, 2층에는 독자들이 태백산맥을 필사한 수많은 원고와 노트 등의 전시실이 있으며, 학생들의 시화전 시와 그림 등을 전시하였다.
▲ ‘태백산맥’ 문학관 조정래 작가의 육필원고, 태백산맥 관련 연관 물품 등을 전시하고 있다
ⓒ 안태식
소설 <태백산맥>에서 처음 등장하는 현 부자집이다. 조직의 밀명을 받은 술도가 집 아들 정하섭이 활동 거점을 마련하기 위해 무당 소화의 집을 찾아가고 현 부잣집에 대한 묘사가 펼쳐지게 된다.
현 부잣집은 보성군 마을 유래지에 따르면(1990년판) 1930년경 밀양 박씨 박사윤이 지었다. 박사윤의 아들 대에서 건물이 대부분 팔려나가고 몸채 하나만 남아 있던 것을 보성군에서 복원하였으며 조정래 문학관 옆에 있다.
▲ 소설 태백산맥의 현 부잣집 소설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현 부잣집이다
ⓒ 안태식
정참봉의 손자 정하섭과 무당 월녀의 딸 소화가 애틋한 사랑을 시작하는 길고도 아픈 이야기가 전개된다. 소화의 집은 현 부잣집 아래 있다.
▲ 소화의 집 무당의 딸 소화의 집은 현 부잣집과 태백산맥 문학관 사이에 있다
ⓒ 안태식
벌교 홍교를 찾아가고 있는데 좌측에 토벌대 숙소였던 '남도여관'의 실제 모델인 보성여관(등록문화재 제132호)은 전형적인 일본식으로 지어진 2층 건물이다. 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갑자기 토벌대가 나타날 것 같다.
▲ 보성여관(남도여관) 소설에서 남도여관으로 묘사되는 장소다
ⓒ 안태식
여기 술도가는 태백산맥의 주요인물 정하섭의 본가이며, 술도가로 돈을 벌어 지역 유지로 군림하던 아버지와 정하섭은 해방 정국에서 이념 갈등을 겪는다. 무당 딸 소화와 정하섭이 애틋한 인연을 맺은 곳이기도 하다.
▲ 소설 태백산맥의 양조장 술도가 정하섭의 본가로 묘사된다
ⓒ 안태식
1919년 건립된 르네상스식 바탕에 양식 건물로 붉은 벽돌과 돌로 지은 건물이다. 소설에서 조합장송기묵은 고리대금업으로 탄탄한 재력을 확보하고 딸을 이화여대로 유학시킨다. 그러나 좌익에게 잡혀 죽고 만다. '구 벌교 금융조합'라는 명칭으로 등록문화재(2005.12.9.)로 지정되었다.
▲ 별교 금융조합 소설에서 조합장의 고리대금업과 딸의 이야기가 나온다
ⓒ 안태식
금융조합에서 홍교 쪽으로 몇십 미터 걸어가니 벌교에서 유명하다는 빵집이 있는데 방부제는 넣지 않고 맛이 좋다고 하여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홍교는 앞쪽 3구간은 예전 모습이 보이고 그다음은 7구간은 새로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옛날 사진에서는 다리 위의 난간이 있었다. 홍교는 보물 제304호. 길이 27m, 높이는 약 3m, 폭 4.5m 내외. 이 다리는 1729년 순천 선암사의 승려 초안과 습성 두 선사가 만들었다.

한국에 남아있는 홍교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큰 돌다리다. 홍교가 놓이기 전에는 뗏목다리를 놓아 건너다녔는데, 벌교라는 이름이 여기서 유래되었다. <태백산맥>에서 김범우가 홍교 다리 위에 멈춰 서서 역사를 뒤돌아보는 묘사의 장소이다.
▲ 벌교 홍교 홍교는 보물 제304호. 길이 27m, 높이는 약 3m, 폭 4.5m 내외. 이 다리는 1729년 축조되었다.
ⓒ 안태식
▲ 옛날 홍교 모습 삼화목공소(1958년 창업) 유리창에 붙어 있는 것을 재 촬영
ⓒ 안태식
소설 태백산맥 관련 찾아보아야 할 권장 개소는 23곳에 이른다. 태백산맥 문학관, 소화의 집, 현 부자의 집, 화정리 교회, 소화다리, 김범우의 집, 홍교, 자애병원, 부용산, 청년단, 경찰서, 금융조합, 보성여관, 술도가, 솥 공장, 철 다리, 중도의 집, 중도방죽, 조정래 옛집, 태백산맥 문학비(주릿재), 석거리재, 진트재, 뱀골재 등이다. 그러나 가는 곳마다 썰렁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https://blog.naver.com/ewwwe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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