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중임 대통령제는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김현철 2025. 4. 7. 14:57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장]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새로운 헌법을 준비해야 한다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조기대선'과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와 관련 김현철 변호사가 관련 글을 보내와 싣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개헌 관련 다른 입장의 글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김현철 기자]

▲ 우원식 국회의장 개헌 관련 기자회견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이 내려진 이후, 6일 우원식 국회의장이 개헌론을 수면 위로 올렸습니다. 주로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를 그 골자로 하는 것이었습니다. 만약 박근혜와 윤석열 탄핵사태를 반성하고 등장하는 개헌이라면, 응당 새로운 헌법이 동일한 탄핵사태를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근대 이후에 과학이 모든 학문의 중심이 되었던 이유는 바로 '실험과 증명'에 있습니다. 실험을 통해 어떤 명제가 진리인가 아니면 거짓인가 여부를 증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과학적 실험의 기초적 방법론은 하나의 변수만을 바꾸고 나머지 조건은 그대로 두어 결과와의 인과관계를 관찰하는 것입니다. 만약 둘 이상의 요소를 움직이면 어떤 변수를 실험 결과에 귀속시킬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2018년과 2024년의 상황에서 5년 단임제 대통령제를 4년 중임 대통령제라는 변수로 바꾸었을 때, 박근혜 탄핵사태와 윤석열 탄핵사태가 발발하지 않아야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만약 4년 중임 대통령제로 바꾸더라도 여전히 동일한 사태가 발발한다면, 4년 중임 대통령제는 이 실험의 중요 변수가 아니라고 결론 내려야 합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대안이 될 수 없다

4년 중임 대통령제가 우리의 대안이 되려면, 먼저 이 제도가 국정농단을 막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국정농단은 박근혜, 윤석열이라는 자연인의 품성에 기인한 것이 아니고,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의 본질적 특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대통령제에서 대통령은 그 자체로 헌법상 '1인 행정부'입니다. 따라서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으로부터 신임을 얻은 자가 권력을 행사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통령제에서 권력의 크기는 대통령과의 거리, 즉 가까움에 비례합니다. 그중에서도 대통령의 아내만큼 대통령과 가까운 사람은 없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도널드 트럼프가 제2기 행정부 대통령으로 당선되고 나서 트럼프의 장남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제2기 각료를 사실상 지명했습니다. 2024년 11월 7일 트럼프 주니어는 폭스뉴스에 출연해서 "나는 정권 이양 과정에 매우 깊게 관여할 것"이라면서 "나는 누가 진짜 선수인지, 누가 대통령의 메시지를 실제로 실현할 것인지, 누가 정당하게 선출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지 분명히 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사람들이 아버지의 내각과 정부에 있도록 확실히 할 것"이라고 덧붙였습니다. 트럼프 주니어는 아버지보다 똑똑한 척하는 사람은 각료로 뽑지 않겠다는 뜻으로 "대통령보다 자신이 더 잘 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는 인사 원칙을 제시했는데, 이는 '조용한 충성파'를 뽑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백악관 비서실장으로 지명된 수지 와일스, 부통령으로 당선된 JD 밴스 연방 상원의원(오하이오) 모두 '조용한 충성파'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며, 트럼프 주니어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고 합니다. 도대체 트럼프 주니어가 무슨 권한으로 각료의 인선에 관여하는 것일까요? 이것은 국정농단이 아닌가요? 만약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을 한다면, 과연 국정농단을 방지할 수 있는 것인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묻습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박정훈 대령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지 못합니다. 당시 박정훈 대령이 이끌던 해병대 수사단은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을 기소한다는 의견으로 경상북도경찰청에 이첩했습니다. 그러나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이첩된 수사서류를 회수하고, 이에 반발한 박정훈 대령과 수사단을 항명죄로 기소하였습니다. 위 과정에서 대한민국 대통령 윤석열은 국방부 장관 이종섭을 '이등병 또는 조폭 똘마니'처럼 다루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을 윤석열이라는 한 자연인의 품성 문제로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은 '1인 행정부'로 헌법상 모든 행정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국방부 장관의 권한도 대통령의 권한으로부터 비롯되므로, 국방부 장관의 대통령에 대한 복종은 형식적으로 헌법에 부합합니다. 그래서 위와 같은 권한 남용은 대통령제 아래에서라면 언제든지 재현될 수밖에 없으며, 오히려 한 개인의 권한 남용을 헌법적으로 허용하는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에 문제의 원인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독일에서는 박정훈 대령 사건이 발발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채상병 사건이 독일에서 벌어졌다고 가정하겠습니다. 채상병 사건에 관해 종결된 수사를 군수사단이 민간경찰청에 이첩하는 것이 원래의 매뉴얼이므로 원칙을 벗어난 조치를 취하려면, 독일연방기본법 제65조에 따라 국방부, 행안부, 법무부 장관 사이에서 의견이 조율되고 합의되어야 합니다. 즉 윤석열 대통령이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그랬던 것처럼 독일연방 수상이 일방적으로 국방부 장관에게 명령할 수 없습니다. 독일연방 수상은 독단적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이며, 다만 합의체로서의 연방 내각이 의견 차이를 조율해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독일연방 기본법 제65조(책임)
연방 수상은 정책 계획을 결정하고 이에 대한 책임을 진다. 각 연방 장관은 이 지침 내에서 그 소관 사무를 자주적으로 그리고 자기 책임 하에서 처리한다. 연방 장관 간의 의견 차이에 관하여 연방 정부가 결정한다. 연방 수상은 연방 정부가 의결하고 연방 대통령의 재가를 얻은 직무규칙에 따라 사무를 처리한다.
요컨대 한 국가의 행정권력 전부를 한 인간에게 모두 독점시키는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이 21세기의 인류문명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시민 대다수가 높은 고등교육을 마쳐 서 정치담당자와 시민들의 지적 수준이 대동소이한 지금의 현실에서, 중세의 군주(君主)처럼 한 개인이 행정 권력 전부를 독점하는 체제를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이제는 각 부의 소관 사무를 각부 장관이 독자적으로 책임지게 하고, 행정부 리더는 각 사무를 조정하는 균형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좀 더 합리적입니다. 그래야만 행정부 수장의 독단과 권력 남용으로 점철된 대한민국 정치사의 오욕을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을 것입니다.또한 4년 중임 대통령제로 개헌한다고 하더라도, 명태균 게이트, 12.3 비상계엄 사태의 재현을 예방하지 못합니다. 위 사건들 자체가 대통령이라는 한 개인에게 모든 행정 권력이 집중되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 것들이며, 이는 대통령제의 본질적 결함으로부터 기인한 것입니다. 4년 중임제는 대통령의 임기를 연장하고, 레임덕을 조금 미루는 기능을 가질 뿐,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제도적으로 막지 못합니다. 4년 중임 대통령제는 박근혜, 윤석열 탄핵사태의 재현을 막지 못합니다. 우리는 박근혜, 윤석열이라는 개인의 권한 남용을 비난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서, 그러한 권한 남용을 용인하고 있는 대통령제 자체를 공격해야 합니다.

훌륭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박근혜와 윤석열 모두 도덕적이고 유능한 것처럼 포장된 상태에서 당선되었습니다. 애초에 제도란 최악의 경우를 예정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권력 담당자가 부도덕하고 무능할 경우를 대비해서, 권력 자체를 절제된 시스템으로 설계하는 것이 옳습니다. 오히려 한 개인에게 행정권력 전부를 부여하는 대통령제라는 이 시스템 자체가 지금의 가장 큰 문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책임총리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도 대안이 될 수 없다

개헌논의가 있을 때마다 등장하는 것으로 '책임총리' 또는 '분권형 대통령제'라는 용어가 있는데, 외치는 대통령, 내치는 총리가 맡는다는 개념의 체제입니다. 이는 대통령의 당과 의회의 다수당이 불일치하면서 등장한 프랑스의 동거정부(코아비타시옹, Cohabitation)로부터 비롯된 개념입니다.

그러나 동거정부는 프랑스 헌법이 예정하지 못한 체제로 대통령과 총리의 권한 분배가 명확하지 않아, 권력투쟁의 가능성이 잠재된 불안정한 권력구조입니다. 외치와 내치의 구분도 불명료하고, 자칫 총리와 대통령의 이중권력 상태가 노정될 수 있습니다. 프랑스 대통령제는 결코 분권적이지 않으며, 아주 강력한 권한을 가진 형태입니다.

대통령의 당이 의회의 다수당일 때에 대통령은 아주 강력한 권한을 가지며, 여소야대 형태가 되면 의원내각제의 형태로 운영되고, 권력갈등의 여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불안한 이중권력보다는 의회 다수당이 내각을 구성하여 행정권력과 의회권력을 일치시키되, 대신 행정부 수장의 권한을 대폭 줄인 합의제 내각이 훨씬 더 합리적입니다.

각 당 지도부가 밀실에서 합의하여 한 달 만에 개헌안을 제출하고, 그 다음 국민에게 가부만을 선택하게 하는 방식의 개헌은 결코 옳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역대 개헌의 역사가 이렇게 진행되었지만, 더 이상 이렇게 국민을 소외시키는 방식은 민주주의에 위배됩니다. 더구나 윤석열에 대한 국회의 탄핵결의 이후에 곧바로 개헌 논의가 진행되었다면 몰라도, 윤석열의 제2내란 행위가 지속되면서 이미 실기(失期)해 버렸습니다. 또한 지금의 개헌 논의에서 의원내각제에 대한 담론이 아예 빠져 있는 것도 문제입니다. 제2공화국의 비운의 역사, 김종필과 박철언 등이 장기 집권의 시나리오로 의원내각제를 모의했던 음모의 역사, 이웃 일본 내각제에서 보이는 부정적 사례, 국민들이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을 불신하는 정서 등으로 인해 국민 다수가 의원내각제에 대해 나쁜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돌이켜보면 의원내각제에 대한 지식이 턱없이 부족함을 알 수 있습니다. 설령 엘리트라고 스스로 자부하는 이들이라고 하더라도 의원내각제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정치학 교과서나 헌법학 교과서의 두 페이지 정도 지식에 불과합니다. 의원내각제의 대표적 특징을 정국 불안이라고 말하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탄핵사태를 지켜보면 여소야대의 대통령제가 훨씬 더 불안정한 정치체제로 보이는 이유가 무엇인지, 서유럽의 내각제는 일본이나 영국과 달리 끊임없이 역동적으로 새로운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정치판을 갈아치우는 이유는 무엇인지,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수상의 자리도 나눌 수 없는데 어떻게 내각제에서는 연립정부가 구성되는지 등등 그 이유를 아는 사람은 아주 적습니다. 의원내각제도 미래 정치형태의 하나로 고민되어야 하며, 그를 위한 시간이 부여되어야 합니다.

단언컨대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 혹은 프랑스식 분권 대통령제 등 어떤 미사여구를 붙이더라도 그 본질이 대통령제라면, 지금의 헌법보다 더 못한 개악(改惡)입니다. 새로운 헌법은 박근혜, 윤석열 탄핵사태가 재현 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제도로써 개정되어야 합니다. 이번 대선을 통해 당선된 대통령의 집권 기간 동안에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논의한 다음에, 개헌하는 것이 옳습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