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나를 힘들게 하고, 그런데 나는 행복하고
[정호갑 기자]
퇴직 후 일 년 만에 두려움을 안고 학교생활을 다시 시작한다. 36년 동안 학교생활을 하면서 중학생을 가르쳐본 경험이 전혀 없다. 중학생들에게 어떻게 다가가야 하지. 나이가 들어갈수록 아이들과 수업에서 공감대를 형성하기 어려웠다. 고등학교에서도 그랬는데, 중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한다는 것이 걱정을 넘어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 지원하면서,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고서도 가장 많이 망설였던 것이 중학교 수업이었다. 주위에서는 흔히 짬밥을 들먹이지만, 자신감은 돌아오지 않았다.
퇴임 전까지 교과 지도에 관한 여러 차례 발표를 한 바 있다. 또, 꽤 오랫동안 진학지도나 수능 출제에 참여했고, 해외 한국 학교에서도 근무했다. 이런 경험은 퇴임까지 나를 버티게 해준 힘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고등학교에서였다. 중학생들에게 나의 이런 경험들은 수업에 그리 큰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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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글로, 만족할 줄 알면 모욕을 당하지 않고, 멈출 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내용. |
| ⓒ 정호갑 |
수업하면서 놀라운 현상을 발견했다. 점수나 성적에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던 아이도 학습지의 물음에 최선을 다해 답하고 있다. 종이 쳐 학습지를 거두어 나가면, 뒤늦게 달려와 자기의 것을 받아달라고 사정한다. 제출하면 1점이고, 제출하지 않으면 0점이니, 이 아이가 1점에 이렇게 매달릴 아이도 아닌데 하면서 학습지를 받아 읽어 본다. 자기의 생각을 담아내기 위해 애쓴 흔적이 보인다. 자기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는 사람마다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를 그때 나는 표현 중심의 수업이라고 불렀다. 일 년 동안 했던 학습지를 있는 그대로 '참교육 실천 사례 및 교육자료 공모전'에 제출하여 최우수상을 받았다. 내 생애에서 받은 가장 큰 상이기에 그 뒤로는 형식적인 상이나 훈장은 받지 않았다.
중학교 수업도 이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수업 시간에 가능하면 아이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수업을 하자. 이를 통해 자신을 찾아갈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으로 두려움을 조금씩이나마 떨쳐 버릴 수 있었다.
나는 무엇을 하면 잘할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하면 재미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때 행복한가?
이런 물음에 스스로 답하며 자기의 길을 찾아가야 한다. 남을 흉내 내어 따라가려 하지 말고, 남과 다르게 자기 삶을 살아가도록 길을 열어 주는 수업을 하고 싶었다.
프놈펜한국국제학교에 부임하여 수업 교재도 그렇게 만들었다. 교과서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생각을 가능하면 많이 담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또한 자기의 생각을 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것이라면 서로 돌려볼 수 있도록 하였다. 돌려보며 생각의 다름을 통해 생각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수업 분위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나의 수업 방향과 학교가 추구하는 방향과의 거리였다. 학교에서 나의 이런 수업을 문제 삼지 않을까 걱정도 했다. 그런데 올해 부임한 교장 선생님의 교육 방침을 듣고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교장 선생님의 첫 번째 교육관이 '나다움'이었다. 그리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지침이 '더 좋게'보다 '다르게'였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아! 되었다', 내 생각과 학교의 교육 방향과는 거리가 없다.
그리고 중학교 올해 역점 사업으로 연구부장 선생님이 교육계획서에 제시한 것이 '신나는 학급, 행복한 학교'였다. 학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 그리고 고민해야 할 것을 이보다 더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는가?
학교는 아이들에게 길을 열어 주고, 행복으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학교에서 신나고, 행복한 학교생활을 할 수 있다. 학교의 교육 방향, 그리고 중학교의 역점 사업이 나의 수업 방향과 거의 일치하였다.
마지막으로 남은 가장 큰 걱정, 과연 아이들이 잘 따라와 줄까? 아이들에게 제시한 학습지를 아이들이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지. 형식적으로 하면 어떻게 하지. 한 달이 지났다. 한 마디로 내 걱정은 기우였다.
아이들은 학습지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하였고, 자기가 해결하기 힘든 것은 나에게 묻고, 옆 친구들에게 다가가 묻기도 하고, 서로의 생각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였다. 나는 돌아다니며 아이들이 학습지를 써나가는 것을 보고 가끔 조언하는 것으로 나의 역할을 대신했다.
3월 한 달을 그렇게 보냈다. 조금은 안도하고 느슨해질 무렵 학생의 글을 읽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중 1 교과서에 '공간이 우리 삶을 만든다'라는 글이 있다. 글의 내용 또한 아이들에게 정리하도록 한 뒤, '내가 살고 싶은 공간'에 대해 짧은 글 쓰기를 하였다.
내가 살고 싶은 공간은 학교와 같은 공간이다. 학교는 화목하면서 시끄러우며 재밌는 곳이다. 학교는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주며 친구들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학교는 내가 활발하고 멋진 사람이 될 수 있게 도와준 곳이자 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 주는 곳이다. 학교에서 나는 친구들과 놀 수도 있고, 공부할 수도 있으며, 어른들, 선생님들한테 배울 수도 있다. 운동장에서 나는 몸을 튼튼하게 만들고, 교실에선 머리가 똑똑해지게 노력하며, 그에 대한 보상으로 성적과 함께 더 좋은 곳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학교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알고 있는 지식을 다 알려주는, 나를 위대하게 만들어주는 곳이기에… 나를 온전한 나로 만들어주는 학교를 골랐습니다. (김채원. 프놈펜한국국제학교 7학년 재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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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놈펜한국국제학교 7학년 학생 김채원이 작성한 학습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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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놈펜한국국제학교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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