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은 없고 원칙만 강조…'정치' 실종된 尹정부 1060일

양길성 2025. 4. 7. 12: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골 검사'에서 '불통 대통령’으로
비윤계 배척…선거연합 스스로 해제
의대 증원, 설득 대신 원칙만…사태 장기화
"양극단 정치가 '정치 않는 대통령' 만들어"
사진=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 지은 2022월 3월10일. 그의 당선을 놓고 '정치 신인의 기적’이란 평가가 나올 때 일각에선 우려가 공존했다.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강골 검사’라는 정체성이 대화와 설득으로 타협과 공존을 이루는 정치 본령과는 맞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었다.

이러한 우려는 임기 2년7개월 동안 현실이 됐다. 생각이 다른 야당이나 비윤(비윤석열)계 인사와 대화나 타협하는 모습은 찾기 힘들었다. 지난해 4월 총선에서 완패한 뒤에도 과반 의석을 지닌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한번에 그쳤다. 전당대회 때마다 ‘윤심(윤 대통령 마음)’ 논란은 끊이지 않았다. 야당의 입법 폭주와 탄핵 남발에 반헌법적 계엄 선포라는 카드를 꺼내 대응한 것도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정치 신인, 8개월 만에 대선 직행

윤 대통령은 헌정사 최초 검사 출신 대통령이다. 26년 간 검찰에 몸 담으며 검찰총장까지 지냈다. 범죄자 수사가 주된 일인 만큼 적당히 타협하는 일은 없었다. 소위 ‘윗선’의 반대에도 전직 대통령, 기업 총수들을 구속기소했다. 2013년 국정감사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발언이 그를 나타낸다.

사진=연합뉴스


 그의 강골 기질은 ‘조국 사태’, ‘울신시장 선거개입 의혹’ 등을 거쳐 ‘공정과 상식’이라는 상징 자본이 됐다. 이는 문재인 정부에 실망한 유권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그는 대선 경선 당시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과 싸우는 거 하나는 잘한다”며 “나는 맞을수록 단단해지는 강철”이라고 했다.

타협을 모르는 정의감과 투지는 대통령이 된 뒤 도리어 독이 됐다. 한 재선의원은 “때로는 적과도 손을 잡는 게 정치의 역할인데 이번 정권에서 대화나 타협, 설득은 찾기 어려웠다”고 했다. 친윤(친윤석열)계 중심으로 당시 당 대표인 이준석 의원을 징계·퇴출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이 의원 퇴출은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2030세대 남성 지지층의 이탈을 가속화했다.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이끈 ‘선거연합(2030세대+6070세대)’을 깬 것이다. 2023년 3월 전당대회 과정에서 안철수 나경원 의원 등 비윤계 인사를 배척한 것도 마찬가지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상 선거연합보다 통치연합이 커야 정권이 유지가 되는데 이번 정부는 반대로 갔다”고 했다.

야당 대표와의 만남은 한차례 그쳐

지난해 2월 발표한 2025학년도 의대 정원 확대 정책은 의료계 지지자 이탈은 물론 대통령의 ‘불통’ 이미지를 강화하는 계기가 됐다. 2023년 7월 해병대원 순직 사고는 군을, 같은 해 8월 과학계 연구개발(R&D) 예산 삭감 논란은 과학계를 외면하게 했다.

사진=연합뉴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 서울양평고속도로 노선 변경 논란 등 이른바 ‘김건희 여사 리스크’는 정권 내내 발목을 잡았다. 이때도 법과 원칙만 강조할 뿐 비판 여론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윤 대통령은 총선 직후 참모들에게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자신의 국정 운영 방식을 반성하기도 했다. 다만 그 이후에도 야당 대표와 한 차례만 대화하고, 야당이 강행 처리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쓰며 강대강 대치를 이어갔다.

정부 핵심 인사는 “김 여사 문제가 불거졌을 때 대국민 사과부터 법적 처벌 등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정무적 판단인데 법적으로 잘못한 게 없다는 식의 대응이 화를 키웠다”고 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양극단의 정치가 문제”

탄핵에 이르게 한 비상계엄 선포도 정치력이 아니라 대통령 권한에 의지한 행위였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대국민 담화에서 “(계엄) 목적은 국민들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라고 했다. 한 국민의힘 관계자는 “더불어민주당 등을 ‘반국가세력’으로 지칭한 것은 대화의 대상이 아니라 척결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라고 했다.

다만 한 재선의원은 “민주당이 29번의 탄핵과 정부 예산안 및 법안 강행처리로 사실상 국정을 마비해 온 상황에서 대통령에게만 대화와 타협을 요구할 순 없다”며 “양극단의 정치가 정치하지 않는 대통령을 만들었다”고 꼬집었다.

양길성 기자 vertigo@hankyung.com

Copyright © 한국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