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천재 이창호 사범을 만난 곳... '승부' 보며 그 기억이 떠올랐다
[최호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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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승부> 장면 |
|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
1990년대 초 서울에서 살다가 전북 전주로 이사를 왔다. 전주는 아버지의 고향이자 내 본적지였다. 하지만 서울에 비해 너무 낙후된 이곳은 낯설기만 했고, 결정적으로 친구 하나 없는 이 도시가 정감이 가지 않았다.
당시 나는 오렌지족을 표방하며, 서울에서 유행하던 말구두(카우보이 신발)를 신고 스키니진을 입고 전주 시내를 구경했다. 그러자 사람들의 불편한 시선이 느껴졌다. 나를 향해 "저건 뭐야?"라는 식으로 쳐다보는 사람들은 대부분 통바지에 하얀색 프로월드컵 신발을 신은 건달 같은 모습이었다.
심지어 초면에 누군가 반말로 다가오면 무서워 꼼짝없이 존대를 하며 고개를 숙여야 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내게 강압적인 태도를 보였던 이들은 나보다 어린 친구들이었다. 그러나 외모만 보고 그들을 형님뻘로 착각했는데, 그만큼 서울과 지방의 문화 차이가 컸다.
요즘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라 어디서 무엇이 유행하는지 알 수 없었고, 단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서 형님, 누나들이 유행시키는 패션을 동생 세대가 그대로 따랐던 것 같다. 그 시절, 현재는 전주의 유명 콩나물국밥집인 웽이집 2층에서 학원을 다녔다. 이곳은 이제 영화 타짜를 촬영한 명소가 되었지만, 당시에는 기성복을 파는 옷 가게와 오락실이 있었다.
요즘 세대는 오락실이라는 공간을 잘 모르겠지만, 80~90년대의 오락실은 남녀노소 누구나 여가를 즐기던 곳이었다. 한 판에 50원이던 게임비가 100원으로 올랐던 시기였고, 오락실 내부에서는 흡연도 가능했다. 내가 바둑 천재 이창호 사범을 처음 본 것도 바로 이곳이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지금은 사라진 전주 고시학원 위쪽 방향으로 가다 보면 오래된 오락실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그곳에 이 사범이 자주 게임을 하러 왔다. 당시 그는 평범한 학생처럼 보이는 외모였지만, 그를 알아본 형들과 아저씨들이 그의 발을 툭툭 치며 "네가 그렇게 바둑을 잘 둔다며?"라고 신기해하며 말을 걸곤 했다. 그러면 그는 특유의 말투로 "네"라고 대답하고는 다시 게임에 몰두하곤 했다.
최근 개봉한 조훈현 9단과 그의 제자였던 이창호 사범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승부를 보며 동시댈 함께한 이창호 사범이 이제는 역사가 되었음을 느꼈다. 나 역시 요즘 늦은 나이에 바둑을 배우며 영화를 관람하니 더욱 몰입할 수 있었는데, 그때는 몰랐지만 당시 미성년자로 기성 바둑 기사들처럼 술·담배로 스트레스를 풀 수 없었던 그의 스트레스 해소법이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는 것이었다고 생각하니 그가 더욱 대단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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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승부> 장면 |
| ⓒ (주)바이포엠스튜디오 |
즉, 두 천재 바둑 기사 조훈현 9단과 이창호 사범의 치열한 승부와 그들의 내면을 섬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꼭 역사 다큐멘터리를 연상시킨다. 특히 조훈현 9단의 압도적인 실력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를 뛰어넘으려는 이창호 사범의 조용하지만 강렬한 열망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병헌과 유아인의 열연이 돋보인다.
또한, 영화는 1980~90년대 당시의 시대적 분위기를 탁월하게 재현해 그 시절을 살아온 관객들에게 깊은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영화 관람 후, 전주라는 지역적 배경과 과거 오락실에서 스트레스를 풀던 이창호 국수의 여드름 많던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돌부처라는 별명처럼 진중하고 천재적인 인물이었지만, 그 역시 인간적인 면모를 지녔음을 다시금 느꼈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는 단순히 바둑 팬들만을 위한 작품이 아니라, 그 시절을 함께한 모든 이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작품이라 평가하고 싶다. 다만, 초반에 묘사된 전주 사투리 말투는 약간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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