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네요, 여기는 무조건 앉아서 활을 쏴야 한답니다

김경준 2025. 4. 5.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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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 배웁니다 24] 일본 관광 가서도 만난 활... 교토 엔잔대궁장( 園山大弓場) 방문기

어린 시절 사극을 보며 품었던 활쏘기에 대한 로망을 30대가 되어 이뤘습니다. 대학원생으로 살면서 활쏘기를 통해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습니다. 보다 많은 분들이 활쏘기의 매력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활을 배우며 얻은 소중한 경험들을 공유하고자 합니다. <기자말>

[김경준 기자]

지난 2월 말, 일본 교토로 짧게 여행을 다녀왔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하던 중, 주머니 속 휴대전화가 울렸다. SNS를 통해 교토에 있다는 소식을 접한 지인(국내에서 실내 국궁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다)으로부터 메시지가 날아와 있었다. 교토에 역사가 오래된 궁도체험장이 있으니 꼭 한번 가보라는 것.

안그래도 국궁 수련자로서 일본에 온 김에 일본의 전통활쏘기(궁도)를 체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나 막상 가려니 궁도장이 당최 어디에 있는지, 일반인도 이용 가능한지 아무런 정보가 없어 포기한 상태였다. 그러나 역시 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운명이었던지, 생각지 못한 데서 동아줄이 내려온 것이었다.

주소를 찍어보니 마침 내가 있는 곳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일정상으로도 여유가 있었기에, 궁도장 방문을 오후 일정에 추가했다. 그리고 영업시간이 종료되기 전 서둘러 궁도장으로 길을 잡았다.

160년 역사의 일본 궁도장 방문... '앉아 활 쏘기' 하는 이유

내가 방문한 '엔잔대궁장(園山大弓場)'은 교토 시내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었다. 야사카 신사(八坂神社) 바로 옆에 위치한 작은 건물이었다. 에도시대인 1862년에 문을 열었다고 하니, 2025년 기준으로 그 역사가 무려 160여 년에 이르는 셈이었다.
 1862년 문을 연 엔잔대궁장(園山大弓場)
ⓒ 김경준
궁도장에 들어서니 일본 활들이 줄지어 세워져 있고, 딱 봐도 오래돼 보이는 낡은 현판이 상단 벽면을 장식하고 있었다. 그 아래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진 종이 명단이 나란히 걸려있었다.
방문객들 중 활을 잘 쏴서 상위권에 들게 되면 이렇게 명부를 작성하여 걸어두고 있다고 한다. 놀라운 것은 개중에 한국인들도 있었다는 사실. 세계적 양궁 경기에서 금메달을 휩쓰는 한국인들의 활쏘기 DNA는, 어딜 가나 빛을 발하는 모양이다.
 엔잔대궁장 내부 모습
ⓒ 김경준
엔잔대궁장은 예약제로 운영되지만 사람이 없을 경우에는 예약 없이도 이용 가능하다. 다행히 내가 방문했을 때는 아무도 없어 바로 이용할 수 있었다. 인상 좋은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안내를 받아 본격적인 체험에 돌입했다. 이분은 곁에서 나를 촬영해주면서 계속 제 자세를 관찰하고 지도를 해주시기까지 했으니, 설명은 못 들었지만 아무래도 전문가 같았다.

체험 비용은 16발에 2700엔이다. 그러나 궁도 경험자는 1900엔으로 할인해 준다(2025년 3월 기준). 경험이 없는 초심자의 경우 지도에 따른 비용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비록 궁도는 아니지만 나 역시 한국에서 국궁을 연마하고 있다고 하니 할인가로 활을 쏠 수 있었다.

참고로 엔잔대궁장의 체험 비용은 한국의 국궁 체험 비용과 비교하면 저렴하다고 할 수는 없다.

한국에서도 국궁을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 제법 있는 편인데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충남 아산 현충사의 경우 관람객을 대상으로 무료 활쏘기 체험 코너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 황학정 국궁전시관에서 운영하는 활쏘기 체험은 유료이다(10발 기준 4000원, 추가 10발시 2000원). 활쏘아, TAC 등 개인이 운영하는 실내 국궁체험장들의 경우도 엔잔대궁장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다.

엔잔대궁장의 신기했던 특징은, 활을 '앉아서' 쏘게끔 되어있다는 점이다. 한국 국궁장에서는 서서 활을 쏘는 게 원칙이고, 앉아서 쏘는 등의 방식은 공식적으로는 허용되지 않기에 이것 역시 신선한 경험이었다. 과녁까지의 거리는 14m로 145m에 이르는 국궁의 표준 사거리에 비하면 매우 짧다.

사실 일본 궁도도 한국 국궁처럼 기본적으로 서서 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엔잔대궁장 홈페이지 설명에 따르면, 이곳은 에도시대부터 기사(騎射: 말타며 활쏘기) 연습장으로 출발했기 때문에 서서 쏘는 입사(立射)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과거 기사 연습을 위해서, 앉아서 활을 쏘던 원칙이 그대로 남아 전해지는 듯했다.

잠깐 일본 활의 특징을 짚고 넘어가 보자. 일본 활은 화궁(和弓)이라 부르는데 기본적으로 2m가 훨씬 넘는 장궁(長弓)이다. 1m 내외에 불과한 우리 활에 비하면 2배에 달한다.

일본 활이 이렇게 긴 형태로 발전한 데는 자연환경의 영향을 받은 탓이 크다고 한다. 일본의 풍토상 대륙 계통의 동물성 재료를 구하기도 어렵거니와, 고온다습한 기후 탓에 동물성 재료로 활을 만들면 망가지기 쉬웠다는 것이다.

하여 일본에서는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대나무와 목재를 결합하는 방식으로 활을 만들어왔는데, 이런 방식으로는 탄성이 약할 수밖에 없었고 이를 극복하려다 보니 결국 자연스레 긴 형태가 되었다는 설명이다(일본 활의 형태에 관련한 설명은 논문 '김태영·황의룡, 「일본 궁도(弓道)의 전개과정에 관한 고찰」, 『대한무도학회지』 23, 대한무도학회, 2021'을 참고했다).
 일본의 화궁(和弓)
ⓒ 김경준
참고로 우리의 전통 활인 각궁(角弓)은 참나무, 산뽕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와 소힘줄, 물소뿔 등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재료들을 결합하여 만들었다. 활의 탄성을 강화해 주는 여러 재료를 결합해 만들었기에 일본 활에 비하면 작지만 단단하다.

일본 활을 쏴보니, 한국과 다르긴 다르다

"맛스구(真っ直ぐ: 똑바로)! "

한 발 한 발 쏠 때마다 주인아주머니가 계속 외쳤다. 활채를 옆으로 기울이지 말고 수직으로 곧게 세워서 쏘라는 것이다.

참으로 난감했다. 우리 활은 옆으로 살짝 기울여 쏘는데, 몸에 밴 습관 탓에 나도 모르게 자꾸만 활채를 기울여 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나의 경우 '고 자치기'라고 하여 쏘고 난 뒤 활채를 완전히 눕히는 사법(射法)을 구사하는데, 이런 습관도 일본에서 일본식 화궁을 쏘는 데 애로사항으로 작용했다. 긴 활을 앞으로 기울이다 보니, 상단 벽에 자꾸만 활채가 부딪혔던 것이다.

기존의 습관을 죽인 채 활을 쏘려다 보니 신경이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고 자연스레 몸도 굳어졌다. 무릇 활은 몸과 마음이 편안한 상태에서 쏴야 하는데온몸이 경직된 채로 활을 쏘니 화살이 제대로 날아갈 리 만무했다.

조준점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우리 활터에서는 145m 너머의 과녁을 향해 활을 쏜다. 그러나 그에 한참 못 미치는 14m 거리의 과녁을 향해 조준을 하려니 어디를 겨냥해야 할지 좀처럼 감을 잡지 못했다. 얄궂게도 화살은 과녁 주위로만 날아가 박혔다.

그렇게 정신없이 활을 쏘다 보니 어느새 화살이 다 떨어져 버렸다. 한국에서 활쏘기를 수련한다고 말이나 하지 않았으면 나았을까. 괜히 민망해진 나는 "習慣が怖いですね。本当に難しいですね。(습관이 무섭습니다. 정말로 어렵네요)"를 연발하며 멋쩍은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일본 궁도를 체험해보는 기자의 모습
ⓒ 김경준
우리 활의 우수함을 깨닫다

짧은 체험이었지만 우리 활의 우수함을 느끼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한국의 활이 전 세계 활들 중에서도 특히 우수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냥 전통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강조하는 차원에서 으레 하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직접 쏴보니 그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일본 활에 비하면 우리 활은 작고 튼튼하니 휴대하기에도 좋고 통제하기에도 수월하다. 그러면서도 탄성은 일본 활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나지 않던가. 왜 조선군의 장기가 활쏘기였는지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작지만 단단하고 탄성이 뛰어난 한국의 전통 각궁 (서울 공항정)
ⓒ 김경준
체험이 끝난 뒤, 주인아주머니와 이런저런 사담을 나눴다. 그러다 내가 국궁을 하는 모습까지 보여주게 됐는데, 주인아주머니는 과녁까지의 거리가 145m라는 말에 놀라며 "すごい(대단하다)"를 연발했다. 뿌듯함과 자부심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사실 우리 활의 우수함을 느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중국을 방문했을 당시 중국의 전통활쏘기를 체험해 볼 기회가 있었다. 중국의 활 역시 일본 활 못지않게 크고 무거웠다. 그러나 날렵하고 강한 우리 활을 경험해 봤던 입장에서, 중국 활은 여간 불편한 게 아니었다. 그때도 나는 우리 활의 뛰어남을 실감한 바 있었다.
 중국 충칭의 활쏘기 체험장에서 중국 전통활쏘기를 체험해보는 기자의 모습 (2020.1.13 촬영)
ⓒ 김경준
이제 한·중·일 삼국의 모든 활쏘기를 체험해 본 입장에서 나는 한국의 전통 우리 활, 우리 활쏘기야말로 한국인들이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귀중한 문화유산이라 생각한다.

이런 훌륭하고 우수한 활을 개발하고 만들어왔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놀라울 따름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우리 활과 활쏘기의 소중함을 깨닫고 이를 계승하려는 노력에 동참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팁. 일본 여행 가서 일본 활을 체험하려면
한국에서 일본 궁도를 체험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므로 일본 교토에 가게 된다면 한 번쯤 일본의 궁도장을 방문하여 체험을 해보는 것도 신선하고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친절한 지도와 서비스 역시 매우 인상적이다. 활을 쏘는 동안 나의 자세를 영상으로 촬영한 뒤 즉석에서 이메일로 전송해 준다.

<엔잔궁도장>(園山大弓場)
※ 주소: 일본 〒605-0073 Kyoto, Higashiyama Ward, 円山 公園北林 (구글맵)
※ 영업시간: 10시~19시 (12~13시 점심시간) * 오전 방문은 주말에만 가능
※ 연락처: +81 75-561-3568 (예약제, 단 14세 이상만 체험 가능)
※ 홈페이지: daikyuj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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