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년 전 정자 팔았을 뿐인데... 아들이라며 1억 요구한 까닭
[조영준 기자]
|
|
| ▲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 |
| ⓒ 스튜디오 에이드 |
01.
"1억만 주면 신고도 안 하고, 두 번 다시 그쪽 앞에 나타나지 않을게요."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는 시작부터 두 인물의 이야기가 병렬되어 진행된다. 자신을 엄격하고 반듯하게 관리하고 통제하는 내과의사 치성(강길우 분)과 브로커를 통해 자기 유전자를 분석하는 영재(이찬유 분)다. 카메라가 의도적으로 비추는 인물은 치성이다. 모든 것이 제자리에 칼각을 유지하며 정돈되어 있고, 챙겨 먹는 영양제마저 몇 주분이 미리 준비된 인물. 주변에서 재미가 없다고 할 정도의 인생을 살고 있는 사람이다. 요트를 타고 항해를 떠나는 일이 유일한 꿈인 그는 이마저도 준비를 거듭하며 완벽한 날을 기다린다.
치성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보여주자마자 영화는 이면에서 진행되고 있던 영재의 장면을 그 삶 속으로 침입시킨다. 오래전 그가 돈을 받고 팔았던 정자로 태어난 아이다. 육상 선수를 꿈꾸던 영재는 심장병 문제로 더 이상 달릴 수 없게 되자, 자신의 결함을 대신 책임지라며 치성을 찾아와 손해보상금으로 1억 원을 요구한다. 인생 전반에 있어 예외란 없이 살아왔던 그로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상황. 아니나 다를까, 정식으로 요청한 유전자 검사 결과는 99.99% 일치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치성은 그런 영재와 영재의 아버지 동석(양흥주 분)과 만나게 되며 부성(父性)의 책임감을 마주하게 된다.
02.
보편적인 시선에서 바라본 영화에 대해 먼저 이야기하자면, 이 영화가 드러내고자 하는 논점은 법적인 의미의 가족과 생물학적인 의미의 가족 사이의 고민이다. 17년 전, 의대생이던 치성이 서울로 올라와 등록금이 없어 저질렀던 정자 판매와 그로 인해 태어난 영재 사이의 문제다. 부모란 무엇으로 정의되는 것인지, 과거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해진 '가족'의 개념 위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를 '진짜 가족'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등에 대한 논의가 영화 안에서 간접적으로 이루어진다. 이는 작년 연말에 개봉한 양우석 감독의 <대가족>(2024)에서도 한번 다루어진 적이 있다.
조금 더 눈여겨 보고 싶은 지점은 이 작품을 연출한 최재영 감독이 작품을 설명하는 내용에 있다.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의 전체 테마가 '벗어날 수 없는 쳇바퀴 같은 삶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한 남자가 누군가로부터 자기 영역을 침범당했는데 알고 보니 그것이 해방의 시작이었다'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부분이다. 다시 말해, 이야기 속에 자신의 영역을 침범당하는 인물이 있고, 그 인물이 해방되어야 할 상황이나 심리적 타이(tie)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
|
| ▲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 |
| ⓒ 스튜디오 에이드 |
"나 믿어도 된다고 내가 너 그 집에서 나와서 달리기할 수 있게 해 줄게."
사실 생물학적 부자(父子) 관계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서로의 하자를 증명하는 과정은 극의 전개를 위해 필요한 장면에 해당된다. 그중 의미적으로 살아남는 장면은, 수많은 다름에도 불구하고 같은 편의점 도시락을 동시에 선택하는 모습과 같은 사소한 지점에 불과할 정도다. (서사적으로 두 인물 간의 유대감과 시간을 쌓는 과정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영화는 이를 극의 흐름을 위해 다소 포기한 듯 보인다.) 오히려 영재의 부탁으로 찾아간 학교를 통해 그가 심장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과 과거 육상을 했다는 사실, 그리고 아버지 동석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지점이 이 영화의 서사를 한발 더 나아가게 만든다.
영재의 심장병은 치성의 감춰져 있던 내면의 고리를 일으켜 세우는 장치다. 후반부에서 밝혀지는 내용이지만, 그는 영재의 병으로부터 이를 똑같이 앓고 있던 기억 속의 인물, 자신을 엄격한 규칙과 질서로 몰아세우게 했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원양 어선을 타고 몇 달마다 한 번씩 집을 찾던 그는 사실 나가 있는 동안 손을 떨면서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이었고, 언젠가부터는 집에 제대로 나타나지도 않았다. 치성은 아버지와 다른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고, 그로 인해 철저하게 자기 통제된 삶을 살아가게 된다.
|
|
| ▲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 |
| ⓒ 스튜디오 에이드 |
"챙겨 준다면서 그렇게 자라도록 방치한 거 아닙니까?"
한편, 동석은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내의 몫까지 아들을 누구보다 소중히 키워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자신이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아니라는 사실에 마음이 묶여 있다. 영재가 중학교 1학년 때 정자 기증 서류를 보고 난 뒤로는 더 심해졌다. 스스로 항변하기로는 장거리 트럭 운전을 나가 있는 동안에도 하루 몇 번씩 연락하고 챙겼다고 하지만, 정작 그가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지 못한다. 정말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학교에서는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와 같은 가장 기본적인 일들에 대해서도 그렇다. 학교에 한 번만 나가보면 다 알 수 있는데도 말이다.
아무런 상의도 없이 사 온 구두를 영재의 발에 억지로 신기는 장면에 그가 가진 모든 변질된 감정이 그려진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영재가 자신의 출생과 관련된 서류를 발견하기 전으로 돌아가면 된다고 주장하는 장면이다. 이번에도 일방적인 태도다. 영재가 자신이 태어나는 방식에 아무런 관여를 할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지만 지금과 그때는 다르다. 치성이 생물학적으로 연결된 존재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외면하려고 했다면, 동석은 자신의 삶을 주도적으로 살아갈 자유가 있는 아들의 의지와 권리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05.
치성과 동석, 두 아버지에게 있어 아들 영재는 단순히 아들 이상의 존재라는 것을 이제 알 수 있다. 치성에게는 과거로부터 시작된 규칙과 억압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동석에게는 과거의 감추고 싶은 사실로부터 시작된 거짓과 왜곡을 수정하고 다시 나아갈 기회를 얻을 수 있게 해준다. 앞서 생략했지만, 그 과정에서는 또 다른 실수와 갈등이 반복된다. 오히려 현실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하게 되는 이 대목은, 영화가 완벽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 완벽하지 않아도 받아들이고, 서툴러도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아버지가 되는 과정'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
|
| ▲ 영화 <프랑켄슈타인 아버지> 스틸컷 |
| ⓒ 스튜디오 에이드 |
"말로만 떠난다고 하면서, 사실은 못 떠나는 거죠?"
영화의 마지막에서 치성은 더 완벽한 때를 기다리며 떠나지 못했던 항해를 시작한다. 이 장면은 단순히 자신이 상상하던 꿈을 이루는 장면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변화시키는 과정의 처음처럼도 여겨진다. 과거의 자신을 단번에 완벽하게 지워내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안고 나아가는 모습이다. 현실적으로도 한순간에 모두 변하는 일은 거짓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치성 또한 '좋은 아버지' 혹은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아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게 이제는 과거에서 벗어나 받아들이고 변화할 준비가 되었다는 점 아닐까.
치성과 영재, 그리고 동석 세 사람의 먼 미래의 모습을 한번 상상해 본다. 아마도 영재가 성인이 되고 난 이후의 장면이 아닐까. 물론 영화에서는 주어지지 않는 신이다. 나는 세 사람이 나란히 둘러앉아 함께 소주 한 잔을 나누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태어나지 않았을 때, 아직 학생이던 때에는 어른들의 사정과 결정에 휘둘렸지만, 이제는 스스로 아버지들과 마주 앉아 대등한 관계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런 시간 동안 두 아버지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을 것이다. 어쩌면 지금처럼 그때도, 치성의 얼굴에는 무표정하지만 관객들만 알아차릴 수 있는 작은 미소가 떠오를 테지만.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속보] 마침내 8대0, 탄핵사유 전부 인용 "주문, 피청구인 윤석열을 파면한다"
- 뜨개질로 밤샘, 연차 내고 헌재로... '윤석열 심판의 날' 직관 나온 주권자들
- 최초, 최고, 최장...윤석열은 역사에 남을 것이다
- [박순찬의 장도리 카툰] 심판의 날
- 밥에 살짝 얹었을 뿐인데... 기가 막힌 맛입니다
- '입틀막 정권'의 최후... 광장에서 그들이 쌓은 벽이 무너진다
- '30년 근무' 기장도 고개 갸웃... 조류 퇴치 시스템 있으면 괜찮은가?
- 군사법원, 곽종근 전 특전사령관 보석 허가
- 윤석열 탄핵 심판 1시간 전... 이재명 "현명한 판단 기다리겠다"
- 윤석열·김건희 언제 방 뺄까?... "김성훈이 말도 못 꺼내게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