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최대 위험은 저성장… 트럼프 관세폭풍 전 이미 구조적 한계[Deep Read]

2025. 4. 3. 0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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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Deep Read - ‘사면초가’ 한국경제
생산인구감소 따른 ‘逆인구배당효과’ 커져… 생산성 뒷받침 없는 ‘빚 의존 성장’ 큰 문제
저성장은 ‘삶의질 저하·개인의 축소’ 초래… ‘트럼프 시대’ 경제안보 역량 갖추기 시급

저성장은 한국 경제가 당면한 최대 위험이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트럼프의 귀환’ 이전부터 구조적인 문제를 가졌다. 전 세계를 강타하는 트럼프발(發) 관세 폭풍은 경제안보의 중요성을 더욱 일깨울 것이다.

세계은행이 분류한 고소득·중간·저소득국가군, 그리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및 전 세계와 비교할 때 한국의 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2000년대 초반까지는 모든 유형의 국가군보다 높았으나 2003년부터 중간·저소득국가군, 2010년대 후반에는 전 세계, 2022∼2023년엔 모든 유형의 국가군으로부터 추월당했다.

◇‘빚 의존 성장’의 한계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구조적이다. 2020년부터 줄어든 생산인구는 2025년부터 급감한다. 유엔 인구 전망 및 인구학자의 연구로 볼 때 한국의 경우 2020∼2050년에 ‘역 인구배당효과’, 즉 생산인구 감소로 인한 성장손실은 1인당 GDP 기준 연 1.75%포인트 감소로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크다. 고령화가 일찍 시작된 일본은 0.66%포인트 감소로 분석됐다. 학자들은 1960∼1980년 한국 경제 고성장에는 생산인구 증가에 따른 인구배당효과가 컸다고 규명했다. 인구배당효과가 컸던 만큼 역 인구배당효과도 큰 것이다.

빚은 저성장을 구조화하는 또 다른 요인이다. 그래프는 지난 25년간 한국·선진국·신흥국의 ‘GDP 대비 비금융 민간부문(가계 및 기업)’의 부채비율을 보여주는데, 여기엔 두 개의 중요한 함의가 있다. 첫째, 2010년대 후반 부채비율이 급상승해 선진국 수준을 크게 웃도는데 이는 정부가 ‘빚 의존 성장’을 추구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해당 기간이 지속가능 성장의 척도인 생산성이 정체된 시기와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늘어나는 빚은 단기적으로는 성장을 촉진하지만 생산성 개선이 뒷받침되지 않는 한 중장기적으로는 상환 압력을 높여 성장을 저해한다. 과도한 빚은 상환 압력에 따른 ‘부채 오버행’을 일으켜 기업의 투자활동과 가계의 소비지출 및 성장을 위축한다. 빚이 많은 기업은 부실 가능성도 크다.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내지 못한 기업은 2017년 전체 기업의 31.2%에서 2024년 상반기 44.8%로 늘어났다. 대기업도 18.8%에서 30.8%로 증가했다.

둘째, 포스트 팬데믹 기간 선진국이나 신흥국과는 달리 부채비율이 날카롭게 하락하는 모습이 없었던 것은 빚의 증가율이 경제성장률보다 높았다는 점을 말해준다. 높아지는 부채비율과 저성장의 조합은 빚이 성장을 옥죄는 부채 오버행이 시작했다는 분석을 낳게 한다.

◇개인의 축소와 수출 정체

저성장은 원화 약세를 동반해 삶의 질을 떨어뜨렸다. 팬데믹 직전 2020년 1월을 기준으로 주요 교역국 통화에 대한 달러화가치보다 원·달러 환율이 훨씬 크게 상승한 것은 원화가치가 미 달러화뿐 아니라 다른 통화에 대해서도 하락한 것을 의미한다. 원화는 주요 신흥국 통화에 대해서도 상당히 떨어졌다.

저성장의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분야 중 하나는 자영업이다. 2023년 기준 전체 고용의 23.2%를 차지한 자영업의 고용 비중은 여타 선진국보다 훨씬 높다. 자영업자가 포함된 개인·비영리단체(이하 ‘개인’)는 비금융법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부가가치를 생산한다. 2022년 비금융법인은 1455조 원, ‘개인’은 321조 원을 창출했다. 비록 그 위상이 하락하고는 있으나 자영업은 여전히 한국 경제의 한 축을 이룬다. 2010년대 후반부터 ‘개인’은 다른 부문과 달리 고용·부가가치·피용자보수 등 전 항목에서 절대 규모가 축소되고 있는데, 이는 대폭 오른 최저임금·팬데믹·금리폭탄을 연이어 두들겨 맞았기 때문이다. 팬데믹을 제외하면 ‘개인의 축소’를 가져온 최대 원인은 저성장인 셈이다.

통상 내수가 어려우면 수출에서 활로를 찾았다. 그러나 2010년대 초부터 수출은 정체되는 모습을 보인다. 1980년 이후 전년 대비 (명목) 수출액이 감소한 해는 모두 10번이었다. 이 가운데 6번이 지난 11년에 걸쳐 일어났다. 수출 정체는 취약한 수출 경쟁력 때문에 일어나고 취약한 경쟁력은 정체된 생산성에서 비롯됐다. 생산성 정체는 중국의 수출과 비교하면 쉽게 확인된다. 2010년대 초 중국의 상품수출은 한국의 3배 남짓했으나 지난 몇 년 사이 5배로 그 격차가 확대됐다.

과거 가난했던 나라가 오늘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수출 덕분이었다. 국제규범에 따른 자유주의 질서하에서 한국 경제는 안정적인 수출시장을 확보해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자유주의는 자국이기주의로 대체됐고, 앞으로 이 추세가 바뀔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트럼프 시대의 경제안보

경제안보는 바뀐 세상의 키워드다. 경제안보는 한 나라의 지속가능한 번영의 장애가 될 수 있는 지정학적·지경학적 문제나 기후변화와 같은 잠재적인 위험요인을 식별하고 이를 제어하는 능력이다. 비록 동맹관계라고 하더라도 한 나라의 경제안보는 얼마든지 다른 나라의 경제안보와 충돌할 수 있다.

특히 트럼프 시대를 맞아 정부가 경제안보 역량을 갖추는 것은 중요하다. 많은 방정식을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국가 핵심이익과 목표를 설정하고, 전략자산과 부채를 나열하고, 자산과 부채 간 매핑(mapping)을 통해 취약한 부분을 식별하고, 이를 보완하기 위한 정책대안을 수립·시행하는 지배구조가 뒷받침될 때 비로소 가능하다. 한국 경제의 저성장은 단기적으로 극복될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무엇을 하기보다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아는 게 중요하다. 무엇보다 빚 의존 성장은 더는 가능하지 않다. 역기능만 가중될 뿐이다.

침체 시 정부는 건설 붐으로 벗어나고자 했다. 그러나 건설 붐은 경제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동반한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생산성이 높은 기업이 아닌 담보가치가 높은 부동산 보유 기업의 생산활동이 촉진되기 때문이다. 모든 정책엔 비용이 따른다. 부동산 관련 한 유명 유튜버는 부동산을 버리고 인공지능을 키운 중국 정부가 부동산에 올인 한 한국보다 낫다고 냉소했다. 중위연령이 47세인 나라의 국민이 소득보다 재산가치에 더 민감한 것은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서 부동산이 개미지옥인 이유다.

어떤 정책이든 경제주체가 왜곡된 동기를 갖지 않도록 하는 것, 그리고 기본에 충실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익은 챙기되 손실은 정부에 떠넘긴다면 사회적 신뢰는 무너질 것이고, 이익은 사회가 공유하고 손실은 내 몫이 된다면 혁신을 위한 노력은 없을 것이다.

성균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용어 설명

‘인구배당효과’는 전체 인구 중 생산가능인구 비율이 높아져 부양률이 감소하고 성장이 촉진되는 효과. ‘인구보너스효과’라고도 함. ‘역 인구배당효과’는 인구 감소로 성장 손실을 가져오는 것.

‘오버행’이란 주식시장에서 언제든지 매물로 쏟아질 수 있는 잠재적인 과잉 물량 주식. ‘부채 오버행’은 언제든지 불어날 수 있는 과잉 부채를 말하는 것으로, 경제성장을 가로막는 요인이 됨.

■ 세줄 요약

‘빚 의존 성장’의 한계 : 우리 경제 최대 위험은 저성장. 한국 경제는 트럼프발 관세폭풍 이전부터 이미 구조적 한계를 보임. 인구 감소로 인한 ‘역 인구배당효과’와 생산성이 뒷받침되지 않는 ‘빚 의존 성장’이 주요 원인.

개인의 축소와 수출 정체 : 저성장은 원화 약세를 동반해 한국인 삶의 질을 떨어뜨려. 이는 한국 경제의 주축인 개인·비영리단체의 축소를 초래. 내수가 어려우면 수출에서 활로를 찾지만 수출 역시 경쟁력을 잃어 감.

트럼프 시대의 경제안보 : 경제안보는 바뀐 세상의 키워드. 동맹국끼리라도 지정학적·지경학적 문제는 얼마든지 충돌할 수 있어. 트럼프 귀환 시대를 맞아 지속가능한 번영을 위한 정부의 경제안보 역량 갖추기 시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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