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없어도 애틋한 인생 사계절, 애순이 덕분에 깨달았네
[이정희 기자]
(* 이 글은 시리즈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 드라마 얘기를 한다. 그러면서 한결같이 눈물 콧물을 쏟으면서 봤다고 한다. 바로 <폭싹 속았수다>다. 무엇이 그토록 이 시대의 사람들을 매료시킨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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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 ⓒ 넷플릭스 |
애순이 대통령이 되면 영부인이 되겠다며 애순을 따라다니던 꼬맹이 관식은, 작은 아버지 댁에서 눈칫밥을 먹는 애순이 안쓰러워 조구 새끼를 날랐다. 그렇게 만난 인연은 어린 신랑 신부로 가정을 이루었다.
힘겨운 진통을 겪고 딸을 낳은 금명은 울음을 터트린다. 자신을 세상에 내놓은 어린 엄마, 아빠의 나이가, 그들이 짊어진 삶이 실감 났기 때문이다.
아마도 <폭싹 속았수다>에 많은 이들이 눈물을 쏟게 되는 지점, 그리고 눈물을 쏟기를 바라는 지점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내 부모, 내 자식이지만 그 처지를 헤아리는 게 쉽지 않은 시절에 드라마가 대신 그걸 해주고 있다.
대책 없이 떴다방에 속아 덜컥 가게를 사버린 아버지, 사고뭉치 은명이조차 나서서 아버지를 힐난하는 상황에, 엄마 애순은 남편 관식의 편을 든다. 그녀는 남편의 맘을 헤아린다.
서울대를 나온 딸이 단칸방에 살며 사업이랍시고 벌려 놓고, 자식을 언제 낳냐 했더니 나는 가난하게 키우고 싶지 않다 할 때, 그리고 그 딸이 어려운 집안에 통장을 내놓으며 이러려고 키운 거 아니냐 했을 때,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난 후 손가락에 동상이 걸리도록 고생을 하는 아들의 푸념에 , 그리고 그런 자식들 앞에서 왜 이렇게 살기 힘드냐며 발버둥을 치는 엄마의 하소연에 아빠는 평생 안 하던 짓을 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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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폭싹 속았수다> 스틸 |
| ⓒ 넷플릭스 |
드라마는 애순과 관식의 어린 시절부터 노년을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계절을 빌어 그려냈다. 하지만 사계절이 무색하게 애순과 관식의 일생은 훈장처럼 더해진 겨울의 마지막 부분을 제외하고는 징글징글하게 닥쳐오는 삶의 파고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애순은 동생들까지 돌봤지만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되었고, 관식과 사랑의 도피까지 감행했지만 어린 신랑, 신부의 신혼은 고달프기만 했다. 겨우 배 하나 장만해서 살아볼까 했더니 동명이를 가슴에 묻어야 하는 일이 생겼다. 녹록한 시절이 없었다.
평생 가진 것 없이 자신들의 몸으로 밀어붙인 애순과 관식의 삶은 '부'로 재단되는 이 시대에 결코 칭송받기 쉽지 않다. 그런데 드라마는 바로 그런 필부 애순과 관식의 삶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본다. 평생 고생만 시켜 미안하다는 관식의 사과에 오갈 데 없던 자신이 당신을 만나 고단했지만, 마음만은 늘 따뜻했었노라고.
나 서울 보내주고, 공부 시켜줘야 한다고 약속을 강권했던 애순이었는데, 오징어 배에서 쫓겨난 관식을 대신해 노점을 펼치고야 말았던 애순인데, 그런 애순이 말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묻는다. 삶을 아름답게,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이겠냐고.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가진 것 없는 부모여서 늘 추웠던 아이들은 저마다 마음속에 '궁기'가 껴있다. 부모와의 관계에서도 그렇다. 태어난 순간부터 아빠의 천국이었다는 금명은, 그 부모의 아낌 없는 사랑이 부채감이 됐고, 잘난 금영의 그늘에서 은명은 담벼락 그늘에 피어나지 못한 꽃처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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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스틸컷 |
| ⓒ 넷플릭스 |
사실은 그래서 <폭싹 속았수다>는 역설적으로 판타지이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은 애순에게 그 어린 나이에 함께 양배추밭을 일구던 관식이처럼, 오갈 데 없던 애순이 비록 가난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기는 쉽지 않았지만 평생 사랑하는 이의 등에 기대 살았다. 가진 것 없는 이의 울타리 안은 꽃조차 피워내기가 쉽지 않은 세상이다. 아니 애초에 자신만의 울타리를 치는 게 쉽지 않다고 젊은이들이 반문하는 세상에서, 이 가난한 꽃밭의 풍성함은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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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보검(오른쪽)과 아이유가 주연을 맡은 <폭싹 속았수다>는 1950년대의 제주도를 배경으로 하는 로맨스 드라마다. |
| ⓒ 넷플릭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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