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20년 만에 재개봉, 낙제 여고생들의 반란

김성호 2025. 3. 31.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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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호의 씨네만세 992] <스윙걸즈>

김성호 평론가

츠마부키 사토시와 우에노 주리, 21세기 초 등장한 일본 출신 청춘스타로 20년 넘게 일본영화와 드라마계 톱스타로 자리한 두 배우다. 이들에겐 일본을 대표하는 얼굴이란 점 말고도 공통점이 있다. 다름 아닌 그 출발이다. 이들이 아직 무명에 가까운 배우였을 적 이들을 발탁해 주인공으로 기용한 감독이 한 사람이란 사실은 적잖이 흥미로운 지점이다.

야구치 시노부, 한국에서도 꽤나 잘 알려진 이름이다. 그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린 흥행작을 만든 감독도 많고 해외 유수 영화제에서 수상해 높은 평가를 받는 감독도 여럿이다. 그럼에도 야구치 시노부에겐 특별함이 있다. 그만큼 분명한 색채를 가진 작품을 그처럼 꾸준히 제작해온 감독이 그리 많지 않은 때문이다.

야구치 시노부는 생기발랄하고 긍정적인 작품을 찍어낼 줄 아는 작가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작품 가운데 특정한 소재를 매력적으로 부각할 줄 아는 건 특장점이라 할 만하다. 그의 작품은 보는 이로 하여금 이전까진 전혀 알지 못했던 분야를 깊이 이해한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실제로 해당 분야에 깊은 관심과 애정을 갖고 작품을 만들며 그 수준 또한 상당한 덕일 테다.
▲ 스윙걸즈 포스터
ⓒ 팝엔터테인먼트
우에노 주리 발굴한 발랄한 청춘영화

야구치 시노부의 출세작은 2001년 <워터보이즈>라 보아야 할 테다. 일본 남자고등학교 학생들이 학교 축제에서 수중발레, 즉 아티스틱 스위밍 공연을 하기 위해 연습에 매진하는 과정을 다룬 청춘드라마다. 사이타마 현립 가와 고등학교 수영부 실화를 다룬 'TV아사히' 제작 뉴스 다큐멘터리에서 영감을 얻어 영화로 제작됐다 전한다. 무명 감독에 무명 배우들이 나온 소규모 독립영화였음에도 입소문을 타며 21세기 초 일본영화를 대표하는 명작으로 자리했다. 이례적 인기로 작품은 드라마로 다시 리메이크됐고, 특별판까지 무려 3기에 걸친 시리즈가 인기리에 방영됐다.

야구치 시노부의 대표작은 3년 뒤 나온 <스윙걸즈>다. 우에노 주리를 일약 청춘스타로 밀어올린 이 영화는 여고생 13명이 우연히 재즈 밴드부를 결성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예쁜 선생이 부임한다는 소식에 수영부에 몰려왔다가 아티스틱 스위밍을 하게 되는 <워터보이즈>처럼 <스윙걸즈>는 전원 식중독에 걸린 합주부를 대신해 멀쩡한 낙제생들이 반강제로 공연을 하게 되는 구조를 갖췄다. 남고생이 여고생으로, 스포츠가 음악으로 바뀌었다는 점을 제외하면 서로 상응한다 해도 무리가 없다.

일본에서만 24억엔의 수익을 올린 <스윙걸즈>다. 이례적 흥행작이었던 <워터보이즈>의 두 배가 넘는 흥행기록으로, 야구치 시노부에 대한 기대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알도록 한다. 2006년 한국에서 개봉한 뒤에도 당시 일본문화 열풍에 힘입어 5만5000명이 넘는 관객을 모았다.
▲ 스윙걸즈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낙제 여고생들의 유쾌한 반란

음악에 문외한인 여고생들이 멋진 공연을 하기까지, 말하자면 영화는 노골적인 성장드라마와 청춘영화, 또 음악영화의 틀을 가지고 있다. 세 장르 모두가 그 매력과는 별개로 운신의 폭이 넓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주제와 메시지, 구성이 대동소이하고 관객들이 기대하는 바 또한 얼마 다르지 않은 탓이겠다.

야구치 시노부는 특별함을 기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듯 보인다. 각 장르의 보편적 매력을 살리는 가운데서 저 자신이 가진 색깔을 한껏 내보이는데 주력할 뿐이다. 그리고 이는 그대로 <스윙걸즈>의 성공방정식이 되었다. 너무 무겁거나 진지하지 않게 싱그러운 젊음의 보편적 성장을 그리는 것, 그 과정에서 소재인 스윙재즈와 배우들의 매력을 내보이는 것이 이 영화의 승부수가 된다.

이야기는 단순하다. 때는 여름방학, 야마가와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다. 스즈키 토모코(우에노 주리 분)는 뭐 하나 잘하는 게 없는 여고생이다. 시험에 낙제한 탓으로 그녀는 방학에도 학교에 나와 보충수업을 듣는 처지다. 교실엔 토모코와 꼭 같은 처지의 낙제생이 12명 더 있다.
▲ 스윙걸즈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음악 모르는 여고생들이 빅밴드를 이루다

무더운 여름에 보충수업이라니! 도저히 안 될 말이다. 야구부 시합에 응원단으로 나선 합주부에 도시락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핑계를 들어 토모코와 학생들은 보충수업을 하루 빠뜨릴 기회를 얻는다. 누가 낙제생들 아니랄까봐 그마저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여서 내릴 역을 지나쳤다 한참 걸어서 늦게야 도시락을 전해줬단 건 함정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 했다. 토모코와 친구들이 땡볕을 받으며 한참 길을 돌아가는 동안 도시락이 상해버렸던 모양이다. 상한 도시락을 먹은 합주부 학생들이 죄다 식중독에 걸려 쓰러지니 당장 다음 시합 응원에 나설 사람이 없는 처지가 된다. 어찌저찌하여 토모코와 친구들이 그 자리를 메꾸게 되는 건 자연스런 귀결이랄까.

말 그대로 아무것도 모르는 여고생들이다. 그냥 여고생도 아닌 천방지축의 지진아들만 모였으니 악기를 가르쳐 무대에 세우는 건 결코 쉽지 않은 도전이 된다. 토모코네 패거리가 도시락을 몰래 빼먹어 홀로 멀쩡했던 합주부원 나카무라 타쿠오(히라오카 유타 분)는 합주부의 방향을 빅밴드 재즈팀으로 결정하고, 기본적인 역량강화 프로젝트에 돌입한다.
▲ 스윙걸즈 스틸컷
ⓒ 팝엔터테인먼트
악기를 사기 위한 여고생들의 고군분투

이후는 예상가능한 전개다. 보충수업처럼 악기를 배우는 일 또한 대강대강 하던 이들이 조금씩 제가 하는 연습에 애정을 갖고 실력을 키워가는 과정이 펼쳐진다. 음악, 그리고 악기를 수련하는 일의 힘을 <스윙걸즈>는 진지하게 그려낸다.

우여곡절이 끊이지 않는 과정 속에서 토모코와 몇몇 친구들은 제대로 된 빅 밴드부원들로 거듭난다. 이름하야 '스윙걸즈', 연습시간을 빼고 장소를 구하고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일을 마다 않으며 직접 악기까지 마련해 바닥부터 성장해가는 청춘들의 모습이 뻔하지만 확실한 감동을 안긴다.

<스윙걸즈>는 무려 20년 만에 재개봉을 맞게 됐다. 한국 멀티플렉스 체인들이 수익악화 속에서 경쟁적으로 꺼내든 재개봉 카드의 일환으로, CGV 재개봉작 상영 프로젝트 다섯 번째 작품으로 선정된 것이다. <스윙걸즈> 이후 <노다메 칸타빌레>가 큰 성공을 거두며 일약 스타덤에 오른 우에노 주리지만, 이후 이 작품만큼 싱그러운 캐릭터를 연기할 기회는 잡지 못하였다.

그저 그녀 뿐은 아니다. 빅밴드를 이룬 청춘 모두가 더없이 아름다운 순간을 이 작품 가운데 남겼다. 만물이 생장하는 봄, 건강한 청춘과 더없이 잘 어울리는 이 영화를 재개봉하기로 결정한 데는 이러한 이유가 있을 테다.

덧붙이는 글 | 작품을 보고 감상을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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