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승원과 대구 FC 팬들은 어쩌다 '앙숙'이 됐나

이준목 2025. 3. 30.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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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아데바요로 세리머니' 논란 중심에 선 정승원, 문제 더 악화되나

[이준목 기자]

축구선수 정승원(FC서울)이 친정팀 대구FC를 상대로 극적인 골을 넣고 상대 관중석으로 다가가 팬들을 도발하는 이른바 '아데바요르 세리머니'를 선보이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3월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6라운드 홈 경기에서 서울을 접전 끝에 대구를 3-2로 제압했다. 정승원은 이날 동점골을 비롯하여 1골 1도움을 올리며 승리의 선봉장이 됐다.

서울(3승2무1패, 승점11)은 개막전 패배 이후 5경기 연속 무패(3승2무)를 달리며 2위로 뛰어 올랐다. 반면, 대구(2승1무3패, 승점7)는 개막 2연승 이후 4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에 빠졌다. 또한 서울은 2023년 4월 8일 홈 경기 승리 이후 대구와 최근 5번의 맞대결에서 3무 2패로 열세였으나 2년만에 승리의 기쁨을 누렸다.

경기는 역전에 재역전을 거듭하는 명승부였다. 서울이 전반 추가시간 린가드의 선제 PK골로 먼저 리드를 잡았다. 하지만 대구가 후반 57분 요시노, 79분 정치인의 연속골이 터지며 2-1로 역전에 성공했다.

위기의 서울 구한 정승원
 29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하나은행 K리그1 2025 6라운드 FC서울과 대구FC의 경기에서 FC서울 정승원과 대구FC 박대훈이 볼다툼을 하고 있다.
ⓒ 한국프로축구연맹
위기의 서울을 구한 히어로는 정승원이었다. 경기 막판인 90분 정승원은 윌리안의 크로스를 이어받아 태권도를 연상시키는 그림 같은 발리슛으로 연결하며 동점골을 터뜨려 다시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이어 추가시간 3분 뒤에는 다시 정승원의 어시스트를 이어받아 교체투입된 문선민이 극장골을 터뜨리며 안방에서 짜릿한 재역전극을 이뤄냈다.

경기력에서는 최고의 활약을 펼친 정승원이었지만, 문제는 동점골 직후 보여준 돌발적인 기행이었다. 정승원은 골을 넣고 나서 가까이 위치한 FC서울 홈관중석이 아닌, 갑자기 반대편 진영 뒤에 위치한 대구 원정 관중석 쪽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정승원은 대구 관중석을 응시하며 오른손을 귀에 갖다대는 세리머니를 선보였다. 이는 축구 선수들이 종종 야유하는 팬들을 향해 '어디 해볼테면 더 해봐라'고 자극하는 의미가 담긴 제스처다. 보통 선수들이 골을 넣어도 '친정팀을 상대로는 세리머니를 하지 않는다'는 축구의 불문율에서도 벗어난 행동이었다.

정승원의 갑작스러운 도발에 대구 팬들은 크게 흥분하며 엄청난 야유와 욕설이 쏟아졌다. 서울 팀동료인 김진수와 최준이 황급 달려와서, 정승원이 대구 서포터즈석으로 더 다가가기 전에 제지했다. 하지만 정치인 등 대구 선수들이 달려와 정승원의 세리머니에 강하게 항의했고, 다시 서울 선수들이 정승원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구 선수들을 거칠게 밀치면서 양팀 선수들이 뒤엉키며 벤치클리어링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결국 상황이 진정된 후 정승원은 상대 팬들과 선수들을 자극한 이유로 경고까지 받았다. 경기는 정승원의 활약을 앞세워 서울의 짜릿한 역전승으로 끝났지만, 양팀 선수단과 서포터즈들에게는 불필요한 감정싸움의 여운을 남기게 됐다.

정승원은 왜 굳이 골을 넣고 대구 팬들을 자극했을까. 정승원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대구팬분들한테 '제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며 "안 좋은 분위기를 만들려던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대구 팬들에게 '금지어' 된 정승원

사실 대구는 정승원의 친정팀이자 첫 프로팀이다. 정승원은 안동고를 졸업하고 2015년 입단 테스트를 거쳐 대구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했다. 정승원은 1군 데뷔전을 가진 2017년부터 2021년까지 5시즌간 대구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며 K리그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준수한 실력과 외모로 대구 팬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정승원이 대구와 결별하는 과정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정승원은 계약 만료를 앞두고 연봉 협상 과정에서 구단과 지속적인 갈등을 빚었고, 워크에식 이슈까지 겹치며 코칭스태프 및 팬들과의 관계도 크게 악화됐다. 결국 정승원은 2021년 대구를 떠나 수원 삼성으로 이적하면서 대구 팬들에게는 '금지어'로 전락했다.

팀을 옮긴 이후에도 정승원과 대구의 악연은 계속됐다. 대구 팬들은 정승원이 수원을 거쳐 서울 유니폼을 입기까지 벌써 4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경기장에서 정승원만 보이면 집중적인 야유를 퍼붓고 있다. 대구 선수들도 옛 동료인 정승원을 SNS로 잇달아 저격하거나, 경기 중 정승원에게 위험하고 거친 플레이를 주저하지 않는 장면들이 그동안 여러 차례 나왔다.

정승원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감정적으로 맞대응 했다. 정승원은 2022년 SNS에 대구 지역을 멸칭으로 비하하고 대구 시절의 코칭스태프를 저격하는 게시물을 올려 물의를 빚었다. 대구 관중석 앞에서 동료들과 단체 골세리머니에 동참하는가 하면, 대구전 원정경기 이후 수원 서포터즈와 함께 찍은 셀카를 올리며 승리를 자축하기도 했다.

결국 쌓이고 쌓인 양측의 감정이 '최악의 방식'으로 터진 것이 이날 서울-대구전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승원은 이날도 경기 내내 대구 서포터즈들에게 경기 내내 극심한 야유를 들어야 했다.

대구 팬들 앞에서 도발한 정승원의 세리머니는, 과거 EPL(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에서 엠마뉴엘 아데바요르(토고)가 맨체스터 시절, 친정팀 아스널을 상대로 골을 넣고 벌인 '역주행 세리머니'의 오마주로 불린다.

문제는 정승원의 대응이 상황을 개선하기보다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는 데 있다. 경기에서는 불필요한 벤치클리어링을 촉발시키며 양팀 선수들 모두에게 민폐를 끼친 꼴이 됐다.

오죽하면 서울 팀동료들조차 정승원의 행동을 빠르게 만류했고, 옛 동료였던 대구 외국인 선수 세징야는 정승원을 달래며 차분하게 타이르기도 했다.

양팀 감독들의 반응도 엇갈렸다. 박창현 대구 감독은 "굳이 그런 세리머니를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 동업자 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전에 몸담은 팀을 향한 예의가 아니다"라며 일침을 놓았다. 반면 김기동 서울 감독은 "정승원이 공을 잡을 때마다 대구팬들의 야유를 받았다. 경기 중에 충분히 나올 수 있는 감정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어차피 서울과 대구는 앞으로도 같은 리그에서 계속해서 마주쳐야 한다. 당장 다음 대구 원정에서 이번 사태에 격분한 대구 팬들과 선수단이 어떤 대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우려를 낳고 있다. 정승원 본인은 "신경쓰지 않는다"며 일축했지만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자칫 팀과 팀, 팬과 팬간의 감정 대립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어느 한 쪽의 일방적인 잘못만은 아니라지만, 경기장 안에서 '감정이 태도가 되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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