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조명, 그 아래에서 '일하는' 여성들
기자명 '오팔팔'은 정수빈, 김한내, 오지민, 김하람 기자로 이뤄진 취재팀 이름입니다. <편집자말>
[오팔팔 기자]
|
|
| ▲ 2011년 1월 20일 강원도 춘천시 근처의 성매매 업소 |
| ⓒ 연합뉴스 |
성매매 여성으로 9년간 '일했던' 송이(가명, 51)씨는 37세가 되던 2011년 성매매 업계에 발을 들였다. 재혼한 남편에게서 도망치기 위함이었다.
송이씨는 자신의 과거를 남편과 그 가족에게 '사육당했다'고 표현했다. 재혼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았을 때였다. 남편이 송이씨를 감시하기 시작했다. 24시간 내내 시어머니, 시아버지, 남편이 돌아가며 송이씨를 따라다녔다. 화장실에 갔을 때조차 베란다에 연결된 창문을 통해 송이씨를 쳐다보곤 했다. 당연히 외출도 할 수 없었다. 남편은 송이씨 명의의 핸드폰을 없애고, 카드는 어딘가에 숨겨버렸다. 장애가 있던 시아버지의 병간호도 송이씨가 도맡아서 해야 했다. 송이씨는 늘 따라다니던 여섯개의 눈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아 배 속의 아이를 잃었다.
탈출을 결심한 건 '죽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지배했을 때다. 베란다에서 빨래를 널고 있을 때였다. '여기서 떨어지면 편해질 것 같다'는 생각에 15층 난간을 밟고 올라섰다. 그때, 재혼 전 낳은 딸 예지(가명)가 생각났다. 전 남편의 시댁이 예지를 도맡아 키우고 있었지만, 양육비는 송이씨가 벌어 보내야 했다. 딸까지 굶겨 죽일 수는 없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도망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남편과 시어머니가 외출한 사이, 온 집안을 뒤져 본인의 카드를 발견했다. 송이씨는 현금 서비스로 500만 원을 빌려 편의점에서 인출한 뒤, 매트리스 사이에 넣어놓고는 탈출 계획을 세웠다.
|
|
| ▲ 2024년 11월 2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소냐의집에서 송이씨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2025 [오팔팔] |
|
|
| ▲ 미아리 텍사스 골목. 철거를 앞뒀지만 여전히 짐들로 곳곳이 빼곡하다. |
| ⓒ 2025 [오팔팔] |
|
|
| ▲ 미아리 텍사스 골목의 포장마차. 철거를 앞두고도 저녁 8시 무렵이면 불이 켜진다. 성매매가 이뤄지는 공간 옆에서 순대·우동·라면 등 간단히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을 판매한다. |
| ⓒ 2025 [오팔팔] |
"여성들은 손님이 오면 복도에 일렬로 서서 남성들에게 '초이스'를 받아야 해요."
서울 강동구 천호동 로데오 거리에 위치한 H 보도방에는 두 명의 여성이 바닥에 널브러져 앉아 있었다. 방 안 곳곳에는 까만색 패딩 점퍼와 스무 벌이 넘는 화려한 드레스가 뒤섞여 있었다. 길게 놓인 3칸짜리 신발장에는 여성들이 일을 나갈 때 신는 것으로 보이는 화려한 구두들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었다. 이곳에서 여성들은 유흥업소의 연락을 기다리며 대기하다가, 호출을 받으면 차량을 통해 업소로 이동한다.
보도방에서 나와 천호동 로데오 거리에서 가장 규모가 큰 M 업소에 들어가자, 다른 가게들에 비해 활기가 넘쳤다. 10명이 넘는 여성들이 소파에 앉아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여성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복도 사물함 앞에서 홀복으로 옷을 갈아입기도 했다. 취재진은 11월 27일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이 매달 진행하는 천호동 아웃리치 활동을 통해 1곳의 보도방과 40곳의 유흥주점을 방문했다. 김효정 소냐의집 팀장은 업소에서 나온 뒤 "의자에 앉아 있는 여성들은 이른바 '초이스'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여성이 남성에게 일방적으로 '선택받아야' 하는 성매매 산업 구조상, 여성에 대한 인권 유린도 심심치 않게 일어난다. 앞서 송이씨는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한 지 두 달 만에 난소가 모두 망가졌다고 했다. 송이씨는 "남성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행이 벌어지거나, 돈을 내지 못하겠다며 화를 내는 경우도 흔하다"라면서 "돈을 받지 못하면 업주의 몫까지 여성들이 메워야 하므로 아파도 거절할 수가 없다"고 했다. 이 때문에 업소 욕실에는 탈지면으로 만든 솜까지 놓여 있다. 월경 기간 피가 흐르지 않도록 막는 용도다. 피가 보이면 거부감을 느끼는 손님들을 위한 조치다.
|
|
| ▲ 2024년 11월 20일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소냐의집에서 김효정 소냐의집 팀장이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2025 [오팔팔] |
선불금은 민법상 불법원인급여에 해당돼 갚을 필요가 없다. 성매매방지법 제정 이후 대법원 판례 또한 선불금의 채권 효력을 인정하지 않고 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일부 업주들이 소송으로 선불금이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 본인의 이름으로 선불금을 지급하지 않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신 제3금융권이나 제4금융권을 연결해 종사자가 직접 돈을 빌리도록 유도하거나, 선불금을 갚지 않을 경우 사기죄로 고소하는 등의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지난 9월 미아리 텍사스에서 일하다 빚을 갚지 못해 사망한 여성 또한 같은 방식으로 돈을 빌린 바 있다. 이 외에도 가족관계증명서와 주민등록등본을 요구해 종사자의 신상을 통제하고, 선불금을 갚지 못할 경우 이들이 업소를 떠나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오래전부터 지속되어 온 '전통'이다. 빚이 늘어난 종사자들은 결국 더 많은 선불금을 제시하는 업소로 이동할 수밖에 없다.
지난 20년(2004년~2023년)간 전국연대에 속한 11개 기관이 지원한 법적 지원 사례는 총 5897건에 이른다. 이 중 민사 사건은 2499건으로 전체의 48.7%를 차지한다. 이 중 임금체불, 손해배상, 부당이득금 반환 등의 141건을 제외한 1124건(88.9%)은 모두 채무와 관련 있는 소에 해당한다. 김 팀장은 "일하는 과정에서 생긴 빚으로 인해 신용 문제가 생긴 여성들이 센터를 찾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먹고 사는 일'은 해결해야… 다른 삶을 선택할 수가 있어요"
"저도 다른 일을 할 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처음 알았어요."
|
|
| ▲ 2024년 10월 24일 서울 동대문구에 위치한 에이레네에서 오선민 소장이 인터뷰하고 있다. |
| ⓒ 2025 [오팔팔] |
그러나 현장의 시각은 다르다. 오 소장은 "성매매 피해 여성은 탈업하는 순간 '20년 공백기'를 가진 취업준비생이 된다"면서 "탈업을 약속하고 받는 정부 지원금은 최소한 생계유지가 가능할 때까지 지원하는 안전장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성매매 피해자는 업소를 떠나는 순간 활용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붕괴한다. 성매매에 종사한 순간부터 가족이나 친구와 연을 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결국, 만날 수 있는 사람은 함께 일하던 동료나 업주들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관계를 형성하고, 직업교육을 받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꾸준한 교육만 이루어진다면 여성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다. 여성들은 탈업 후 요양보호사, 간호조무사 등 자격증을 취득하거나 4년제 대학에 입학하기도 한다. 오 소장은 "젊은 사람은 간호사로 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면서 "당장의 생계 문제만 해결해도 여성이 성매매 업소로 돌아오는 일은 현저히 줄어든다"고 강조했다. 또한 탈업한 여성들은 센터의 지원을 받는 동안 새로운 네트워크를 형성하기도 한다. 서로서로 멘토 역할을 하는 것이다. 송이씨가 장미 씨에게 보험설계사 자격증 취득을 권했듯, 먼저 탈업한 여성이 후배의 생활을 지원하는 식이다. 오 소장은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센터 내에서 새로운 직업을 가진 사람을 만날 기회를 얻는다"면서 "이렇게 형성한 네트워크가 탈업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피해자 지원금을 소모적인 일회성 지원이 아닌 취약계층의 미래 설계를 위한 투자로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효정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 팀장은 "청량리 집결지를 폐쇄하면 파주로, 천호동 집결지를 폐쇄하면 수원으로 여성들이 연쇄 이동해 왔다"라며 "성매매 피해 여성에 대한 지원금이 없으면 여성들은 생계 걱정에 탈업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성매매를 뿌리 뽑겠다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여성들이 새로운 직장을 구할 기회를 탄탄하게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팀장은 "탈업 여성 지원금은 탈업 서약서와 월세 계약서 등 각종 증명서를 제출해야 단계적으로 지급된다"면서 "악용하는 일부 사람 때문에 저소득층 지원을 중단하지 않듯, 여성들에 대한 지원도 꼭 필요한 곳에 사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이자 '가해자'인 여성, 그 뒤로 사라진 남성과 업주
"가장 두려운 건 과거를 들키는 거예요."
여성인권상담소 소냐의집에서는 성매매 피해자를 나이와 상관없이 '언니'라는 호칭으로 부른다. 센터 설립 후 30년 가까이 이어진 하나의 문화다. 김효정 소냐의집 팀장은 "센터 직원과 성매매 피해자들은 함께 병원에 가는 등 외부 활동을 할 때가 많다"면서 "그때마다 '언니'라는 호칭을 사용해야 여성과 센터 직원의 관계가 어색해 보이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성매매 여성들이 탈업 후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신의 과거가 원치 않게 드러나는 일이다. 이러한 불안은 심리적인 부담에 그치지 않는다. 성매매 여성을 처벌하는 법적 조항은 여성들이 사회에 복귀하는 데 있어 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성매매특별법은 성매매 처벌과 예방, 피해자 보호를 목표로 2004년 제정됐다. 법안은 성매매처벌법과 성매매 방지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법률 두 축으로 나뉜다. 여성을 성매매 공범으로 바라보던 당시 윤락행위 방지법에서 발전했다는 의의가 있었지만, 성 구매자와 여성을 동일 선상에서 처벌한다는 점에서 논란이 끊이질 않았다.
|
|
| ▲ 2024년 11월 14일 서울 성북구에서 이하영 성매매문제해결을위한전국연대 공동대표가 인터뷰를 하고 있다. |
| ⓒ 2025 [오팔팔] |
전문가들은 성매매방지법이 효과를 내기 위해서는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가 필수라고 주장한다. 여성이 처벌받지 않아야 자신이 당한 피해를 적극적으로 고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성매매특별법 제정 당시 법안 자문을 맡았던 신박진영 전국연대 정책팀장은 "여성들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해야 여성이 피해자라는 인식이 심어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여성이 성매매의 한 축을 구성하고 있다는 인식은 여전하다. 성 판매 여성의 처벌 조항이 적절한지를 묻는 위헌 제청 또한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 유지'를 이유로 2016년 합헌 결정이 내려졌다. 19대 국회 당시 성매매 여성의 처벌 근거를 폐지한 개정안이 두 차례 발의됐으나 국회 여성가족위원회 소위원회조차 통과하지 못하고 임기 만료로 폐기됐다.
전문가들은 성매매 피해자에 대한 법률 지원이 잘 마련되어 있음에도, 시민 의식과 사회적 분위기가 그 지원 시스템을 따라가지 못하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최 변호사는 "여성 의원들만이 주도한 입법 시도는 실패할 확률이 높다"며 "인식 개선을 위한 노력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성매매에 대한 인식이 변해야 성 구매자 중심의 법안 개정도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성매매 인식 전환과 관련한 토론회의 참여율은 저조하다. 신 팀장은 "일 년에 한두번 토론회가 열리는데 남성 참석자 수는 10명도 안 된다"고 설명했다. 법안 개정 또한 답보 상태다. 2014년 이후 여성 처벌과 관련하여 성매매특별법 개정안은 발의된 적이 없다. 신 팀장은 "여성 인권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소외된 여성들을 돌아볼 때"라고 힘주어 말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국민이 주인이다' 초대형 깃발 들고 어김없이 나타난 남자
- 헌법재판소 말투, 갑자기 장황해진 점에 주목한다
- "민주당 정부 실패가 극우 키워...윤 파면됐지만 앞날 더 험난"
- "같이 안 속상해야 더 좋죠"... 이렇게 살면 달콤해집니다
- 죽은 자는 지하에서 웃으며 산 자를 돕는다
- 멘트도 앙코르도 없지만, '이것' 하나만 믿고 콘서트 갑니다
- 아들만 둘인 집 막내입니다, 이런다고 딸이 될 수 있을까요?
- [오마이포토2025] 경찰차 부수고 연행되는 윤석열 지지자
- 조선 "윤 파면, 민주당 승리 아냐", 동아 "승복하고 사과해야"
- 제주항공참사 100일 앞두고 무안공항서 추모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