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을 잃어버린 현대인의 자화상 [영감 한 스푼]

김민 기자 2025. 3. 29.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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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 하툼, Misbah, 2006-07, ⓒ Mona Hatoum 화이트큐브 제공.

도시에 살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 중 태어난 곳에서 평생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또 도시에서 태어났다고 해도 ‘고향’이라는 말을 그곳에 붙이기는 무언가 어색합니다. ‘고향’이라면 산과 들이 있는, 아주 옛날 우리가 ‘원래’ 살았던 어딘가를 상상해야 할 것 같죠.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늘 그 자리에 있는 포근하고 따뜻한 안식처이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잠시 머무는 공간입니다.

이 모든 것은 농경 사회나 오랜 세월 문화와 전통을 유지한 토착민이 사라지고 ‘도시’가 생겨나며 발생하는 현상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대 미술가 모나 하툼의 작품은 묻습니다.

“여전히 집은 영원한 안식처인가? ”

그의 작품은 식기가 가득 놓인 식탁에 전선을 달아 전기가 통하도록 만들거나, 그 입구에 벌겋게 달아 오르는 열선을 달아 감옥 같은 풍경을 연출하죠.

따뜻한 집이지만 불안한 기운이 가득 도사린 모습. 돌아갈 고향과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현대 사회의 감각을 자극해 세계 여러 미술 기관에서 수십 년에 걸쳐 조명되고 있습니다.

한국을 찾은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일상 속 당연해 보이는 것
정말 당연한가?

화이트큐브 서울 갤러리에서 만난 모나 하툼. 사진 장승윤 기자.

모나 하툼은 프랑스 퐁피두센터, 독일 카셀 도큐멘타, 이탈리아 베니스비엔날레와 미국 뉴뮤지엄 등 여러 미술 기관과 국제전에 참가해왔습니다. 올해는 영국 런던 바비컨센터에서 알베르토 자코메티와 2인전을 앞두고 있는데요.

저는 2016년 영국 테이트모던 개인전을 인상깊게 본 기억이 있습니다. 이 때 기억을 되살려 가장 먼저 하툼이 사용하는 작품의 ‘소재’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 작가님은 일상 속 도구를 작품의 재료로 자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그런 평범한 재료들이 누구에게나 익숙하기 때문이에요. 특히 의자, 침대, 탁자는 그걸 쓰는 사람의 ‘몸’이 편히 눕고 기대거나 앉도록 만든 것이죠. 그래서 사람들은 가구를 보면 자동으로 그걸 사용하는 상상을 하게 돼요. 제가 작품에 몸을 표현하지 않더라도 말이에요.

익숙하지만 어딘가 변형된 사물을 보면 사람들은 이상한 감정을 느끼죠. 때로는 위협적이거나 위험하다는 느낌까지 받게 되고 주변의 모든 것이 불안정해집니다.

이건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여긴 것들이 정말 그런지, 질문을 던져보는 거에요. 

- 저도 그런 기분을 느꼈어요. 이를테면 치즈 강판 모양으로 만든 침대 작품을 보면 저절로 눕는 모습을 상상하죠. 그 다음엔 강판에 무언가가 갈리는 생각으로 이어져요(…). 이렇게 작품 속 사물들이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작가님이 사물을 볼 때 어떤 부분을 눈 여겨 보는지 궁금했습니다. 

기자님의 질문에서 ‘사물이 살아있다’는 표현이 좋아요. 제 작업에 실제로 물건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요. 테이트 모던에서도 전시한 설치 작품 ‘Homebound’에 모든 물건에 전기가 통하도록 만들었던 것처럼요.

저는 학생 때부터 ‘보이지 않는 힘’에 관심이 많았어요. 그런 점에서 전기나 자성(magnetism)에 매료됐는데, 가만히 있는 사물에 전기를 통하게 하면 마치 그 물건에 생명력이 생기는 듯한, 일종의 애니미즘을 생각하게 됐죠. 

모나 하툼, Homebound, 2000. © 모나 하툼. 사진 화이트큐브(에드워드 우드먼) 제공

- 그 작품 앞에서 무서운 기분을 느꼈던 기억이 나요. 내가 무언가를 잘못 만져 감전되는 상상이들기도 했고요.

맞아요. 우리를 보호해야 할 집이 흉기로 변하는 순간이죠. 이건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될 수 있는데, 제가 제목을 ‘Homebound’라고 한 이유는 ‘bound for home’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의미인데, 그 집에는 바리케이드가 쳐져 있습니다. 즉 돌아갈 수 없는 집이거나, 집 안에 갇혀서 나갈 수 없는 구속된 상태를 뜻할 수도 있고. 여러 의미를 가질 수 있는 모호한 제목이죠. 

- 집은 가장 편안하고 안전해야 할 곳이지만 그렇지 않은 상황이네요. 같은 맥락에서 이번에 한국에서 전시하는 휠체어 작품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네, 제가 병원에서 본 휠체어에서 영감을 얻은 거에요. 그 휠체어는 바퀴가 아주 작았는데 이는 누군가가 움직여주지 않으면 앉은 사람이 스스로 조작하긴 힘들다는 의미죠. 이 의자의 손잡이를 칼처럼 만들고, 받침대는 도망가려는 듯 앞으로 기울였어요. 약간 코믹한 느낌도 나죠. 이 모양은 내 휠체어를 밀어주는 누군가에게 공격적인 마음을 갖게 되는 상황을 생각한 거에요.

영어에 ‘먹이 주는 손을 물어 버린다’(bite the hand that feeds you)라는 표현이 있잖아요. 내 휠체어를 밀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데 공격하고 싶은 모순적인 감정을 표현해봤어요.

모나 하툼, 무제 (휠체어 II), 1999. ⓒ 모나 하툼 ⓒ 화이트큐브

- 그럼 일상적인 사물을 볼 때, 그것의 원래 기능과 반대되는 면을 생각하나요? 

음, 이게 정말 믿을만한가? 하고 의문을 제기하는 편에 가까워요.

누군가가 나를 환영할 것인가, 아니면 거부할 것인가. 표면 아래에 있는 진심은 정말로 무엇일까 의구심을 갖는 거죠.

익숙한 문화권을 떠나 다른 문화권으로 이동하면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생각해야하거든요. 이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이해하고 괜찮았던 일들이 다른 곳에선 그렇지 않아요.

저는 사람들이 모든 것을 의심하고 질문하는 태도로 바라볼 수 있도록 문제 제기 하는 것을 좋아해요. 우리가 무심코 받아들이는 뉴스나 정부 발표 같은 것들이 혹시 내 생각을 조종하는 건 아닌지, 그 이면에 다른 뜻은 없는지 생각해보도록 하기 위해서요.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거나, 권력 기관에서 하는 말을 다 맞다 생각하고 그대로 따르기 때문이에요. 그게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표면 아래에 것들을 봐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나에게 집은 항상 움직이는 것”

모나 하툼, 무제 (홍콩 케이지) II, 2025. ⓒ 모나 하툼 ⓒ화이트큐브(테오 크리스텔리스)

- 작가님에게 ‘집’은 어떤 곳인가요? 

저에게 ‘돌아가고 싶은’, 노스탤지어를 느끼게 하는 집은 제가 베이루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집이에요. 그런데 그 집도 원래 저희 부모님이 살았던 곳은 아니죠. 제 부모님은 팔레스타인에서 레바논으로 이주한 거니까요.

그런데 지금 그 집도 완전히 사라졌죠. 15년 간 내전과 침략까지 너무나 많은 분쟁을 겪었으니까. 사실 제게 ‘집’이란 개념은 없어요. 모두 사라졌죠. 

요즘 제가 집에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공간은 런던의 제 집이에요. 그렇지만 전시나 프로젝트를 위해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많고, 그러면 ‘임시 거처’를 마련해야 합니다. 저한텐 그렇게 거처를 수시로 옮겨 다니는 일이 아주 익숙하고 편해요. 그러니 런던 집도 완전한 집처럼 느껴지진 않아요. 오히려 항상 움직이며 다른 상황에 있는 것을 즐기게 되었어요. 그래서 저에게 집은 항상 움직이는 곳이에요. 

- 제가 이 질문을 한 이유는 작가님의 많은 작품들이 집을 상상하게 하지만, 그 집이 다른 면을 보여주기 때문이에요.

그렇죠. 제가 ‘집’에 대해 불안한 감정을 갖고 있는 건 확실해요. 왜냐면 안식, 편안함, 돌봄을 주는 ‘집’이라는 공간에 제가 완벽히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또 제가 집을 다루는 데에는 ‘여성’에 관한 문제도 있어요. 이를테면 제가 전기를 흐르게 한 식탁은 보통 여성들이 머무르며 가족을 돌보고 베푸는 공간으로 상상하죠. 그런데 이런 ‘따뜻한 부엌’에 있는 여자가 마음 속으로는 내가 여기에 갇혀 있다고 느낀다면 어떨까요? 가족을 위해 봉사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면. 혹은 집 안에서 학대가 있다면? 이렇게 집에 관한 고정관념을 당연히 받아들이지 말자는 거에요. 

이 이야기를 하니 제가 미국의 셰이커 커뮤니티에 잠시 머물렀던 때가 생각나네요. 그 사람들은 외부 문명과 차단된 채 한 지역에서 몇 세대에 걸쳐 농사짓고 가축을 키우며 살아온 분이에요. 그렇게 한 곳에 영원히 머물러 있을 것 같은. 그 커뮤니티를 경험하며 살면서 느껴본 적 없는 안정감을 느끼고 정말 놀랐죠. 거길 떠날 때 정말 많이 울었어요. 

- 재밌네요. 그런데 그렇게 변하지 않는 커뮤니티라는 건 셰이커 교도들처럼 아주 특별한 곳에서만 가능하잖아요. 지금은 사방에서 무한한 정보가 쏟아지고 매일 매일 변화가 일어나죠. 그 가운데 사람들은 얼마 살아본 적도 없는 ‘고향’이라는 것에 대해 노스탤지어를 느끼고. 그래서 작가님의 작품에 공감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네. 제가 만약 그런 안정된 공동체 안에서 태어났다면 또 저항하고 빠져나오려 애썼을 지도 몰라요. 사람들은 자기가 갖지 않은 것에 대해 아쉬워하는 마음이 있잖아요.

저는 레바논에서 자랄 때도 거기서 태어난 친구들에 대해 질투를 느꼈어요. 친구들은 할머니 할아버지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시고. 친구들을 따라 할머니 할아버지댁에 가며 ‘난 왜 이런 게 없을까’ 생각하기도 했거든요.

처음 찾은 한국
한지 작품 실험해보고 싶어

광주비엔날레에 전시했던 작품. Light Sentence, 1992. © 모나 하툼. Mathaf(도하 아랍현대미술관, 마커스 엘블라우스) 제공.

- 작가님이 태어나 처음으로 만든 예술 작품은 뭔가요?

이 질문을 받으면 저는 4-5살 때가 떠오릅니다. 유치원에서 그리기, 색칠하기, 콜라주, 심지어 긴 색종이 띠를 천처럼 엮어보았던 기억도 나요. 그게 제 어린 시절 최고의 기억이예요.

그 후 학교에선 교과 과정에 미술이 없었지만 과학시간에 해부학이나 식물 그림, 지리학 시간에 지도를 그렸고 그 때마다 칭찬을 받았어요. 어쩌면 그런 것들이 제 첫 예술 작품일지도 몰라요. 그런 경험에 제게 큰 격려가 되었거든요.

재밌는 건 저희 아버지가 제가 어릴 때 만든 과학 드로잉이나 책에 한 낙서를 전부 버리지 않고 갖고 계셨다는 점이에요. 제가 예술가가 되고 싶다 했을 때 아버지는 안된다고 하셨거든요. 그런데 아버지가 제 그림을 조용히 감상하고 좋아하셨다는 걸 뒤늦게 알았죠.

-모든 부모님들은 자식이 예술가가 된다고 하면 걱정하시죠.

아버지는 반대했죠. 그걸로는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여겼으니까요. 대학을 졸업하고 레바논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우연히 런던에 갔는데, 이 때 1975년 레바논 내전이 일어나요. 전쟁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되면서 일주일만 머물 예정이었는데 발이 묶였어요.

런던에서 일자리를 구하고 여름 내내 일을 했지만 전쟁은 더 심해졌고, 그래서 가고 싶었던 미술학교에 가게 됩니다. 학비를 벌기 위해 저녁과 주말에도 항상 일을 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지중해에서 온 저에게 런던은 너무 춥고 안개가 가득해서 처음 몇 년 동안은 감기를 달고 살았어요. 

- 한국은 어떤가요?

이번이 제 첫 한국 방문이에요. 1997년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해 지난 30년 동안 그룹전에 7번을 참여했는데 올 기회가 없었어요. 아직 한국에서 충분한 시간을 지내지는 못했지만,

어제 시장에서 큰 한지 여러 장을 샀어요. 그걸 보고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라 작업실로 돌아가면 바로 시도해보고 싶어요. (일 말고 궁금한 건 없나요?) 다이소! 다이소에 가서 일상 속 여러가지 물건들을 살펴보고 싶습니다. (웃음)

※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목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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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 기자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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