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가 삼킨 예쁜 바닷가 마을... "다 타뿟다 아이가"

[르포] 산불 피해 심각, '쑥대밭' 된 경북 영덕 석리·노물리·매정리 "6.25보다 더 심해"

[조정훈 backmin15@hanmail.net]

▲ 지난 25일 경북 영덕군을 휩쓴 산불로 영덕읍 석리 마을 전체가 불에 타 쑥대밭이 됐다. ⓒ 조정훈

▲ 화마에 크게 상처 입은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현장 영상] ⓒ 조정훈

동해의 아름다운 바닷가 마을, 작고 예쁜 집들이 언덕 위에 옹기종기 붙어 있는 모양이 갯바위에 붙은 따개비 같다고 해 붙여진 '따개비 마을'.

지난 22일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25일 안동과 영양, 청송을 거쳐 영덕으로 넘어오면서 따개비마을로 불리는 영덕읍 석리는 한국전쟁 당시보다 더 처참한 잿더미로 변했다.

"하늘에서 별똥별 떨어지듯 불덩어리가 날아왔다"

▲ 지난 25일 경북 영덕을 휩쓴 산불이 영덕읍 석리로 확산되면서 마을 전체를 화마가 삼키면서 검게 타고 부서진 집들이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 조정훈

▲ .지난 25일 경북 영덕군을 휩쓴 화마로 영덕읍 석리의 한 양식장이 불에 타 흔적만 남아 있다. ⓒ 조정훈

화마가 휩쓸고 간 지 사흘이 3월 28일, 따개비마을 대부분의 집은 검게 타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슬레이트 지붕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벽체만 앙상히 드러난 집도 여러 채가 있었다. 골목에도 집이 타면서 날아온 물건들과 타다 남은 재가 뒤섞여 나뒹굴었다.

마을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강도다리 양식장을 운영하는 임승태씨는 "25일 오후 지품면에서 산불이 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대피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라며 "긴급문자가 울리고 30분이 안 돼 불덩어리가 하늘 위로 날아왔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환한 불빛이 마치 하늘에서 수많은 별똥별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면서 "소나무에 불이 붙고 순식간에 양식장이 화염에 휩싸이는 걸 보면서 위험하다고 느껴 급히 차를 타고 도망쳤다"고 말했다.

석리 이장인 이미상씨는 "우리 마을에 있는 84채의 가옥 가운데 78채가 불에 탔다"라며 "마을 전체가 폭탄을 맞은 듯 쑥대밭이 됐다"고 했다.

"6.25 때 피난 갔다가 돌아와도 집은 그대로였는데, 지금은..."

▲ 지난 25일 경북 영덕군으로 확산된 화재로 인해 영덕읍 노물리의 한 팬션이 불에 타 흔적만 남았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지난 25일 영덕읍 노물리 마을의 집들이 화마에 대부분 전소됐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지난 25일 영덕읍 노물리 마을의 집들이 화마에 대부분 전소됐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지난 25일 영덕읍 노물리 마을의 집들이 화마에 대부분 전소됐다. ⓒ 조정훈

▲ 지난 25일 경북 영덕군을 휩쓴 화마로 영덕읍 노물리의 한 주택에 달려있는 누전차단기가 녹아내렸다. ⓒ 조정훈

옆 마을인 노물리 역시 석리만큼이나 피해가 심각했다. 마을 전체가 검은색으로 변해 있었고, 불에 타다 만 집을 멍하니 바라보는 주민에게선 한숨이 끊이지 않았다.

고향이 노물리라고 밝힌 강정운(85)씨는 "이장이 빨리 피하라고 해서 마을회관에 갔다가 잠시 뒤 나와 보니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라며 "불이 이 고랑에서 저 고랑으로 날아다니고 있었다"라고 기억했다.

강씨는 "내가 6.25도 겪어봤는데 이정도로 심하지는 않았다. 당시는 피난을 갔다가 돌아오면 집은 그대로 있었는데... 지금은 집이 완전히 불에 타 망가지고 없으니 그저 한숨만 나올 뿐"이라고 말했다.

영덕국민체육센터에서 만난 김순용(59, 노물리)씨는 "석리와 노물리가 가장 피해가 크다"며 "살다보면 이런 일 저런 일 있지만 이렇게 화마가 덮쳐서 한순간에 재로 변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노물리는 전화도 안 되고 전기도 끊겼다"며 "물이 안 나와 집에 가고 싶어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답답할 뿐"이라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여기가 전쟁터보다 더하다. 빨리 복구할 수 있도록 신경 써 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노물리에서 대피해 영덕국민체육센터에 머물고 있는 김대호(61)씨도 속상함에 가슴을 쳤다. 김씨는 "집 2채가 불에 탔고 벌통 10개에서 벌이 모두 죽었다"며 "심지어 반려견도 연기를 너무 많이 마셔 혼수상태"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피신해 있다가 새벽 1시쯤 집 근처로 와보니 인근에서 가스통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며 "온 동네가 불바다였다. 바람이 불고 불똥이 빠르게 날아다니는 걸 보면서 '이러다 죽겠구나' 겁이 났다"고 말했다.

노물리 이장인 김재현씨는 "230여 가구 중 180가구 정도가 불에 탔다"며 "마을에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많은데 그분들이 쉴 공간이 마땅치 않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손때 묻은 집도, 115년 역사 교회도 까맣게 다 타버리고...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에 있는 115년 된 교회도 화마를 피해가지 못했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화마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고 무너졌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화마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고 무너졌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화마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고 무너졌다. ⓒ 조정훈

매정리에서도 마을 집들 대부분이 불에 검게 탔고 115년 된 매정교회도 벽체만 남아 검게 그을려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지붕이 무너져 있고 내부는 교회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계주 매정교회 목사는 화마가 덮치면서 귀와 코 부위를 다쳤다. 급히 뛰어나오다 넘어져 찢어진 바지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김 목사는 "그때 상황이 긴박했다"며 "상상 이상으로 불이 빠르게 확산되니까 부인이 먼저 장모님을 모시고 사택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이어 "아내가 장모님을 질질 끌고 내려가더라. 얼른 뛰어가서 차량에 태웠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온 천지가 불바다였고 바람이 거세게 부니까 사방이 연기로 앞이 보이지 않았다"면서 "차량을 멈추면 불이 붙을 것 같아 속력을 높이려는데 도로에서 차량 1대가 불이 붙어 타고 있더라"라고 했다.

28일 오후에 간간히 떨어지던 비는 오후 4시가 넘어서면서 굵어졌다가 1시간가량 지나 멈췄다. 영덕에서도 오후 2시 30분을 기해 산불의 주불이 진압됐다.

빗방울이 굵어지자 영덕군민체육센터에 머물고 있던 한 주민은 "야속한 비야, 와 이제 오노. 다 타뿟다 아이가"라면서 하늘을 원망했다.

한편,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 지품면 쪽으로 확산되면서 영덕군에서는 나흘간 8050ha를 태웠다. 9명의 사망자와 8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또 주택 1163동과 차량 62대 등이 전소했다.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화마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고 무너졌다. ⓒ 조정훈

▲ 경북 의성에서 발생한 산불이 지난 25일 영덕군으로 확산되면서 영덕읍 매정리는 대부분의 집들이 화마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타고 무너졌다. ⓒ 조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