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길 황토벽, 갑자기 뚫려있는 네모 구멍의 정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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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미 기자]
밤 12시 지나 숙소를 예약했으니 예약 당일 출발이다. 계획적인 성향이지만 때론 갑작스럽게 떠나기도 한다. 평소의 소신이나 방식이 흔들리며 균열이 생겼을 때 가슴은 훌쩍 떠날 것을 부추긴다.
가보고 싶었던 '상족암'이지만 멀어서 차일피일 미뤄지던 경남 고성으로 출발을 확정한다. 지난 20일 떠난 여행이다.
상족암 군립공원→병풍바위→학동마을 옛 담장→공룡 발자국 화석지→그레이스 정원→보현암·문수암→고성향교 정도를 돌아볼 예정지에 넣었다. 흔들리는 차에서 검색하느라 눈이 뻑뻑했지만, 고개 들어 바라보는 풍경이 시린 눈을 다독였다.
물때표를 검색하니 '상족암 군립공원'으로 먼저 가는 일정이 가장 무난했다. "저(물이 가장 낮은 시간, 3월 20일은 17시51분)"라고 표시된 시간 전후 1시간~1시간 30분엔 가야 화석산지 및 상족암에 입장해 원활하게 관람할 수 있으므로 오후 4시까지 도착하면 충분했다.
사천 IC로 빠져 공항을 지나 상족암을 향하는 길에 가로수가 눈길을 끌었다. 남다른 수형으로 초록잎이 가득한 가로수는 공들인 기색이 역력했다. 이름은 알 수 없지만 3월의 초록이 우릴 환대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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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지만 남은 메타세쿼이아. 촘촘하게 심어 놓은 3월의 경남 고성 가로수 |
| ⓒ 오순미 |
그렇다면 성공적이라 해야겠다. 적어도 우리 부부에겐 가로수길이 특별하게 다가왔으니까. 메타세쿼이아 외에도 동백과 애기동백이 가는 곳마다 지천이어서 경남 고성의 첫인상은 잘 가꾼 정원의 도시로 각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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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통제구간 알림 현수막. 제전항에서 상족암으로 가는 길 일부가 공사 중이라 2025/6월까지는 안내된 곳으로 우회해야 한다 |
| ⓒ 오순미 |
남해 한려수도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상족암은 해식애 암벽으로 바움쿠헨이나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생겼다. 수성암으로 켜켜이 쌓인 상족암 절벽엔 오랜 세월도 함께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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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식대에서 바라본 상족암 |
| ⓒ 오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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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식동굴로 들어가는 상족암 통로 |
| ⓒ 오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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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족암 공룡 발자국 화석지 |
| ⓒ 오순미 |
월흥리 입암마을 입암항 안내판이 세워진 곳에서 데크길로 5분이면 전망대가 나온다. 바다로 뻗은 전망대에서 병풍바위의 절경을 모조리 담기엔 역부족이다. 욕심 같아선 전망대가 바다 쪽으로 좀 더 나가야만 아름다운 주상절리를 흠씬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전망대 길이를 두고 부렸던 욕심은, 사방을 둘러보는 순간 사라지기 때문이다. 역시 자연은 태세 전환을 빠르게 이끄는 저력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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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상)상족암에서 바라본 병풍바위(하)전망대에서 본 병풍바위 |
| ⓒ 오순미 |
동네 어르신들의 산책도 이어지는 이곳. 그분들의 표정에서 여유가 느껴진다. 병풍바위와 상족암, 한려수도가 산책길인 그분들의 삶은 어쩐지 구하거나 얻고자 함이 없는 여백이 본질이지 않을까, 짐작됐다.
첫날의 마지막은 학이 알을 품은 모습의 학동마을 옛 담장(국가등록문화재 재 258호)으로 향했다. 350년 전통을 가진 학동마을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해안 벽촌에 자리한 흔치 않은 반촌이어서 그런가, 말소리조차 줄여야 할 것 같이 조용하고 점잖은 마을이었다.
자연석인 점판암 개석과 황토로 쌓은 이곳 담장은 학동 마을만의 특징이다. 담장에는 사람 키높이 정도에 가난하고 배고픈 이에게 먹을거리를 나눠주던 구휼 구멍이 있다. 키높이에 두어 서로 얼굴을 모르게 한 것은, 가져가는 사람을 미리 배려한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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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동마을 옛 담장길과 구휼 구멍 |
| ⓒ 오순미 |
단아한 가로수에서 온기가 담긴 학동 마을까지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고성의 첫날. 고성에서 만난 이야기들은, 원하는 것보다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해 보라고 마음을 세워주는 아량까지 베풀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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