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후우울증인가요? “예술 20분을 처방합니다” [.txt]
‘신경미학’이 알려주는 예술의 치유력
‘파킨슨병에 탱고 처방’ 다양한 사례 소개
예술가들은 끊임없이 예술의 효용을 의심하지만, 이제 그런 고민은 그만 접어두어도 될 것 같다.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예술의 한 조각을 부여잡고 척박한 일상을 살아간다. 출근길에 듣는 노래 한 소절, 지루한 회의 시간 남몰래 끄적이는 그림, 어쩌다 한번 간 영화관에서 만난 강렬한 장면, 근사한 카페에서 천천히 음미한 시 한 편…. 잿빛 일상에 침투한 아름다움은 삶을 다시 채색한다. 그렇게 삶은 다시 살 만한 것이 된다.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는 아름다움이 인간을 살게 하는 메커니즘을 최신 과학 이론과 풍부한 사례로 증명하는 책이다. 지은이는 두 사람. 존스홉킨스 의대 산하 국제예술마인드 연구소 창립자이자 뇌과학자 수전 매그새먼과 구글 하드웨어 제품 개발부 디자인 부총괄 아이비 로스다. (뇌과학자와 아티스트의 조합부터가 이 책의 핵심 개념인 과학과 예술의 융합을 보여준다) 지은이들은 ‘신경미학’이라는 영역을 소개하면서 예술을 직접 하거나 감상하는 행동들이 인간의 뇌를 실질적으로 바꾸며, 이 변화를 통해 삶이 한층 더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이러한 사실은 1960년대부터 이어진 ‘신경가소성’에 관한 여러 연구를 통해 입증됐다. 신경가소성이란, 뇌가 신경 연결을 끊임없이 생성하고 재배치하고, 또 스스로 재배선하는 능력을 말한다. 1960년대 초, 신경과학자 메리언 다이아몬드는 뇌가 변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모종의 실험을 고안했다. 쥐를 세 무리로 나눠 첫번째 케이지에는 쥐들이 탐색하고 가지고 놀 장난감이나 천 조각을 넣고, 두번째에는 평범한 쳇바퀴만 한 대를 놓았으며, 세번째에는 아무것도 넣지 않았다. 결과는 놀라웠다. 몇주 후 쥐의 뇌를 해부했더니 탐색할 대상이 많은 첫번째 케이지에서 지낸 쥐 무리의 대뇌 피질이 세번째 그룹보다 6% 두꺼웠다.
이 연구 이후 신경과학자들은 뇌가 변화하는 과정과 양상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돌출적”인 감각 자극(시각, 청각, 후각 등)이 충분히 주어졌을 때 뉴런의 시냅스 부위가 연접하면서 뇌가 생물학적으로 변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예술은 이 과정에서 돌출적인 감각 자극을 매개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예술을 접하고 연결되는 시냅스가 있다면, 반대편에는 제거되는 시냅스도 있다. 우리 뇌는 낭비를 싫어하기에 일종의 ‘가지치기’ 과정이 이뤄지는 것이다. 예술은 이런 양상으로 끊임없이 뇌를 재배선한다.
이러한 과학적 발견을 응용해 인간의 질병을 호전시키려는 여러 시도가 전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파킨슨병 환자에게 탱고를, 치매 환자에게 음악을 처방하는 식의 “표적화한 미학적 치료”는 이미 의료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뇌 장애의 한 종류인 파킨슨병을 앓는 환자는 주로 보행에 어려움을 걷는다. 자동운동을 담당하는 뇌 부위인 기저핵의 신경이 손상되어 도파민 레벨이 급격히 떨어지기 때문이다. 춤은 이런 증상을 상당히 호전시킨다. 뇌전도 검사로 춤추는 파킨슨병 환자의 뇌파 변화를 확인했더니 기저핵의 혈류가 증가한 것이 포착됐다. 주 1회 댄스 교실에 참여한 환자의 운동 장애가 눈에 띄게 개선됐다는 연구도 있다.
산후우울증 같은 정신건강 문제에도 예술은 유의미한 치료제가 된다. 지난 2015년 영국의 연구진이 산후우울증을 겪는 여성을 대상으로 임상 시험을 했다. 이 중 일부가 산후우울증에 특화된 10주 노래 부르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는데, 이들의 회복 속도는 다른 집단보다 1개월가량 빨랐다. 산후우울증을 앓는 환자들은 모유 수유 때문에 항우울제 복용을 꺼리고, 육아하느라 상담 치료를 받기도 어렵다. 그런 와중에 시도된 노래 처방이 상당한 약효를 발휘한 셈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은 더 많은 가능성을 열어젖히고 있다.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더 풍부한 예술적 경험을 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화상 환자의 통증 경감을 위한 몰입형 가상현실(VR) 프로그램 ‘스노우월드’가 단적인 예다. 극한의 고통으로 악명 높은 화상 처치. 이들에게 “눈사람, 꽝꽝 언 연못, 빙하와 펭귄 등이 등장하며 심지어 환자가 눈을 뭉쳐 던질 수도 있”도록 고안된 스리디(3D) 컴퓨터와 헤드셋을 제공했더니, 환자들이 통증을 35∼50% 덜 느꼈다고 응답했다.
예술의 효용을 입증하는 사례가 이토록 많지만, 시간·경제적 자원을 갖춘 소수만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다는 선입견 탓에 우리는 예술을 여전히 어렵게 느낀다. 하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예술은 거장과 귀족의 전유물이 아니다. 컬러링 북에 색칠하기, 노래 흥얼거리기, 에세이 쓰기 같은 “소소한 창의성 발휘 행위”도 20분가량 지속한다면 신체와 정신을 더 나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이미 산적하다. 이런 소소한 예술조차 어려운 여건이라면 자연이 훌륭한 대안이 된다. 2019년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자연이나 땅과 연결된 느낌이 드는 장소에 단 20분만 있어도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 분비가 눈에 띄게 감소한다”. 지은이들이 “이 책의 제목을 ‘예술 20분의 효과’라고 지을까 잠시 고민했을” 정도다.
중요한 건 ‘미’(아름다움)가 아니라 ‘미학적 사고방식’이자 ‘미학적 삶의 방식’이다. 아름다움을 알아채고, 그것을 삶에 들이려는 마음 말이다.
최윤아 기자 a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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