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증가는 시대적 흐름… 바뀐 환경 맞게 공간 재창출해야”

이용상 2025. 3. 28. 0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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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초대석] 조훈희 한양대 교수
조훈희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가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빈집과 공실의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을 이야기하고 있다. 조 교수는 핵심 키워드로 ‘콘텐츠’를 꼽았다. 이한형 기자


현재 대한민국엔 약 153만4000호의 집이 텅 비어 있다. 지난해보다 5.7% 늘었고, 10년 전(2015년)보다 43.6% 증가했다. 빈집은 대부분 지방에 몰려 있다. 전남은 인구 1000명당 빈집이 67.2호에 달한다. 이어 강원(54.0호), 충남(53.1호), 전북(51.8호), 제주(51.7호), 경북(50.5호) 등에도 곳곳에 빈집이 방치돼 있다. 15년2개월여의 월급을 고스란히 모아야 내 집 마련이 가능한 서울(2022년 국토교통부 주거 실태조사)과 대비된다.

주택에 머물던 거주자가 떠나면 ‘빈집’이 되고, 상가에 있던 자영업자가 나가면 ‘공실’이 된다. 빈집 못잖게 공실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역대급 자영업 폐업률이 초래한 결과다. 지난 21일 서울 영등포구 국민일보 본사에서 조훈희 한양대 부동산융합대학원 겸임교수를 만났다. 부동산 투자와 도시계획 전문가인 그는 ‘빈집과 공실의 시대’를 극복할 키워드로 ‘콘텐츠’를 꼽았다. 비어 있는 곳을 채울 ‘무언가’가 문제 해결의 핵심이란 의미다. 다음은 일문일답.

-빈집이 빠르게 늘고 있다. 원인을 꼽는다면.

“거스를 수 없는 시대 흐름으로 봐야 한다. 지방에서 농사짓는 인구는 확 빠진 지 오래고, 이젠 산업단지의 공장도 동남아 등 외국으로 옮겨가고 있다. 시대가 3차 산업 중심으로 변하면 지방 사람들은 도심으로 모일 수밖에 없다. 그분들이 살던 집이 빈집으로 남는 건 당연하다.”

-그렇다고 터전을 떠난다는 게 쉽진 않을 텐데.

“서울은 인테리어를 하면 집값이 오른다. 반면 시골은 집을 수리해도 들어올 사람이 없다. 공사비가 증가할수록 지방에선 집을 유지·보수하는 데 돈 쓰는 주민이 줄어든다. 집은 계속 낡아갈 테고 주거 가치는 하락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 주민은 결국 떠나고 동네는 치안이 악화된다. 이런 악순환은 지방소멸 가속화로 이어진다. 지자체는 세수가 줄기 때문에 주거 지원을 하기 힘들어진다. 결국 빈집이 지역 간 초양극화를 부추긴다.”

-대안은 없을까.

“바뀐 시대 환경에 맞게 공간을 재창출해야 한다. 예를 들어 인건비 문제로 근로자가 빠져나간 인천·동두천·안산 등에 외국인 근로자가 많아졌는데 그들이 빈집을 활용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생기가 사라진 지역에 콘텐츠를 심는 것도 방법이다. 제주도 빈집을 문화·예술 공간으로 전환하거나 전주 한옥마을, 경주 황리단길 등도 콘텐츠로 지역을 활성화한 사례다.”

-정부는 어떤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가. 이에 대한 평가는.

“외부인이 지방에 오면 주거비나 창업을 지원하는 정책이 많다. 이런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장기적 관점에선 자생력을 보장받기 힘들다. 빈집을 임차인과 연계하는 ‘빈집 중개 플랫폼’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플랫폼은 일종의 놀이터다. 재미가 없으면 사람들이 찾지 않는다. 빈집이 ‘흉물’인 게 문제인데 이에 대한 해결이 선행되지 않으면 중개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빈집을 어떻게 ‘멋진 놀이터’로 만들 수 있을까.

“빈집이 증가하면 대한민국 부동산 시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빈집에 생기를 넣는 방법은 콘텐츠뿐이다. 공간을 시민이 원하는 용도로 변경해 재공급해야 한다. 상가에 공실이 생기는 것과 같은 이치다. 소비자가 원하지 않는 걸 파는 가게는 망할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공실이 양산되는 원인은 뭘까.

“자영업에 너무 쉽게 뛰어들어서다. 일본은 개인사업자를 내주는 기준이 매우 까다롭다. 창업 후 실패 확률을 줄이기 위한 장치인 셈이다. 망하지 않으려면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소비자가 원하는 걸 해야 한다. 한국도 가게를 차리려는 이들을 대상으로 의무 컨설팅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 똑같은 제과점이어도 주력 상품이 식빵이냐, 도넛이냐에 따라 좋은 ‘목’이 다른데 입지에 대한 최소한의 지식도 없이 자영업을 시작하는 게 문제다.”

-좋은 입지를 선정하는 팁이 있다면.

“다양한 기준이 있겠지만 팁만으로는 공실 문제의 구조적 해결이 어렵다. 공실 양산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기업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본다. 르네상스 시대에 피렌체 가문은 적잖은 돈을 쏟아부어 문화 부흥에 기여했다. 상가도 마찬가지다. 돈이 돌 수 있게끔 마중물 역할을 할 뭔가가 필요하다. 신세계그룹의 스타필드처럼 기업이 투자하고 거기서 해결책을 찾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다.”

-공실 문제에 대한 해법으로 상업면적 총량 관리제도 거론된다.

“정부가 개입하지 않더라도 지금은 뛰어들면 안 된다는 걸 이미 시장이 더 잘 알고 있다. 정부가 이런 정책을 내놓는 건 시장을 못 믿어서다. 최근 서울시가 해제했다가 한 달여 만에 번복한 토지거래허가제가 대표적이다. 정책을 바꾼다는 건 시장을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 부동산 시장은 정부가 믿기 힘든 분명한 이유가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이유가 뭔가.

“다른 상품과 달리 한국에서 부동산은 ‘무조건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자산의 80%가 부동산에 묶여 있다. 부동산 가치가 다른 시장 가치보다 높게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시장 논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외국과 비교할 수도 없는 특이한 상황이다. 다만 부동산 정책이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건 경계해야 한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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