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서향꽃 필 무렵…혼저옵서예, 봄날의 제주

지난 21∼23일 제주도 서귀포시 일대에서 ‘서귀포 봄맞이 축제’가 열렸다. 작고 소박한 마을 잔치를 굳이 찾아간 건, 올해로 14년째인 행사를 오롯이 서귀포 주민이 꾸려왔다는 얘기를 들어서다. 가장 먼저 봄이 당도하는 땅에서 주민들이 어울려 봄을 맞이하는 모습은 진솔하고 아름다웠다.
무병장수 비는 탐라의 별

22일 오후 6시 서귀진지 공원. 마을 합동 제례가 열렸다. 이름하여 ‘남극노인성제’. 지방(紙榜)에 ‘남극노인성군신위(南極老人星君神位)’라 쓰여 있었다. 별에 올리는 제사라니. 난생처음 구경했다.
남극노인성은 남반구의 별이다. 북반구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남반구 별이 남극노인성, 즉 ‘카노푸스(Canopus)’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라산 남쪽, 다시 말해 서귀포 일대에서만 볼 수 있다.
남극노인성은 추분에서 춘분 사이에만 관찰이 가능하다. 하여 서귀포에서 남극노인성이 보인다는 건 날이 추워진다는 뜻이고, 남극노인성이 안 보인다는 건 따뜻한 계절이 시작한다는 의미다. 오래전부터 서귀포에서는 추분과 춘분 즈음에 남극노인성에 제를 올렸다.
남극노인성에 제를 드리는 건 이 별이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별이어서다. 그래서 별 이름에도 ‘노인’을 붙였고, 무병장수 바라는 마음을 담아 별을 섬겼다. 일제 강점기 중단됐던 남극노인성제는 축제를 시작하고 5년 뒤 재개됐다. 여성 차별이 심했던 제주도이지만, 올해로 3년째 여성도 제관으로 참여한다.
몰망국과 전기떡, 입에도 봄이 왔네
23일 오전 10시 서귀포 서복공원. 길놀이가 축제의 개막을 알렸다. 제주 사람은 길놀이를 ‘걸궁’이라 불렀다. 걸궁은 거리굿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다. 마을 곳곳을 돌며 잡귀를 몰아내는 무속의례가 끝나자 비로소 잔치가 시작됐다.

축제장 천막 안에서 주민들이 빙떡과 화전을 부쳐 나눠 먹었다. 서귀포에서는 이맘때 빙떡, 제주 말로 ‘전기떡’을 부쳐 먹는다고 한다. 전기떡에 무가 들어가는데, 요즘 나오는 월동무가 제일 맛이 들어서다.

또 다른 천막에서는 몰망국 밥상을 3000원에 팔았다. 제주에서는 잔치가 열리면 손님에 몰망국과 돗궤기반(흑돼지 수육)을 대접했다. 몰망은 ‘모자반’이란 해초의 제주 방언이다. ‘몸’이라는 방언은 귀에 익은데, 몰망은 처음 들었다. 몰망국은 돼지고기 육수에 몰망을 넣은 음식이다. 몰망국도 이른 봄날 제주의 음식이다. 몰망이 제일 맛있는 계절도 이맘때다.
만리서도 향긋…지금 제주는 꽃천지

이 정겨운 마을 잔치는 꽃나무 묘목을 나눠주는 이벤트로 마무리됐다. 23일에는 서복공원에서, 24일에는 가시리 농장에서 2500여 주의 꽃나무 묘목을 공짜로 줬다.
가시리 농장은 마침 백서향꽃이 만개했다. 향이 만리도 간다는 말이 허튼소리가 아니었다. 은은한 향을 좇아 한참을 걷고 나니 백서향 군락지가 나타났다.

서귀포 봄맞이 축제는 서귀포문화사업회 주최로 2011년 처음 열렸다. 서귀포문화사업회는 서귀포에 거주하는 각계 인사 15명이 모인 단체로, 가시리 농장을 운영하는 이석창(69) 회장이 이끌고 있다. 이 대표의 강고한 고집 또는 후한 인심으로 십수 년째 묘목 나눔 행사가 이어져 왔다. 이 대표는 왜 애지중지 키운 꽃나무를 나눠줄까.
“꽃나무를 나누는 건 봄을 나누는 것과 같아서입니다. 서귀포 사람들과 서귀포의 봄을 함께 맞고 싶을 뿐입니다.”
제주도=글·사진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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