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역대 최악의 산불, 여야정 힘합쳐 국가재난 극복해야

27일 낮 경북 청송군 파천면 지경리 호박골에서 주민들이 산불로 불에 탄 집 주변을 바라보고 있다. 김태형 기자 xougd555@hani.co.kr

지난 주말 시작된 영남권 산불이 확산을 거듭하며 역대 최악의 피해를 입히고 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집계를 보면, 지난 21일부터 경북·경남·울산·충북 등 전국에서 발생한 산불로 27일 오후 8시 기준, 28명이 숨졌다.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산불로 안동 4명, 청송 4명, 영양 6명, 영덕 9명 등 22명이 숨졌고, 경남 산청 산불에 투입된 진화대원 4명이 희생됐으며, 26일엔 의성에서 산불 진압 중이던 헬기가 추락해 조종사 1명이 목숨을 잃었다. 산림청 통계상 산불 사망자 수가 가장 많았던 1989년(26명)을 넘어선 역대 최다 인명 피해다. 이재민도 1만7346명에 이른다.

화마가 할퀸 면적에서도 최악이다. 이날 낮까지 피해 면적은 약 3만6000㏊(헥타르·1㏊는 약 3025평)로, 기존 최대 규모인 2000년 동해안 산불 피해 면적 2만3794㏊를 넘어섰다. 의성에 있는 천년고찰 고운사가 전소되는 등 문화유산 피해도 잇따른다.

이번 산불은 고온건조한 날씨에 강한 서풍이 겹쳐 불길이 급속히 번지면서, 당국의 사투에도 좀처럼 진화되지 않고 있다. 이날 전국 곳곳에 비가 왔으나 극소량에 그쳐, 진화에 큰 도움이 되진 못했다. 더구나 당분간 큰비 예보가 없어 절망감이 더해진다.

이번 산불 대처 과정에서, 노후하고 부족한 소방 헬기 등 진화 역량, 보호장구·교육이 충분하지 않은 산불 진화대원 운용, 주로 고령층인 지역 주민 대피 시스템 등의 문제점이 노출됐다. 산불 대형화의 구조적 원인을 살피고 예방·대응 체계를 대대적으로 정비해야 할 필요성이 거듭 드러난 것이다. 그러나 당장 급한 것은 산불 진화와 이재민 지원에 정부, 지자체, 정치권, 민간의 총력을 모으는 일이다. 국민들과 기업들은 이재민 지원과 산불 피해 복구를 위한 구호물품과 성금을 보내며 마음을 보태고 있다. 무엇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를 앞두고 갈등을 고조시켜온 여야가 산불 대응에 국가적 역량을 결집시키는 게 중요하다. 다행히 여당인 국민의힘은 산불 피해 대응을 위한 여야정 협의를 제안했고, 더불어민주당도 산불 피해 지원을 위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추진하겠다며 이에 호응했다. 우원식 국회의장도 이날로 예정됐던 국회 본회의를 여당의 연기 요청을 수용해 열지 않고 산불 대응에 힘을 실었다. 여야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에 두고, 필요 이상의 정쟁은 중단하고 국가적 재난을 이겨내는 데 합심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