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에 눌리고, 카카오에 치이고…네이버의 AI 승부수 통할까
‘국내 검색 점유율 40%’ 빅테크 공세…협업 늘리는 카카오도 위협
(시사저널=정윤성 기자)
네이버가 인공지능(AI)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가 7년 만에 경영 일선으로 돌아오면서다. 네이버만의 성공 공식으로 AI 패권을 거머쥐겠다는 이 창업자의 복귀와 함께 AI 사업의 글로벌 진출과 투자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다. 챗GPT 등 글로벌 AI의 공세가 격해진 데다 이들과 협업을 넓히고 있는 카카오가 국내 시장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어 이 창업자의 리더십은 시험대에 오를 전망이다.
26일 경기도 성남시 네이버 그린팩토리에서 열린 네이버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 창업자는 사내이사로 선임되고, 이사회 의장직도 맡게 됐다. 2017년 3월 이사회 의장, 2018년 등기이사에서 물러난 이후 약 7년 만의 복귀다. 이 창업자는 "회사 사업에만 매진하겠다"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뒤 글로벌투자책임자(GIO)로서 글로벌 시장 개척에 집중해왔다.
그가 구세주로 등판한 데엔 AI 경쟁에 대한 위기감이 자리해 있다. 그간 네이버는 미래 먹거리인 AI 사업 확대에 가속 페달을 밟았다. 2023년 8월 선보인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하이퍼클로바X'를 검색, 커머스, 콘텐츠 등 네이버의 모든 서비스 곳곳에 AI를 적용하는 '온 서비스 AI'가 네이버의 핵심 전략이다. 주요 사업에 AI 기술을 적극적으로 입혀 매출 성장률을 끌어올린다는 구상이다. 네이버는 이를 위해 연간 영업수익의 22%를 연구개발(R&D)에 꾸준히 쏟아 붓고, 조 단위 투자 계획까지 마련했다.
독자적인 AI로 시장에서 승부를 보겠다는 목표와 달리 아직 구체적인 성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하이퍼클로바X가 국내 기업 및 연구기관 등에 적용되면서 B2B(기업 대 기업간 거래) 시장에서 일부 성과를 거뒀지만, 일반 사용자들을 대상으로 경쟁력을 갖췄느냐 하면 물음표가 붙는다. 27일 주주총회에 참여한 주주들도 "주변에서 네이버 AI를 쓰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이사회에 AI 전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라며 실망감을 내비쳤다.
물론 네이버는 지난해 국내 인터넷 플랫폼 기업 중 최초로 매출 10조원을 돌파하는 등 견조한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검색 광고가 주력인 서치 플랫폼 매출과 커머스 매출이 63.9%로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연간 매출 성장률은 11%로 2023년(17.6%)보다 주춤했다. 구글 등 글로벌 검색 플랫폼과 국내외 커머스 플랫폼의 침투에도 시장 점유율을 지켜내고 있지만, 언제까지 기존의 사업 모델이 자리를 유지할지 장담하기 어려운 셈이다.
이런 상황에 이 창업자가 복귀하면서 보다 빠른 의사결정과 공격적인 투자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창업자는 현재 상황을 기회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그는 주총 직후 기자들과 만나 "네이버는 거대 기술 기업에 맞서 25년간 견뎌오고 살아왔던 회사"라며 "지금 상황을 기회로 삼을 수 있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네이버 만큼이나 빠른 경쟁자들
이 창업자의 복귀에도 빅테크 AI의 공세는 네이버를 계속 고민에 빠트릴 전망이다. 그간 이 창업자는 한국 문화와 주권을 기반으로 한 생태계인 '소버린 AI' 구축을 강조해왔다. 하지만 이미 오픈AI의 챗GPT와 구글의 제미나이 등 빅테크들의 AI가 이끄는 시장에서 한국에 특화된 AI 모델만으로 정면 승부를 하기란 어려 과제다.
특히 글로벌 빅테크들은 AI 검색 서비스를 필두로 네이버의 안방 격인 국내 검색 플랫폼 시장에서 위협을 키우고 있다. 시장 점유율 조사 서비스인 인터넷트렌드에 따르면, AI가 보편화하기 전인 2015년만 해도 한 자릿수던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빙의 국내 검색 점유율은 최근 40%대를 오가고 있다. 네이버가 여전히 1위 자리를 고수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업의 추격 속도가 빨라지는 상황이다.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AI가 정리·요약된 답변을 제공하는 검색 기능을 담은 'AI 브리핑' 서비스를 이날부터 시작했다. 구글의 오버뷰 등 비슷한 서비스가 이미 상용화 됐지만, 네이버는 생활 밀착형 결과물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을 차별점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이번 서비스 도입으로 오히려 검색 서비스 수익성이 악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최상단에 AI가 정보를 요약해서 보여주는 방식으로 바뀌면서 검색 광고 노출 기회가 줄어 수익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국내 경쟁 기업들의 추격도 부담이다. 네이버와 포털, 클라우드, 커머스 등 다양한 사업 분야가 겹치는 카카오 역시 자사의 서비스에 AI를 적극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특히 카카오는 최근 오픈AI 등 빅테크 기업과 협업을 늘리며 부족한 기술력을 보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KT 역시 MS와 전략적 협력을 통해 AI와 클라우드 양축에서 기술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를 고집해 온 네이버와는 상반된 행보다.
네이버도 이 창업자의 복귀와 함께 다양한 빅테크 기업과의 협업을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이 창업자는 "빅테크와 협업할 것이 있으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네이버도 엔비디아라든지 여러 가지 협력 모델 같은 것을 예전에도, 지금도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