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선 '벤버지'였는데... UAE, 왜 벤투 감독 경질했나
[이준목 기자]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 한국축구를 16강으로 이끌었던 파울루 벤투(포르투갈) 감독이 UAE(아랍에미리트) 국가대표팀 사령탑에서 경질됐다.
UAE 축구협회는 지난 3월 26일(한국시간) 벤투 감독의 경질을 발표했다. 벤투 감독과 함께 부임했던 포르투갈 코치진과의 계약 역시 모두 전원 해지됐다. 이로써 한국대표팀을 떠난 직후인 지난 2023년 7월 3년 계약을 맺고 UAE 사령탑으로 부임했던 벤투 감독은, 결국 계약기간을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약 1년 5개월 만에 야인으로 돌아가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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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6일 UAE 대표팀에서 경질된 파울루 벤투 감독 |
| ⓒ 아시아축구연맹 |
3차 예선에서는 각 조 1, 2위에만 월드컵 본선 직행 티켓을 준다. A조는 강호 이란이 6승 2무로 승점 20점을 확정하며 가장 먼저 본선행을 확정 지었다. 2위는 우즈베키스탄이 5승 2무 1패·승점 17을 기록하며 UAE에 4점차로 앞서고 있어서 본선행이 유력한 상황이다.
벤투 감독은 UAE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된 지난 8차전에서 북한을 2-1로 제압하며, 이란과 2-2로 비긴 우즈베키스탄과의 승점차를 좁힌 상황이었다. 하지만 UAE 축구협회는 6월 남은 2경기에서 우즈벡과의 격차를 뒤집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여 과감한 변화를 선택한 것으로 분석된다.
벤투 감독의 전격 경질에 대한 세계 각지의 평가는 엇갈린다. UAE의 피파랭킹은 63위로 A조에서 이란(18위), 카타르(48위), 우즈베키스탄(58위)에 이어 4번째에 불과하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전체 회원국 중에서는 9위였다. UAE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한 것은 1990년 이탈리아 대회(조별리그 3패) 한 번뿐이다. 어쩌면 벤투 감독으로서는 더도 덜도 아닌 현재 UAE의 전력에 걸맞은 수준의 성적을 내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더구나 이번 북중미월드컵부터 본선 진출국이 48개국으로 늘어나면서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도 8.5장으로 증가했다. 아시아 3차예선 출전팀은 본선직행권이 주어지는 상위 2위 이내에 들지 못해도, 3·4위까지는 4차 예선인 플레이오프를 거쳐 월드컵 티켓 도전의 기회가 남아있다.
UAE는 현재 조 5위 키르기스탄과 승점차를 7점으로 벌리며 최소 한4차 예선 진출권은 확보한 상태였다. 더구나 6월 열리는 9, 10차전 경기에서 우즈벡(홈)-키르기스스탄(원정)을 모두 잡으면 극적으로 조 2위를 탈환할 가능성도 남아있었다.
경질, 너무 성급했나
일각에서 벤투 감독을 경질한 UAE의 결정이 너무 성급한 게 아니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특히 벤투 감독에 대한 우호적인 기억이 많은 한국에서는 동정론이 훨씬 우세하며 일각에서는 '벤투가 다시 한국 감독으로 복귀했으면 좋겠다'는 반응도 쏟아지고 있다.
벤투 감독은 지난 2018년 8월 한국 대표팀의 사령탑으로 부임하여 4년 4개월간 지휘봉을 잡으며 '한국축구 역대 최장수 사령탑'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벤투호는 빌드업과 점유율에 기반하여 강팀들과도 정면승부를 펼치는 능동적인(PRO-Active) 축구를 추구했다. 벤투호의 A매치 통산 성적은 57전 35승 13무 9패로 승률이 61.4%에 달했고, 카타르월드컵에서는 한국축구에 12년 만에 월드컵 본선 16강이라는 선물을 안기며 '벤버지(벤투+아버지)'라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벤투 감독은 카타르월드컵이 끝난 후 대한축구협회와 재계약 논의가 불발되며 한국을 떠났지만, 거스 히딩크(한일월드컵 4강), 허정무(남아공월드컵 16강) 전 감독과 더불어, 한국 대표팀에서 '박수칠 때 물러난' 몇 안 되는 감독으로 꼽힌다.
이처럼 한국에서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남겼던 벤투 감독이, 정작 바로 다음 팀이었던 UAE에서 실패한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한국과 UAE 축구 간의 상황 차이, 그리고 벤투 축구의 근본적인 장단점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사실 벤투호의 전술과 리더십, 팀운영 방식 등은 한국에서나 UAE에서나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벤투 감독은 특유의 능동적인 빌드업 축구라는 확고한 철학을 기반으로 하여, 베스트11과 플랜A의 완성도를 극대화시키는 성향의 지도자다.
벤투 감독의 이러한 '뚝심'은, 한국대표팀 부임 당시 한국축구가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황희찬, 황인범 등 유럽파 '황금세대'의 전성기를 맞이하던 시기적 행운, 4년여간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벤투의 축구철학을 믿고 기다려준 축구협회와 팬들의 '인내심'이 뒷받침되며 빛을 발할 수 있었다.
다만 벤투 감독은 사실 과대평가와 과소평가가 모두 공존하는 인물이었다. 카타르월드컵 16강 직후에는 압도적인 호평으로 기울어지기는 했지만, 직전까지만 해도 벤투 감독은 아시안컵 8강 탈락, 한일전 연속 참패, 유연성 없는 빌드업 축구와 선수선발에 대한 고집, 자신의 문제점을 결코 인정하지않는 불통 이미지 등이 겹치며 이런저런 논란과 위기도 많았다. 이로 인하여 벤투 감독을 비판하는 국내 축구인과 일부 언론에서는 과도할 정도의 공격을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벤투 감독이 UAE에서 보여준 행보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한국 대표팀 시절과 데자뷔를 떠올리게 할 만큼 흡사한 장면이 많았다.
부임 초기에 안방에서 파죽의 연승 행진을 달릴 때만 해도 경기력에 매우 호평을 받았다는 점, 지휘봉을 잡고 첫 메이저대회였던 AFC 아시안컵(2019 한국 8강, 2024 UAE 16강)에서 각각 '언더독'팀들(카타르-타지키스탄)에게 연달아 덜미를 잡혀 조기탈락했다는 점. 자국 팬들의 지지를 받던 스타 선수(이강인, 알리 마브쿠트)를 명확한 설명 없이 전력에서 장기간 배제하면서 언론과 팬들의 집중 공격을 받았던 사례 등이 대표적이다.
그럼에도 자신의 축구철학이나 팀운영 방식에 대한 외부의 변화 요구를 한사코 거부하며 '마이 웨이'를 고수하는 폐쇄적인 언론 대응 방식 역시 한국 대표팀 시절과 거의 똑같았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이러한 벤투 감독의 철학을 '소신'으로 존중하고 믿어줬지만, 감독교체가 밥 먹듯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중동축구계에서는 한국처럼 3,4년을 차분히 기다려줄 인내심이 없었다.
3차예선에 접어들며 벤투호는 극심한 롤러코스터를 거듭했다. 아시안컵 2연패를 차지한 강호 카타르를 상대로 2승을 거두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최약체로 꼽히던 북한과 무승부를 기록하거나 골결정력 부족으로 다잡은 승점을 놓치는 등 기복이 매우 심했다. 여기에 월드컵 예선과 병행하며 참가한 아라비안 걸프컵에서는 2무 1패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하자 벤투 감독에 대한 UAE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된 상태였다.
벤투 감독의 발전
다만 이를 단순히 중동축구계 특유의 지나친 조급증 때문으로만 해석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벤투 감독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불리는 능동적인 빌드업-점유율 축구는 사실 그만의 독창적인 전술이 아니라 당시 유럽축구의 트렌드를 따른 것이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은 유럽을 떠나서 지도자 경력을 이어간 지 벌써 8년이 넘었고, 급변하는 현대축구에서 전술적으로 딱히 진화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이미 한국 시절에도 브라질이나 일본 같은 수준 높은 강팀들을 상대로는. 전술적 역량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며 같은 패턴의 완패를 거듭한 바 있다.
아직도 한국 시절의 좋은 기억만 간직한 일부 팬들과 달리, 벤투 감독은 UAE에서 보낸 1년 5개월은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님에도 경기력과 전술적 측면에서 발전이 더디다는 비판이 많았다. 무엇보다 준비한 전술이 통할 때는 위력적이지만, 경기가 풀리지 않을 때 유연한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는 벤투 축구의 약점은 UAE에서도 그대로 반복된 게 뼈아팠다.
사실 벤투 감독이 한국에서는 월드컵 16강으로 고평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유럽 무대 복귀나 상위권 팀으로의 이적이 아닌, 한국보다 피파랭킹도 떨어지고 아시아에서도 중위권 팀에 불과한 UAE로 갔다는 것부터가 의미심장했다. 곧 세계축구계에서 판단한 벤투 감독의 주가가 그 정도였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국내 축구 팬들이 벤투 감독을 그리워하는 것은, 현재 한국축구의 상황도 그리 밝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벤투 감독과 결별한 이후, 위르겐 클린스만과 임시 감독 체제, 그리고 현 홍명보 감독 체제를 거치며 2년이 넘도록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단점은 있어도 최소한 확고한 축구철학과 선수단 장악력을 인정받았던 벤투 감독 시절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2002 한일월드컵 이후 한국축구가 한동안 슬럼프를 겪을 때마다 '히딩크 감독을 복귀시켜라'는 주장이 쏟아졌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다. 이는 그만큼 한국축구가 과거의 향수에만 머무르며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한국축구는 우여곡절 속에 B조 1위를 지키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비록 UAE에서는 실패했지만 벤투 감독 역시 조만간 새로운 클럽이나 국가대표팀의 러브콜을 받을 가능성은 여전히 높다. 아름다운 과거는 각자 추억으로만 묻고, 서로 더 나은 미래를 고민해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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