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벗삼아 60년 물질 제주해녀, 그녀는 여전히 꿈을 꾼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주의소리 문준영·조승주]
[기사 수정 : 3월 29일 오후 4시 47분]
1950년생 홍경자 씨. 어린시절에 대해 묻자 꺼낸 첫 마디는 "다섯 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할머니하고 같이 크면서 많이 울었다"는 기억. 어린 경자의 마음을 달래준 것은 드넓은 바다였다.
"바닷가에서 고동 잡아가지고 돌 트멍(틈)에 앉아서 삶아서 까먹고 그렇게 하면서 바닷가에서만 살았지. 더우면 물에 들어가서 헤엄도 치고. 그러다 보니 수영도 자연히 배우게 됐고. 헤엄치다 집에 오면 보리로 밥하고.
하여튼 어린시절은 동생 젖 먹이러 다니고, 바닷가에서 헤엄치고, 문어 같은 거 잡아서 시장통 같은 데 가서 팔아가지고 동생이랑 아이스크림이랑 과자 사 먹고 그런 시절이었어.
|
|
| ▲ 한림중 재학 시절 홍경자씨가 학교 선생님, 친구들과 찍은 사진. 왼쪽 사진은 맨 오른쪽이 홍경자씨, 오른쪽 사진은 맨 앞 오른쪽이 홍경자씨. |
| ⓒ 제주의소리 |
"중학교도 안 보내주겠다고 하는 걸 막 울고 난리를 쳐가지고 중학교를 겨우 들어갔는데 맨날 지각하고 결석했어. 왜 그러냐 하면 농사지으러 어머니가 가면 내가 밥해서 동생들 먹이고 준비해서 학교가다 보면 맨날 지각생. 지각하는 것도 내가 1등. 그러면 복도에서 손 들고 서고. 그래도 그게 재미있었어. 농사철에는 동생들 돌보다 보면 학교 못 가는 날도 있고. 그래도 동생들하고 어울려서 사는 그 시절이 재미있었어."
큰 낭푼(그릇)이 하나에 다 같이 밥을 먹던 시절. 배추 된장국과 김치면 그렇게 맛있었다고 한다. "지금 맛있는 반찬을 아무리 해도 그때 같이 맛있는 밥상이 없다"고 회상한다.
중학교를 졸업한 그녀는 경주 감포로 처음 원정 물질을 간다. 무명천 옷을 입은 채 천초, 밤생이(성게)를 잡기 위해 추위와 맞서던 기억, 모닥불을 피워줬던 해병대원들, 거기서 서귀포 출신의 중대장을 만나 반가웠던 순간, 문무왕릉 근처에서 물놀이 했던 기억이 선하다.
3년간 물질 끝에 이번엔 부산으로 가서 전신전화국에 들어갔지만 두 달만에 대형 화재가 났고 결국 직장을 잃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집을 가려면 돈을 벌어야 한다고 해서" 물질을 다시 시작했다. 23살에 혼인을 한 이후에도 애를 두고 잠시 비진도 등에 원정물질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고향 바다로 다시 돌아왔다.
"시집가서는 물질 안한다고 했는데, 가보난 빚도 있고 그래가지고 애기들 두고 원정물질 또 다녀왔지. 거기서 좀 벌어서 와가지고 빚 물고 그 다음부터는 이제 여기서 물질하기 시작했지."
|
|
| ▲ 홍경자 씨가 남편과 함께 찍은 사진. 둘은 천생연분이라 불릴 만큼 금슬이 좋았다. |
| ⓒ 제주의소리 |
어릴 적부터 친구였던 남편. 그녀가 물에서 문어를 잡고 나와 불턱에서 휘파람을 불면 남편이 다가왔다. 남편은 그녀가 잡은 문어를 미끼로 옥돔을 잡았다. 그렇게 잡은 옥돔 중 큰 것 하나는 다시 그녀의 집에 전달해주면 온 식구가 국을 끓여먹을 수 있었다.
원정물질을 하던 시절, 신랑은 강원도 오징어잡이 배를 탔다. 부산 교환소에 있던 시절 강원도에서 부산까지 와 오징어를 주기도 했고, 멀리 있어도 서로 편지를 주고 받았단다. 자연스럽게 연인이 돼, 6년간의 연애 끝에 마침내 결혼에 골인했다. "결혼같은 거는 생각도 안했는데 자연히, 놀다보니까 나중에 신랑 각시가 돼 있었다"고 회상한다.
남편은 평생 그녀의 가장 든든한 응원군이었다. 2002년 그녀는 인생의 중요한 도전을 앞두고 주저하는 마음에 남편에게 말을 건넸다. "나보고 어촌계장을 하라고 하는데, 나 하지 못할 건데..." 망설이던 아내를 보던 남편은 말했다 "해봐게! 저 사람 해질거라!"
"부녀회장 할때, 해녀회장 할 때도 엄청 도와줬어. 내가 물질 갔다 어두워서 집와 와도 밥해서 아기들이랑 먹고 잔소리 한 번 안하고. 고무 옷도 빨랫줄에 다 널어놓고. 본인도 어업에 종사하면서도 그렇게 협조 많이 해줬어. 협조 없었으면 못했지. 좀 도와주라고 하면 바닷가에 와서 같이 도와주고. 물에 갔다오면 '저 사람 고생해서' 해 가지고 빨래줄에 널어주고, 빨래 다 해서 넣었다가 걷어서 차곡차곡 서랍에 다 놔주고. 많이 협조해줘서 부녀회장도 했고, 새마을부녀회 읍회장도 할 수 있었지."
|
|
| ▲ 남편 김승화 씨는 2002년 제주 YWCA로부터 아름다운 남편상을 수상했다. |
| ⓒ 제주의소리 |
"저기 초상화 사진도 잘 안 봐. 보면은 속상하니까. 바다에서 작업해가지고 저녁에 들어올 때 불이 안 켜지니까 집이 좀 침침하고 기분이 안 좋지. 그럴 때 생각나, 집에 아무도 없으니까. (시간이 지나면) 차차 잊어진다고 하는데 이제 나이 들어가니까 더 생각나는 거 같아."
그런 그녀에게 위안이 되는 것은 역시 바다다. 바다만 가면 기분이 풀리고 몸이 가벼워진다. 그녀는 적어도 여든까지는 물질을 할 생각이라고 했다. 물에 가는 게 힘들지 않냐는 물음에 웃으며 답했다.
|
|
| ▲ 홍경자씨가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
| ⓒ 제주의소리 |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