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의 실수, 이태석의 등장... 홍명보호에 주어진 과제
[이준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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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 홍명보 감독이 경기를 지켜보고 있다. |
ⓒ 연합뉴스 |
10년 전 홍 감독은 2014 브라질월드컵에서 처음으로 국가대표팀 지휘봉을 잡았다. 1기 출범 당시만 해도 여론은 지금과 180도 달랐다. 선수 시절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이라는 후광이 있었고, 지도자로서도 2012 런던올림픽에서 한국축구 사상 첫 동메달을 이끌며 절정을 달리던 시점이었다.
더구나 한일월드컵 세대 이후 한국축구의 새로운 중심으로 떠오른 '런던올림픽 세대' 출신 선수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어서 선수단 장악력 역시 확실했다. 홍 감독은 전임 최강희 감독이 월드컵 본선을 확정한 상황에서 지휘봉을 물려받은 데다, 본선에서는 러시아·알제리·벨기에와 한 조에 묶여 대진운도 좋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이후의 결과는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다. '홍명보호' 1기는 브라질월드컵에서 처참하게 무너졌다. 1승 제물로 취급하던 알제리(2-4)에게 4골을 내주며 완패했고, 벨기에(0-1)전에서는 상대 퇴장으로 인한 수적 우위에도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결국 1무 2패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들여야 했다.
월드컵만이 아니라 재임 기간 통산 A매치 승률 26.3%(5승 4무 10패)는 역대 한국대표팀 감독 중 최악의 승률로 역사에 남았다. 여기에 선수 편애와 특혜, 감독의 말 바꾸기 논란 등 경기 내외적인 잡음도 어느 때보다 많았다. 당초 홍 감독은 대한축구협회의 지지를 받아 2015 아시안컵까지 지휘봉을 맡을 뻔 했으나, 쏟아지는 비판 여론을 이기지 못하고 결국 사퇴해야 했다.
어느 때보다 냉랭한 여론... 왜?
10년의 세월이 흘러, 홍 감독은 논란 속에 다시 대표팀 사령탑으로 복귀했다. 과거에 비하면 행정가와 클럽팀 사령탑을 거치며 다양한 경험을 쌓았고, 특히 직전에 감독을 맡았던 울산 HD에서는 K리그 우승까지 거머쥐어 지도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홍 감독은 대표팀 2024년 7월 29일 2기 취임 기자회견에서 "10년 전에는 실패했다. 아는 선수들만 뽑아서 쓰는 '인맥 축구' 얘기도 들었다. 인정한다"라면서도 "개인적인 욕심이 아닌 한국 축구의 발전을 위해 도전을 결심했다"며 명예회복 의지를 드러냈다.
홍명보호 2기 출범 이후 약 8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축구대표팀은 현재 4승 4무(승점 16)로 무패행진을 이어가며 3차예선 B조 선두를 지키고 있다. 2위 요르단(승점 13)과는 3점 차, 3위 이라크(승점 12)와는 4점 차다. 한국은 남은 2경기에서 승점 1점만 따도 조 상위 2위까지 주어지는 월드컵 본선행을 확정하게 된다.
그러나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온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도 불구하고, 정작 홍명보호를 바라보는 여론은 어느 때보다 냉랭하기만 하다. 상대적으로 A조나 C조의 강팀들을 피해 수월하다는 평가를 받던 B조에 편성됐음에도 부진한 경기력을 거듭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 함께 아시아에서 월드컵 단골로 꼽히는 A조의 이란과 C조의 일본 등은 이미 2경기를 남긴 시점에서 일찍 본선행을 확정 지었기에 홍명보호와 더욱 비교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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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일 경기도 고양종합운동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7차전 대한민국과 오만의 경기. 이강인이 부상으로 업혀나가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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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는 바꿔 말하면 그만큼 홍명보호의 빈약한 '플랜B'와 위기관리 능력을 드러낸 대목이다. 준비한 플랜A와 믿었던 핵심 선수들이 통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이를 타개할 수 있을 만한 대안이 없다는 건, 이미 홍명보호 1기에서도 명백하게 드러난 약점이었다.
언제까지 '해바라기 축구' 할 텐가
홍명보호 1기를 관통하던 대표적인 논란의 키워드는 '의리축구'였다. 자신이 잘 알고 믿는 선수들만 중용하는 홍 감독의 편향적인 선수선발과 활용법을 꼬집는 표현이었다. 브라질월드컵에서 홍 감독이 경기력 논란에도 무한 신뢰를 보였던 원톱 공격수 박주영이 부진에 빠졌을 때, 홍명보호는 끝까지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면 의리라기보다는, 몇몇 대체 불가한 핵심 선수들의 개인능력이 전술 그 자체가 되는 '해줘 축구', '해바라기 축구'라는 표현이 더 적합하다. 그리고 이는 전임자였던 위르겐 클린스만이 가장 비판받은 대목과도 그대로 겹친다.
10년 전과 비교해 해바라기의 대상이 박주영에서 손흥민·이강인·김민재·황인범 등으로 옮겨갔을 뿐, 홍명보 축구의 본질은 여전히 크게 바뀌지 않았다. 오만전에서는 킬패스로 황희찬의 선제골을 어시스트한 이강인이 부상으로 빠지자마자 경력이 급격히 하락했다. 요르단전에서는 중원 조율사인 황인범이 복귀했지만 그가 경기 막판 교체되고 난 후 한국은 더 이상의 슈팅 기회가 나오지 않았다.
주장 손흥민은 2연전 동안 2선에서 최전방까지 여러 포지션을 넘나들며 분투했지만, 전성기에는 거의 나오지 않던 트래핑 실수와 돌파력 실종 등 확연히 폼이 떨어진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핵심 선수들이 부진할 때 홍 감독은 이들을 대체할 자원이나 전술적 변화 카드를 보여주지 못했다.
홍 감독의 전술적 역량은 과거부터 지속해서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지난해 홍 감독의 선임을 주도했던 이임생 기술위원장은 그가 울산 HD에서 빌드업 전술의 일종인 '라볼피아나(Lavolpiana)'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데 높은 평가를 내렸다고 밝히며 전술적 능력을 옹호한 바 있다.
그러나 박문성 해설위원이나 이천수 전 국가대표 같은 전문가들은 "홍 감독의 선임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낸 표현에 불과하다"며 이임생의 해명을 평가절하한 바 있다. 실제로 현대축구에서 빌드업과 라볼피아나는 특별히 새로운 전술도 아니며 홍 감독이 자신만의 새로운 라볼피아나를 제시한 것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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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일 경기도 수원시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3차 예선 B조 8차전 대한민국과 요르단의 경기. 이태석이 드리블을 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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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예선에서 한국을 상대하는 대부분의 팀이 수비에 치중하는 상황에서 때로는 한 박자 빠른 대각선 크로스나, 단순한 롱볼 축구같은 과감한 변화도 시도해 볼 만했지만, 홍명보호는 정직하고 느린 빌드업만 반복했다. 위험 지역까지 볼을 투입하고도 선수들이 끝내 슛을 쏘지 못하고 다시 뒤로 돌리는 답답한 상황이 수없이 반복됐다.
그나마도 이강인과 황인범이 없으면 빌드업이 눈에 띄게 약화되고, 수비형 미드필더 1순위로 중용하는 박용우는 요르단전 실점처럼 중요한 실수를 반복하고 있어, 전술보다 선수의 개인능력 유무에 경기력이 요동치는 상황이다.
또한 한국이 두 번이나 비긴 팔레스타인전에서는 상대가 라인을 내리고 수비에 치중하는 상황에서도 중앙 미드필더와 풀백들이 공격에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 숫자가 부족한 공격진에 전방에서 밀집수비에 고립되는 장면이 속출했다.
그나마 지난 요르단전 전반에는 황인범의 부상 복귀와 손흥민의 최전방 기용이라는 변화가 통해 초반에 일찍 선제골을 넣고 모처럼 경기를 잘 풀어가는 듯했다. 그런데 요르단이 점차 이에 적응하기 시작하자 후반 들어 다시 경기력이 답답해졌다. 후반에 공중볼에 강한 오세훈이나 발재간이 좋은 양민혁 같은 자원들을 투입했지만, 선수만 바뀌었을 뿐 정작 이들의 장점을 제대로 활용할 만한 전술 패턴은 끝까지 없었다.
이처럼 경기 중에도 포메이션과 전술이 수시로 바뀌는 게 현대축구인데, 아시아 무대에서조차 상황 변화에 대한 유기적인 대응이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 홍명보 축구가 고전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다. 경기 외적으로 선수단 내부에서 홈경기 부진의 책임을 잔디 탓, 심판 판정 탓 같은 외부로 돌리는 발언이 나오는 것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의미 있는 성과라면 이태석이라는 새로운 풀백을 발굴했다는 것, 양민혁·양현준·오현규 등을 꾸준히 기용하며 조금씩 세대교체를 추진하고 있다는 정도가 꼽힌다.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조금씩 노쇠해지고 있는 유럽파 주전들을 대체하기에는 아직 경험이 더 필요한 상황이다. 아직 최전방 공격수의 확실한 대안이 없는 점, 중원에서 황인범과 박용우의 플랜B를 찾아야 한다는 점도 남은 2경기를 대비한 과제다.
홍 감독은 요르단전 경기 후 "3경기 연속 무승부는 감독의 책임이다. 팬들에게 죄송하다"면서도 "밀집 수비를 깨는 방법은 있지만 시간이 걸린다. 경기력은 나아지고 있지만, 마무리가 잘되지 않았다. 홈에서 선수들이 부담을 느끼고 집중할 수 없는 분위기가 있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그래도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줬다"고 의미심장한 총평을 남겼다.
이번 2연전을 통해 팬들의 불신만 더 키운 꼴이 된 홍 감독은 과연 남은 경기에서 여론을 반전시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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