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만 하면 노벨상"…韓 과학자, 암흑물질 '액시온' 찾는 5년 여정 나선다

이병구 기자 2025. 3. 26.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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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우 기초과학연구원(IBS) 암흑물질 액시온 그룹 CI가 26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IBS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발표하고 있다. 한국과학기자협회 제공

발견만 하면 노벨상을 거뜬히 받을 것으로 예상되는 암흑물질 후보 '액시온(Axion)'의 존재를 찾는 국내 유일 연구팀이 올해부터 5년간 연구를 수행한다. 연구 장비는 현재 세계 최고 수준으로 평가된다.

윤성우 기초과학연구원(IBS) 암흑물질 액시온 그룹장(CI, Chief Investigator)은 26일 서울에서 열린 '한국과학기자협회-IBS 과학미디어아카데미'에서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노벨상"이라며 "분위기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1964년 존재가 예측된 힉스(higgs) 입자가 반세기 뒤에 발견돼 노벨상을 안긴 것처럼 1978년 제시된 액시온도 이번 연구단이 마무리되는 2030년쯤 발견될 것이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 액시온 찾으면 물리학 난제 2개 동시 해결

액시온은 현대 물리학이 아직 증명하지 못한 난제인 암흑물질의 존재와 우주의 비대칭성을 동시에 설명할 것으로 기대를 모으는 개념이다.

우주를 설명하는 표준모형에 따르면 우주는 암흑에너지 68.3%, 암흑물질 26.8%, 물질 4.9%로 이뤄졌다. 인류가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부분이 우주의 5%도 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암흑에너지는 빅뱅 이후 우주를 팽창시키는 원동력으로, 암흑물질은 천체의 움직임을 설명하는 개념으로 등장한다.

암흑물질의 존재 가능성은 1930년대 스위스 물리학자인 프리츠 츠비키의 은하 운동 관측에서 처음 제기됐다. 17세기 아이작 뉴턴이 제시한 중력 이론에 따르면 은하가 모인 은하단에서 중심으로부터 먼 은하가 매우 빠르게 움직이면서 튕겨나가야 하는데 관측 결과 은하단 내에 머무른 것이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질량이 있어 중력이 작용하는 암흑물질 개념이 처음 제시됐다.

이후 거대한 중력이 마치 렌즈처럼 작용해 빛이 휘어지도록 하는 중력 렌즈 현상이나 우주의 밀도가 매우 균일하다는 사실도 암흑물질의 존재를 뒷받침했다. 암흑물질의 존재를 가정했을 때만 이론과 실제로 관측되는 현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이후 과학자들은 암흑물질이 존재한다고 가정하고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암흑물질의 후보를 예측하며 탐색하기 시작했다. 윤 CI는 "암흑물질의 특성과 존재량에 따라 우주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암흑물질의 조건은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고, 일반적인 물질과 상호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질량이 존재해 중력이 작용하며 우주 어디에서나 발견되어야 한다.

암흑물질 후보군은 보통 질량에 따라 구분된다. 처음 제시된 암흑물질의 후보군은 1970년 제시된 WIMP다. WIMP에 속하는 입자들은 질량이 원자핵을 이루는 양성자 질량과 비슷하다. 암흑물질의 정체를 크기가 매우 작은 블랙홀이라고 보는 관점도 있다. 암흑물질을 일종의 천체로 보는 시각이다.

암흑물질의 질량이 매우 작다고 가정해 진동하는 파동과 비슷하다고 보는 후보군은 WISP으로 불린다. 액시온도 WISP에 해당한다. 이 외에도 주변 상황에 따라 질량이 달라지는 카멜레온이라는 입자와 암흑 광자 등이 WISP에 포함된다. 최근에는 암흑물질 후보군으로 WIMP보다 WISP에 무게가 실린 상황이다.

액시온은 과학자들이 우주의 비대칭성을 설명하려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대칭성을 지키는 것이 중요한 물리학에서는 처음 우주가 탄생할 때 생겨난 물질의 양과 반물질의 양이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빅뱅 이후 147억년이 흐른 지금 왜 반물질은 거의 다 사라지고 물질만 남았는지 명확히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우주의 대칭성이 깨진 상황을 'CP 문제'라고 부르며 이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 중 하나로 1978년 액시온을 처음 제시했다. 액시온은 미국의 유명 세제 브랜드의 이름을 땄다. 세제처럼 문제를 깨끗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뜻이다. 김진의 경희대 물리학과 교수는 1979년 '보이지 않는 액시온(Invisible ax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하며 액시온이 존재한다면 가질 질량의 범위를 좁혀 제시하기도 했다.

윤 CI는 "액시온은 CP 문제와 암흑물질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존재"라며 "액시온 이론은 과거 힉스 입자가 예측되고 발견된 메커니즘과 거의 유사하다"며 액시온의 존재를 희망적으로 봤다.

● 라디오 주파수 찾듯 액시온 존재 탐색

액시온을 찾는 방법은 라디오 주파수 다이얼을 돌려보며 소리가 나는지 확인하는 과정과 유사하다. 소리가 들리지 않는 주파수 영역은 제외해 나가는 '소거법'이다. 액시온의 질량은 매우 작기 때문에 액시온이 광자(빛의 입자)로 변환됐을 때 이 광자가 갖는 주파수로도 표현할 수 있다.

자석으로 매우 강한 전자기장을 구현하면 전자기장을 지나가는 특정 주파수(질량)를 나타내는 액시온의 존재를 탐색할 수 있다. 실험 조건을 다르게 하면서 액시온이 존재할 수 있는 질량 범위를 줄여 나가는 것이다.

액시온 검출 장비는 고출력 자석과 액시온 검출 시 신호를 증폭시키는 공진기, 데이터 노이즈(잡음)를 줄일 수 있는 냉각 장치와 양자 증폭기로 이뤄진다. 자석이 강할수록, 검출기 부피가 클수록 검출 민감도가 높다. 

자기장 세기 등 실험 조건을 결정해 구현한 뒤에는 검출기 안에 전기가 통하는 도체와 전기가 통하지 않는 절연체를 넣어 전자기장에 조금씩 변화를 준다. 그러면 액시온의 검출 범위를 조금씩 바꿀 수 있다. 특정 주파수 값에 다이얼을 고정한 다음 양옆으로 조금씩 돌려 주파수 영역을 탐색하는 과정인 셈이다.

현재 미국, 유럽, 호주 등 전세계 연구팀이 탐색에 주력하는 액시온의 종류는 이론적 배경에 따라 크게 KSVZ 액시온과 DFSZ 액시온으로 나뉜다. DFSZ 액시온은 이론상 KSVZ 액시온보다 우주를 설명하는 데 더 적합하지만 상호작용이 적어 탐지하기 더 까다롭다.

IBS 연구팀은 앞으로 5년간 약 10기가헤르츠(GHz, 주파수의 단위) 범위에서 액시온의 존재를 탐색한다. 이론상 현재 IBS 장비 스펙으로 KSVZ 액시온은 하루에 100메가헤르츠(MHz, 1000MHz는 1GHz) 범위, DFSZ 액시온 기준으로는 하루 2MHz 범위를 탐색할 수 있다. DFSZ 액시온을 탐색할 수 있는 연구팀은 IBS 연구팀을 포함해 전세계에서 두 곳뿐이다.

IBS 액시온 연구는 2013년 처음 시작돼 2024년까지 10년간 진행됐다. 올해부터 윤 CI가 이끄는 새로운 연구그룹이 액시온 탐색 임무를 이어받는 셈이다. 윤 CI는 "이전 연구단이 종료되면서 예산과 인력 등이 축소됐지만 시스템이 이미 구축됐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5년 동안 넓은 영역에서 액시온을 신속히 탐색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구 기자 2bottle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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