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밭에 차 세우고 50분 버텼다"…'불 회오리' 속 기적의 생존
최종권 2025. 3. 26. 1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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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오리바람 탄 불길 마을 덮쳐”
“마치 토네이도 같았어요. 회오리바람을 타고 온 불길이 순식간에 마을을 휩쓸었습니다.”
26일 경북 청송군 파천면 송강2리에서 만난 이명식(80)씨는 전날 동네를 덮친 산불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송강2리는 진보면 소재지에서 파천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골 마을이다. 이씨와 아내 이태경(75)씨는 산불 확산 당시 마을에서 가장 늦게 대피한 사람이다.

이씨는 “전날 오후 5시 10분쯤 마을 양쪽에 걸친 산이 노을이 진 것처럼 붉게 물들더니 10분쯤 있다가 주택 쪽으로 불길이 번졌다”며 “산불이 집 18채를 다 태우고 다른 산으로 넘어가는데 30분도 안 걸린 것 같다”고 기억했다.
이씨 부부는 자동차를 타고 이날 오후 5시 30분쯤 마을 밖으로 대피하려 했지만, 진입로가 불길에 막히면서 고립됐다고 한다. 이씨는 “마을 앞쪽 진입로로 나가려 했지만 이미 불길이 확산한 상태였고, 뒤편 소로도 불이 번진 상태였다”며 “마침 넓은 밭이 보여서 그곳에 차를 세우고 40~5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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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 것 없는 들판 서 버텨
그는 “탈 것이 없는 들판이 그나마 안전하다고 생각해 움직이지 않고 차를 밭에 세웠다”며 “창문을 닫고 구조를 기다리던 중 진입로 한 곳에 불길이 잦아들어서 차를 타고 대피했다”고 말했다. 이씨 아내는 “불똥이 이리저리 튀고, 연기가 자욱해서 기다리는 내내 불안했었다”며 “조금만 늦었어도 불상사가 생겼을 것”이라고 안도했다.
이 마을에선 미처 대피하지 못한 80대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군은 산불 상황에서 긴급 대피하지 못하고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진보문화예술회관으로 대피한 숨진 여성의 남편은 “아내를 집 밖으로 데리고 나왔으나, 그 순간 불똥이 튀면서 아내 몸에 불이 붙는 바람에 함께 대피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산불 당시 진보면으로 대피 행렬이 몰리면서 마을은 아수라장 같았다고 한다. 주민 김모(79)씨는 “산불이 번질 당시 바람이 워낙 거세서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였다”며 “순식간에 불이 번졌기 때문에 누굴 도울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대피방송을 듣지 마자 아무것도 챙기지 못하고 마을 밖으로 나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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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송군 3명 사망…거동 불편한 노인
전날 산불로 청송군에선 지금까지 3명이 숨지고, 1명이 실종됐다. 진보면 시양2리에서 80대 남성이 숨진 채 발견됐으며, 청송읍 한 도로 외곽에서 60대 여성이 소사한 상태로 행인에게 발견됐다. 시양2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돌아가신 분은 혼자 거주하고 계셨고, 몸이 불편하신지 평소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으셨다”며 “대피방송을 듣고 주민 대부분 마을 밖으로 나갔지만, 숨진 분은 미처 대피하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송=최종권 기자 choi.jongk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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