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진강 갈사만, '제2의 순천만' 돼야 한다

정수근 2025. 3. 26.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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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 갈사만... 산업단지-자연생태 기로에 놓여

[정수근 기자]

 갈사만 전경. 우측에서 섬진강이 흘러들어 남해와 만나고 있다. 그 앞은 대규모 간척지가 조성돼 있다. 저 간척지에 갈사산단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정수근
"경남도는 새 사업자인 주식회사 한국토지신탁과 하동군·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청과 갈사만산업단지 투자협약을 체결했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협약 내용은 한국토지신탁이 1조 6000억원을 투입해 갈사만 산업단지 561만 3000㎡(170만 평)를 명품 산업단지로 개발한다. 경남도·하동군·광양만권 경제자유구역청은 행정적 지원에 노력한다.

갈사만산단은 대규모 조선·해양플랜트 사업을 유치해 경남도와 하동군 경제 활성화를 위해 추진한 사업이다. 2003년 광양만권경제자유구역 하동지구로 지정·고시되면서 시작됐으며, 2012년 공사에 착공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 조선 경기 불황 등으로 2018년 사업시행자가 파산해 현재까지 표류 중이었다. 당시 민자 포함 1조 597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었다.

경남도는 올해 초부터 한국토지신탁 등과 갈사만 산업단지 정상화를 위해 지속해서 논의해 왔으며, 지난 5월 사업권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협약했다. 이후 한국토지신탁은 갈사만산단 사업현장을 점검하고 조선·해양·우주항공·첨단산업 활성화를 위한 투자협약을 맺게 됐다."


지난 2024년 8월 27일자 <경향신문>의 갈사만산업단지에 대한 보도 내용이다. 갈사만산업단지는 2003년 시작돼 2012년 착공했으나 2018년 사업시행자가 파산해 표류하다가 2024년 다시 한국토지신탁이 나서서 갈사만산단 재개를 위한 투자협약을 맺게 됐다는 내용이다.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갈사만에 부는 '개발 바람'

이즈음 다른 매체들 또한 한결같이 갈사만산업단지 조성을 위한 장밋빛 전망만을 담았지 이에 대한 우려를 담은 보도는 없었고, 갈사만산단에 대한 기대를 담은 보도가 주를 이루었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하는 의문에서 이 르포는 시작된다. 이 르포는 지난 21일 다녀온 갈사만 현장 소식과 그곳 현장 활동가와 관련 전문가들의 생생한 증언을 조합한 기록이다.

갈사만은 국내 가장 큰 다섯 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의 하구다. 5대강 하면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 그리고 섬진강을 든다. 그 섬진강의 하구가 갈사만인 것이다. 경남 하동군 금성면 갈사리와 가덕리 일대 들어선 갈사만은 한국학중앙연구원에 따르면 "섬진강 하구와 남해가 만나는 금성만(金城灣)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금성만은 그 일대가 하동군 금성면이어서 붙여진 이름일 터이다.
 섬진강의 하구다. 바로 앞에 보이는 갯벌이 섬진강이 남해와 만나 이룬 갯벌 중 하나인 고포갯벌이다.
ⓒ 정수근
이처럼 갈사만은 우리나라 5대강 중 하나인 섬진강의 하구로, 그 5대강 중에서 한강과 섬진강만 하구가 자연스레 연결돼 있고 낙동강과 금강 그리고 영산강의 하구는 하굿둑으로 막혀 있어서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역이 사라진 '생태적 불모의 공간'으로 변한 지 오래다.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그 기수역이 하굿둑으로 막히자 그 높은 생물다양성은 사라지고 고인 물은 썩는다고 녹조만 번성해 여름이면 대규모 녹조 창궐로 골머리를 안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청산가리 6000배가 넘는 독성을 간직한 '녹조라떼 배양장'이 하굿둑으로 막힌 낙동강과 금강, 영산강의 하구에서 해마다 겪게 되는 비극적 현실인 것이다.

바다와 강이 만나는 기수역은 맨 하구에 대규모 갯벌이 자연스레 조성되면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처로 생물다양성이 아주 높아, 자연 그대로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있어야 하는 곳이지, 막아서는 절대 안 되는 곳이었다.
 이전엔 갯벌이었던 곳을 매립해 만든 거대한 농경지로 이곳에 갈사산단을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 정수근
 갈사만의 일부를 매립해 만든 간척 농경지. 이 농경지에 갈사조선산단을 조성하겠다는 것이 경남도와 하동군의 계획이다.
ⓒ 정수근
바닷물 유입을 막아 인근 농지에 농업용수를 대기 위해 하구를 막았다지만 그 농업 생산성과 하구의 생물다양성은 비교할 수 없는 것으로 이를 맞바꾼 그 선택이 어리석었다는 것이 근자에 와서 속속 밝혀지고 있는 진실의 일단인 것이다. 그래서 하구를 하루빨리 터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고, 낙동강 하구가 현재 부분 개방중인 이유인 것이다.

전남 순천만은 기수역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풍성한 생물다양성을 뽐내면서 이른바 생태관광의 메카로 주목받고 있는 곳이다. 그런데 그 순천동천이 흘러 남해와 만나 이룬 순천만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넓은 면적의 기수역을 가진 갈사만은 지금 다른 길로 가려 하고 있어, 갈사만의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의 깊은 우려를 낳는다.

순천만과 같이 풍부한 생물다양성을 기반으로 하는 생태적 전망이 아닌 갈사만산업단지와 같은 토건경제적 전망으로 이 일대를 첨단산업단지로 개발해서 경제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장밋빛 환상의 전망만이 피어오르고 있을 뿐이란 것이다.

기수역 갈사만, 개발보다 보전 전략이 우선 되어야
 갈사만을 찾은 멸종위기종 큰기러기 한 무리가 갯벌 한 가운데 쉬고 있다. 이처럼 갈사만은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흑두루미, 크기러기, 큰고니 등 다양한 겨울철새가 찾아 머무는 곳이다.
ⓒ 정수근
 갈사만과 접한 남해바다 한가운데서 비오리 가족을 만났다.
ⓒ 정수근
그런데 문제는 이곳이 순천만과 같이 아니 더 의미있는 겨울철새 도래지이고 다양한 생명이 살아가는 생물다양성의 보고로 그들의 오래된 터전이라는 사실이다.

갈사만에는 매년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수천 개체와 큰고니와 큰기러기 수백 개체가 찾아온다. 또 수리부엉이와 물수리, 솔개 등과 같은 다양한 맹금류들의 사냥터이자 삵, 너구리, 수달과 같은 포유류들이 살아가는 중요한 서식처이다.

이 일대를 수년간 모니터링해오고 있는 이명정씨는 "이곳은 흑두루미와 큰고니, 큰기러기 같은 멸종위기에 처한 겨울철새들의 주된 서식처이자 많은 도요물떼새들의 이동통로로서 반드시 보전이 되어야 할 곳이지 산업단지로 개발해야 할 곳이 절대 아니"라고 강변한다.

이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두루미 그리고 도요물떼새 등의 서식 실태와 그 이동루트를 오랫동안 조사연구해온 전문가인 한국물새네트워크의 이기섭 박사의 견해와도 일치한다. 그는 말한다.

"갈사만은 지금은 국내서 더 이상 목격되지 않고 있는 국내 최대 흑기러기의 월동지였고, 지금 포화상태에 빠진 순천만 흑두루미의 분산 수용을 위해서도 반드시 보전이 필요한 것이다. 또한 저어새같이 새만금 등지에서 일본으로 이동하는 겨울철새들의 중간 기착지로서 꼭 필요한 곳이라 이곳이 개발되어 없어진다면 새들에겐 치명적인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이들의 생존 또한 아우르는 갈사만을 위한 정말 바람직한 선택이 필요하다."
 갈사만에 남은 한 야산에 살고 있는 천연기념물이자 멸종위기종인 수리부엉이. 수리부엉이 부부가 번식에 성공해 새끼를 기르고 있었다.
ⓒ 정수근
 갈사만을 찾은 멸종위기종 노랑부리저어새
ⓒ 정수근
따라서 이곳을 개발이 아닌 잘 복원하고 보전해서 순천만과 같은 모델로 만들어 생태관광을 통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공존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인근 순천만이 지금 행정 주도로 멋진 생태관광의 효시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순천만보다 더 넓고, 생물다양성 또한 더 풍부해 보전 가치가 있는 이곳을 그 흔한 산업단지로 만들겠다는 것은 너무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가 함께 참여하고 있는 "생물다양성협약에도 반하는 행위로서 지금이라도 갈사만 개발 계획을 되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2022년 12월, 캐나다에서 열린 UN의 자연환경협약 중 하나인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는 쿤밍-몬트리올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를 발표했는데, 그 프레임워크의 핵심 내용은 2030년까지 보호지역 면적을 30% 확대하는 것이다.

이는 육상과 해양 모두 보호지역 면적을 30% 확대하는 것으로써 2030년까지 이 협약 목표를 이행하기 위해서라도 갈사만과 같은 거대한 자연습지는 반드시 보전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갈사만 일대에 불고 있는 개발 바람은 지금이라도 다시 재고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설픈 개발공약보다는 제대로 된 복원과 보전 전략으로 순천만과 같은 모델을 따라 경제성도 획득하고 생물다양성협약도 이행하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성과를 낼 수 있는 곳이란 지적이다.
 우측의 섬진강이 흘러 남해와 만나면서 갈사만을 이룬 전경이 펼쳐진다.
ⓒ 정수근
이같은 견해에 대해 최지한 하동참여자치연대 대표는 말한다.

"갈사조선산단은 당시 조선업이 호황일 때 계획된 산단이다. 그런데도 당시에 한국중공업과 한국토지공사과 같은 큰기업도 모두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포기했다. 그러나 지금은 조선업이 호황인 시절도 아니라 조선산단이란 말이 무색한 것이 현실이다. 실지로 지난해 8월 한국토지신탁이 우선협상대상자로 협약을 맺었다지만 현재까지 아무런 사업 행위를 하고 있지 못 하다. 공시조차 나온 것이 없을 정도다.

이는 사업의 경제성이 없어서 선뜻 나서기 어렵다는 것으로, 지금이라도 갈사조선산단이라는 잘못된 전망을 버릴 필요가 있다. 그래서 우선 산단을 위해 쌓은 방조제를 터 이전 상태로 되돌려 놓고 갈사만의 미래지향적 전망과 비전을 제대로 수립할 필요가 있다."

갈사만은 천혜의 자연습지... 순천만 모델을 따라야

갈사만의 한 자연 갯벌인 고포갯벌에서 그 가능성을 엿본다. 이곳은 섬진강과 남해가 만나는 첫 지점에 만들어진 갯벌로 칠게와 콩게, 흰발농게 등 다양한 게들의 집단 서식처로서, 이들을 잡아먹기 위해 다양한 새들이 찾고 그 새들을 잡아먹기 위해 또 다양한 맹금류가 찾는 생명 순환의 질서가 서린 세렝게티이자 자연학습의 장이 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곳에 서 보면 봄·가을 혹은 여름,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 다양한 게와 새들을 만나고 천연 갯벌에서 머드팩을 즐기는 자연 갯벌의 체험장으로서 아주 멋진 공간이란 사실을 새삼 실감하게 한다. 대자연의 신비와 아름다움을 체험하는 장으로서 이보다 더 멋진 공간은 없으리라 여겨지는 것이다.
 섬진강리 흘러 남해와 만나 이룬 아름다운 고포갯벌.
ⓒ 정수근
 서산에 해가 기울면서 갈사만을 비추고 있다. '신의 장엄'이 펼쳐지는 현장이다.
ⓒ 정수근
갈사만 곳곳에 탐조대를 둬 다양한 겨울철새들을 탐조하고, 또 거대하게 펼쳐진 농경지에서 먹이활동을 하는 흑두루미와 재두루미 그리고 큰기러기들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대자연의 신비의 감정인 '신의 장엄'을 느끼기에 충분할 것이다.

순천만 모델로 갈 것이냐, 광양만과 같은 산단의 모델로 갈 것이냐, 갈사만은 지금 그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개발보다는 자연생태를 택한 순천시의 모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 순천만은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 명소가 돼 있다.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찾아 큰 관광수익을 내고 있는 것이 자타가 공인하는 현실이다.

강과 바다가 만나는 기수역은 생물다양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곳으로, 이런 곳은 절대 보전지역으로 묶어놓아야 할 곳이다. 생물다양성협약에 따라 확대해야 하는 보호지역의 1순위는 바로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이런 기수역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국내 5대강 중의 하나인 섬진강과 남해가 자연스레 만나는 이런 곳에 거대한 산업단지를 조성하겠다는 것은 1970년대 개발주의가 팽배하던 시대로 역행하는 듯한 인상을 심어주게 된다. 그 개발주의를 극복하고 자연과 생태의 조화로운 공존을 모색하는 21세기에 와 있다. 전 세계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지금 만연한 공포로 다가오는 기후위기를 생각하더라도 그 선택이 어떠해야 하는지는 자명할 것이다.
 고포갯벌에는 칠게와 콩게, 흰방농게 같은 다양한 게들의 살고 있다.
ⓒ 정수근
그렇다면 퇴행하는 개발주의가 아닌 미래지향적 비전 전략에 기반한 생태와 경제를 접목한 순천만의 사례를 따라 나아가는 것이 이곳 갈사만의 보다 진일보한 미래전략이 되어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다.

"순천시 노관규 시장의 시정을 바라보는 시각과 철학이 중요한 것 같다. 노관규 시장은 자연 생태계의 보전이 단순한 개발 억제의 목적이 아니라 이것이 경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순천만에서 보여줬다. 그래서 2023년에 인근 많은 지자체들에게 이미 순천만에서 관광객이 늘고, 국가정원이 만들어지고, 도시 자체가 브랜드화되는 이런 과정들을 공유하겠다 함께가자 제안하기도 했다.

이런 제안이 중요한 것은 결국엔 자연을 보전하는 것은 지역의 행정이 주민들과 주도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순천만의 전봇대를 뽑은 것도 결국 그들이었다. 따라서 시민이 동의하고 행정이 나서줘야 한다. 지역 협력도 많이 필요하다. 흑두루미와 같은 겨울철새들을 위해서는 건강한 서식지가 주변으로 분산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한국에서의 서식지 확대를 위해서 인근 지자체들이 적극 나서줬으면 정말 좋겠다"

순천시에서 오랫동안 순천만 관리를 담당해온 담당자의 말이다. 그의 말대로 겨울철새들을 위한 서식지 확대는 꼭 필요해 보인다. 자연과 인간의 진정한 공존을 위해서도 말이다. (관련 기사 : '흑두루미 떼창'이 만든 장엄한 풍경... 이 장면 자체가 다큐)

흔히들 "자연은 우리 당대에 끝장내는 것이 아닌 우리 미래세대를 위해 물려주어야 할 핵심 자산 중 하나"라고 말한다. 따라서 갈사만과 같은 기수역을 미래세대를 위해 우리가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기성세대로서 해야 할 책임있는 자세가 아닌가 싶다. 경남도와 하동군의 진일보한 미래 비전을 위한 결심을 진실로 기대해보게 되는 이유다.
 순천만을 찾은 흑두루미 무리들. 매년 순천만에서 수천 마리의 흑두루미가 월동하고 있다. 이로 인한 장관을 보기 위해 매년 수백만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이른바 생태관광의 메카가 되고 있다.
ⓒ 정수근
 갈사만의 한 작은 섬이 새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곳이 누구의 영역인지를 웅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 정수근

덧붙이는 글 | 기자는 대구환경운동연합의 활동가로 지난 16년 동안 낙동강을 비롯 우리강의 자연성 회복을 위해 노력해오고 있습니다. 그간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글들을 갈무리해 최근 <강 죽이는 사회>(2024, 흠영)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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