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해 휴전', 발효시점 불투명…'대러 제재약화' 갈등 불씨되나(종합)
'대러 제재' 전선서 美-유럽 균열 가능성…"러에 유리" 비판
(로마·서울=연합뉴스) 신창용 특파원 김연숙 기자 =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25일(현지시간) 미국의 중재로 흑해에서의 휴전과 에너지 인프라 공격 중단에 합의했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이 러시아의 농산물·비료 수출 관련 제재 해제를 돕기로 하면서 또 다른 갈등의 불씨가 될 가능성을 남겼다.
이번 합의는 지난 23일부터 사흘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이 중재한 협상을 통해 이뤄졌다. 흑해에서의 휴전과 에너지 시설에 대한 30일간의 상호 공격 중단이 골자다.
특히 양국은 흑해에서 무력 사용을 배제하고, 안전한 항해를 보장하며, 상선을 군사적인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다만 합의 발효 시점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그것이 작동할지에 대해 말하는 것은 너무 이르다"고 말했다. 루스템 우메로우 우크라이나 국방장관은 "가능한 빨리 추가적인 기술적 협의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러시아도 농산물·비료 수출 제재 해제가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22년 2월 전쟁이 발발한 이래 서방은 러시아의 농산물 자체를 제재하지 않았지만 결제시스템 차단 등 금융 제재를 통해 실질적인 거래를 어렵게 만들었다. 이에 러시아는 흑해 휴전 발효 조건으로 농업 관련 금융 제재 해제를 요구했고, 미국이 이에 협력하기로 하면서 합의가 성사됐다.
미국 백악관은 합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백악관은 성명에서 "러시아의 농업(농산물) 및 비료 수출을 위한 세계 시장 접근을 복원하고, 해상 보험 비용을 낮추며, 이러한 거래를 위한 항구 및 결제 시스템에 대한 접근성을 강화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는 특히 러시아에 대한 제재를 상당부분 거두기로 했다는 점에서 주목을 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우크라이나전 발발 이후 러시아에 대한 첫 주요 제재 철회라고 평가했다. 이는 러시아가 휴전을 위해 위해 우크라이나에 정치·군사적 양보와 함께 국제사회로부터의 고립 탈출이라는 두 가지 대가를 요구할 것임을 보여준다고 풀이했다.
싱크탱크 독일 국제안보연구소(SWP)의 러시아 경제 전문가 야니스 클루게 박사는 엑스(X·옛 트위터)에 "'러시아의 거래 기술'은 러시아의 요구를 미국에 대한 러시아의 양보로 팔아먹은 다음, 그 위에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적었다.
그는 "여기서 요구하는 것은 우크라이나는 더이상 러시아 전함을 공격해선 안되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상선을 검사할 수 있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NYT는 농업 부문에서의 러시아 수출 제재 해제는 유럽연합(EU)의 승인이 필요할 것이라면서 현 상황에서는 EU가 승인할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NYT는 또 부분 휴전안은 3년 이상 지속된 우크라이나전에서 돌파구일 수 있지만 러시아로부터 주요 양보는 끌어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에너지 시설과 흑해에서의 공격 중단은 러시아가 추구해왔던 2가지 목표이며 러시아에 이로운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유럽에서는 반발 기류가 감지된다. 미국의 도움으로 러시아의 농산물·비료 수출이 원활해지면 서방의 대러시아 제재 효과가 사실상 약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번 합의가 국영 농업은행(로셀호스)과 국제 결제시스템인 국제은행간통신협회(SWIFT) 간 연결 복원 등 제재 완화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조치들이 이행되려면 유럽의 동의가 필요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뿐만 아니라 유럽 국가들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신속한 종전이라는 목표를 위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성급하게 거래해 안보를 훼손하고 러시아의 요구에 굴복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무역 문제와 우크라이나 전쟁 접근 방식을 놓고 미국과 대서양 동맹인 유럽이 정면으로 대립하는 상황에서 이번 결정은 추가적인 균열을 초래할 수 있다.
결국 이번 합의는 여전히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외교의 심각한 재편을 보여주는 것으로, 러시아 견제에 있어 유럽을 더욱 고립시켰다는 평가가 나온다.
젤렌스키 대통령도 미국이 러시아 농산물 수출에 어떻게 협력할지에 관한 세부 사항을 아직 잘 알지 못한다면서도 "우리는 이것이 제재의 약화라고 생각한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이번 합의로 흑해에서 긴장 완화가 기대되지만 실효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러시아가 이번 합의를 지렛대로 삼아 추가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 우크라이나의 반응도 변수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러시아가 합의를 어기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무기와 제재를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기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애초 대러시아 제재는 의제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주장, 협상 과정에 의문도 제기된다.
그는 "이건 회의 전 의제에 없었다"며 "우리가 아는 한 러시아는 농산물 운송에 관한 미국의 지원에 문제를 제기했다…우리는 그것이 공동(성명)에 포함되도록 동의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가디언은 백악관이 제재 완화 계획을 숨겼거나, 미 협상가들 역시 러시아의 요구에 놀랐을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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