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열연·말맛 굿샷…'로비', 제대로 농익은 하정우 웃음 DNA [봤어영]

김보영 2025. 3. 25. 1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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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정우 세 번째 연출작…접대 골프 소재 눈길
번뜩이는 말맛·환장의 티키타카…매콤한 현실풍자까지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롤러코스터’ DNA의 바람직한 계승, 제대로 농익고, 한층 더 발칙해졌다. 웃음 타율 굿샷, 티키타카 나이스 온! 관객 마음까지 ‘로비’할 하정우표 발칙발랄 말맛 코미디. 영화 ‘로비’(감독 하정우)다.

‘로비’는 연구밖에 모르던 스타트업 대표 창욱(하정우 분)이 4조 원의 국책사업을 따내기 위해 인생 첫 로비 골프를 시작하는 이야기를 그린 소동극이다. 배우이자 감독인 하정우가 ‘롤러코스터’(2013), ‘허삼관’(2015)에 이어 무려 10년 만에 선보이는 세 번째 연출작이다.

‘로비’는 개봉 당시 큰 상업적 흥행을 거두진 못했지만, 탄탄한 팬덤을 낳으며 입소문을 탔던 하정우의 연출 데뷔작 ‘롤러코스터’를 닮아있는 작품이다. ‘롤러코스터’는 비행기란 폐쇄된 공간 안에서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빚어내는 티키타카 소동극으로 독특한 웃음 코드를 선사했단 평을 받았다. ‘로비’ 역시 어딘가 은은히 돌아있는 캐릭터들, 뜬금없이 웃음을 자아내는 찰진 대사로 웃음과 긴장을 유발하는 소동극의 느낌을 준다. 다만 소동이 벌어지는 공간이 비행기에서 ‘골프장’으로 탈바꿈했다. 비행기, 골프장 모두 현실의 일상과 친숙한 공간들이란 공통점이 있다. 다만 ‘로비’는 스포츠이지만 교류와 친목을 쌓기 위한 사회생활의 수단으로도 애용되는 ‘골프’만의 독특한 문화를 매력적인 소재로 풀어냈다. 알 만한 사람은 알지만, 모르는 사람은 전혀 알지 못하는 ‘골프장’의 공간적 특성을 살리고 거액이 오가는 국책사업의 향방이 결정된 은밀한 ‘거래’의 장으로 내세워 흥미를 끈다.

하나같이 돌아있고 이상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현실에 존재할 법한 개성 만점 캐릭터들, 유머스럽지만 뼈를 때려 매콤한 대사의 말맛. ‘롤러코스터’ 때 드러난 하정우 감독의 역량이 ‘로비’에서도 톡톡히 강점이 돼 존재감을 떨친다.

쉴틈 없이 받아치는 리액션과 티키타카로 혼을 쏙 빼더니, 의외의 지점에서 맥을 빼 어이없는 웃음을 터뜨리는 캐릭터 간 핑퐁 케미스트리가 통통 튀는 재미를 선사한다.

시종일관 유쾌한 듯 환장스러운 상황들의 연속이다. 하지만 그 안에 스며든 날카로운 현실 반영과 풍자의 터치가 상당히 맵고 신랄하다. 소란스러운 코미디극이지만, 을 중의 을의 위치에 처한 주인공 ‘창욱’의 관점에서 영화를 따라가다 보면 고군분투와 페이소스(비애)를 녹여낸 부조리극의 느낌이 난다.

노력과 실력으로 독보적 기술을 개발했지만 자신을 배신한 라이벌 회사 대표 광호(박병은 분)의 현란한 로비력에 번번이 고배를 마시는 ‘창욱’의 상황부터 억울하고 짠하다. 무능력한데 욕망만 있는 조장관(강말금 분)이 회의에서 “‘입찰 공고’는 무시한 채 ‘법적 문제’가 특별히 없으니 편하게 수의 계약으로 국책사업을 진행하자”고 공개 제안하는 어이없는 상황도 씁쓸한 뒷맛을 남긴다.

영화는 우직한 인내, 연구를 향한 열정 외에 눈치도 없고 사회성도 떨어지는 창욱이 서서히 조여오는 광호(박병은 분)의 압박에 대항하고자 팔자에 없던 돈을 쓰고 골프까지 배워 최실장(김의 성 분), 박기자(이동휘 분), 진프로(강해림 분) ‘신입 로비팀’을 결성하는 과정을 빠른 템포로 전개한다. 그 과정이 1막, 우연히 한날 한시 같은 골프장에서 같은 국책사업을 걸고 접대 골프를 펼치게 된 창욱의 신입 로비팀과 광호의 베테랑 로비 팀, 각자의 카트에서 벌어지는 대환장 소동을 교차해 보여주는 중반부가 2막, 흐려지는 날씨와 함께 파국으로 치달은 창욱과 최실장, 광호와 조장관이 마침내 한 공간에서 4자 대면을 하는 순간이 클라이맥스이자 3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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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인물이 등장해 톡톡히 제몫을 해냈지만, 주인공 창욱만큼 강렬한 존재감을 뽐내는 캐릭터를 꼽자면 김의성이 맡은 ‘최실장’과 신인 강해림이 연기한 ‘진프로’다. 최실장은 오랜 기간 기술업계에 몸담으며 쌓은 구력, 전문지식을 바탕으로 뛰어난 행정력과 권력을 겸비한 정치 관료다. 타인을 믿지 않는 냉담함, 철두철미한 성격인 ‘최실장’에겐 ‘진프로’란 유일하면서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최실장이 진프로의 영상을 빠짐없이 챙겨본 열혈 팬이기 때문. 반면 진프로는 뛰어난 미모와 실력으로 한때 전성기를 보냈지만 드라이버 입스가 찾아와 현재 슬럼프에 빠져 있다. 자신을 보호하고 관리해온 아버지의 그늘에 가려 자신의 손으로 뭔가를 결정해 본 적 없던 진프로는 처음 스스로 창욱의 스폰서십 계약 제안을 받아들인다. 그렇게 최실장과 박기자(이동휘 분)를 만나 ‘접대골프’의 현실을 맞닥뜨리며 느낀 진프로의 좌절과 모멸감이 연민과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속 터지는 진프로와 달리 꿈에 그린 뮤즈를 만나 마냥 행복하기만 한 최실장의 끈적한 눈빛, 집요한 플러팅은 웃음 포인트이자 동시에 비호감 포인트로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이밖에 박병은, 강말금, 차주영, 최시원, 곽선영, 박해수, 현봉식 등 모든 배우들이 기존에 연기했던 캐릭터들과 다른 에너지, 과감히 망가진 모습들로 극을 더 풍성히 빼곡히 채운다.

다만 ‘골프’란 소재가 매력적인 장점이지만 동시에 거리감을 주는 장벽으로 작용한다는 한계 가 엿보인다. 평소 골프를 알고 자주 즐기는 관객들에게 공감을 주는 웃음 포인트들이 실제 골프를 잘 알지 못하는 관객들이 이 영화를 봤을 때 다소 와닿지 않는 생소한 용어, 상황들로 다가온다. 주인공 창욱이 극 중 골프 문외한임에도 불구하고 대사의 템포 자체가 빠른 탓에 골프 전문 용어, 은어 등의 친절한 설명이 부족했다는 느낌을 준다.

러닝타임 106분. 4월 2일 개봉.

김보영 (kby5848@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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