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글쓰기] 내향인이지만 그룹 필라테스가 좋은 이유

정슬기 2025. 3. 25.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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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만 주시하는 건 부담스럽고 함께 하니 동지애 생겨... 같이 힘든 게 오히려 위로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정슬기 기자]

요즘은 길을 걷다 문득 귓전을 맴도는 음성에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곤 한다.

"정수리는 하늘까지 쭉 뽑아내고 엉덩이에 힘주기!!
어깨는 내리고 배꼽은 쏙 납작하게!!"

위 구호는 내가 일주일에 두세 번 다니는 필라테스 선생님의 단골멘트다. 운동이라곤 걷거나 뛰기가 전부였던 내게 요즘은 필라테스라는 신세계가 생겼다. 모든 존재가 그렇듯 필라테스를 깊이 알기 전까지 나는 길가에 대문짝만 한 필라테스 간판이 넘실대고 현관문 앞에 붙은 전단지를 봐도 아무런 감흥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전단지 속 탄탄한 그녀들의 모습에 이상하게 가슴이 설렌다. 나도 언젠가 저러한 자태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시작은 오십견이었다. 어느 날 아이 팔베개를 해주다 어깨가 뿌지직 하는 느낌을 받았고 병원에서 회전근개 파열(오십견)이란 진단을 내렸다. 아, 오십도 안 됐는데 벌써 오십견이라니...

내 어깨는 물리치료나 주사에 큰 차도를 보이지 않았고 선생님은 평소 바른 자세나 근력 운동이 뒷받침되어야 한다고 하셨다. 나는 헬스장보다 조금 더 만만해(?) 보이는 필라테스 학원의 문을 두드렸다.

'띵' 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전단지에서 봤던 우아한(?) 운동기구들이 눈에 띄었다. 전투적인 분위기의 헬스장과는 달리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내 마음을 말랑하게 했다. 그 운동기구 위에서 날갯짓 하듯 우아한 자태로 운동하는 회원들의 모습에 나는 홀리듯 입문권을 끊었다. 몇 차례의 1 : 1 수업 후 그룹 레슨으로 넘어가는 과정이었다.

1:1 레슨의 첫날, 내 몸을 스캔하는 시간이 있었다. 어깨는 굽고 골반은 틀어지고 총체적 난국이라던 내 몸이 딱 붙는 레깅스와 쫄티에 더 도드라져 보였다. 본격적인 운동이 시작되었고 선생님은 날 기구에 올렸다 메쳤다 '솔' 톤의 까랑까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회원니임!! 벌써 이렇게 힘들어하시면 안 돼요. 골반은 굴리고 갈비뼈 닫으세요. 다리를 더 드세요!!"

이게 다 무슨 소리지? 하나가 되면 하나가 틀어져 선생님 손이 분주히 내 몸을 왔다 갔다 했다. 선생님의 열정적인 가르침에도 갈 곳 잃은 내 몸은 여전히 뚝딱거렸다. 목각 인형이 되어 계속 어딘가에 헛발질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쯤 영원 같던 50분의 시간이 끝났다. 아, 내 몸을 내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게 이런 거구나.

휘몰아치듯 진행된 6회의 개인 레슨 동안 나는 필라테스의 매력을 크게 느끼지 못했다. 처음 배우는 운동이니 더 그랬겠지만 선생님의 말이 외계어처럼 들리고 가끔 숨이 막힐 듯 힘들다가 참을 만한 정도로 끝이 났다. 열심히 운동하고 땀 흘린 후의 상쾌함 같은 건 느낄 겨를이 없었다. 내향인이서 그랬을까? 선생님이 나만 주시하고 있으니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즈음 개인 레슨권이 모두 소진되어 자연스럽게 그룹레슨으로 넘어갔다. 그룹 레슨 장소에 도착하자 통창으로 둘러싸인 널찍한 방 안에 가지런히 놓인 캐포머(기구 필라테스의 하나인 리포머와 캐딜락을 결합한 형태로 스프링 저항과 철봉을 이용해 근력 강화와 자세 교정에 도움을 주기 위한 기구)들이 눈길을 끌었다.
▲ 캐포머룸 스프링 저항과 철봉을 이용해 근력강화에 도움을 주는 필라테스 기구를 활용한 캐포머 룸
ⓒ 정슬기
첫 그룹 수업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룹 수업이라지만 수강자가 8명 이내여서 집중도가 높았고 선생님의 차분하고 찬찬한 수업 방식이 나와 잘 맞았다. 아마 그동안의 경험치가 쌓여 도움이 됐겠지만 개인레슨 때는 어디로 가는 줄도 모르고 정신없이 전력 질주하는 것 같았다면, 그룹 수업은 열심히 달리다가 중간중간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며 힘을 내 다시 달리는 기분이었달까.

역시 모든 일에는 궁합이 중요했다. 그룹 레슨 후 필라테스 가는 날이 기다려졌으니까. 그렇다고 그룹 레슨이 결코 덜 힘든 건 아니었다. 동작 하나하나마다 숨이 차고 다리가 후들거리며 살짝 밀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순간들이 반복되었다. 한 동작을 할 때마다 선생님은 열까지 세며 버티기를 주문했고, 나는 내 나름의 주문을 외우며 버텼다.

이걸 버텨내야 다시 병원에 가는 일이 없는 거야, 이걸 버텨내면 혈액 수치가 좋아지는 거야(2년 전 나는 수술을 받은 적 있다). 한편으로는 내 옆에서 같이 헉헉 대는 회원들의 거친 숨소리를 들으며 동지애를 느꼈다. 동작을 유지하기 위해 오만상을 찌푸리다가도 나와 비슷한 순간 한숨과 탄식을 내뱉는 그들의 숨소리에 묘하게 위로를 받았다.

그렇게 작년 가을쯤 시작한 필라테스는 겨우내 내 일상의 활력소가 되었다. 쌀쌀한 아침, 조금 더 누워 있고 싶다는 마음을 억누르고 일단 필라테스를 하고 나면 내 굽은 어깨와 허리가 조금은 꼿꼿해지는 것 같다. 흐물흐물했던 내 엉덩이가 조금은 올라 붙는 것도 같고. 화석처럼 깊숙이 감춰진 내 엉덩이 근육은 남편도, 엄마도 절대 모르는 오로지 나 혼자만 느낄 수 있는 거지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는 효능감이 나를 기분 좋게 만든다.

선생님의 주문 대로 "골반을 펴내고 배 집어넣고 엉덩이에 힘주고!!" 걷다 보면 내 앞에 닥친 그 어떤 어려운 일도 술술 풀릴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 어떤 어려운 동작도 버티다 보면 끝이 나는 것처럼 내 인생의 어떤 순간도 곧 지나갈 것이라는 희망도 품게 된다.

부들부들 떨리는 내 몸 곳곳과 수시로 터져 나오는 탄식, 초점 잃은 동공이 제 궤도로 돌아오면 비로소 평온한 마음과 긍정적인 기운이 솟아오른다. 고질적인 어깨통증이 줄어든 것은 물론이다. 물론 아직 내 몸은 전단지 속 그녀와는 딴판이지만 마음만큼은 조금 더 우아해진 것 같다.

가끔 일상의 부침에 승냥이처럼 포효하고 싶은 순간이 오면 필라테스 호흡법을 소환해 낸다. 갈비뼈를 풀어헤치며 깊이깊이 코로 들이마시고 다시 갈비뼈를 꽉 조이며 깊이깊이 입으로 내쉬어 본다. 후우~~~ 소리를 내면서. 그럼 내 마음도 조금은 편안해진다.

《 group 》 4050글쓰기 : https://omn.kr/group/4050_writer
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sns에도 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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