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 푹 빠졌다…‘아동용’ 꼬리표 뗀 K애니메이션

최혜리 2025. 3. 25.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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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 소설 원작의 애니 ‘퇴마록’. [사진 로커스 스튜디오]

거대 악(惡)에 맞서 싸우는 판타지 액션물, ‘퇴마록’이 개봉 1달간 누적 관객수 46만 명(22일 기준)을 달성했다. 다음 달 4일엔 로봇이 된 인간이 등장하는 슈퍼 히어로물 ‘미스터 로봇’이 개봉한다. 실사영화가 아니다. 올해 초 개봉했거나 개봉을 앞둔 ‘국산’ 애니메이션들이다.

2020년대 개봉작 중 유일하게 관객 수 100만명을 넘긴 ‘사랑의 하츄핑’(2024)을 포함해 지난 15년간 전국 관객 수 1만 이상을 기록한 한국 애니메이션은 모두 ‘어린이 타깃’이었다. 그러나 최근 12세 이상 관람가인 ‘성인 타깃’ 작품들이 연이어 제작돼 극장에 걸리고 있다. 한국 애니메이션계에 새로운 풍경이다.

근미래 배경의 액션물 ‘미스터 로봇’. [사진 NEW]

지난달 21일 개봉한 ‘퇴마록’은 이우혁 작가가 1993년부터 2001년까지 인터넷에서 연재한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오컬트물이다. 이대희 감독의 ‘미스터 로봇’은 어느 날 로봇이 되어버린 남자와 가족을 잃은 소녀가 의지해나가는 이야기. 두 작품 모두 기획 단계부터 성인을 타깃으로 했다. ‘퇴마록’의 로커스 스튜디오 관계자는 “이번 작품을 통해 한국에서도 성인 타깃 애니메이션이 가능성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밝혔다.

OTT도 가세했다. 넷플은 올해 오리지널 영화로 첫 한국 애니메이션 ‘이 별에 필요한’을 공개할 예정이다. ‘이 별에 필요한’은 우주인 난영과 뮤지션 제이라는, 세상에서 가장 먼 거리의 ‘롱디 커플’ 이야기를 그린다.

‘사랑의 하츄핑’ 광고. [뉴스 1]

이런 변화는 애니메이션 업계 ‘다양화 전략’의 결과로 해석된다. 한국 애니메이션 산업은 2003년 애니 ‘뽀로로’의 흥행에 힘입어 ‘어린이 타깃’ 위주로 성장해 왔다. 2000년대 애니메이션 투자 및 제작 열풍이 일기도 했으나, 한국 영화 흥행 등으로 입지가 줄었다. 성인들 사이에선 일본·미국 애니메이션이 흥행하며 설 곳이 더 좁아졌다. 타깃을 확대할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온 이유다.

지원 사업 변화도 영향을 미쳤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은 지난해부터 12세 이상 연령이 타깃인 ‘청장년층용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을 신설했다. 원작 IP를 활용하는 경우도 늘었다. ‘퇴마록’ 또한 2022년 시작된 ‘IP 활용 애니메이션 제작 지원사업’의 지원금을 받았다. IP 활용은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작품 성공 확률은 높일 수 있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그럼에도 여전히 성인용 애니메이션 제작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2D와 3D를 결합한 새로운 비주얼 문법을 시도하는 추세에 따라 제작 비용이 많게는 100억원대까지 늘어났지만 정부의 제작지원 규모는 5억~7억원대에 그친다. 완성돼 흥행까지 이어진 작품의 수가 적다 보니, 투자 유치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 극장 전체 매출의 20%가량을 애니메이션이 차지할 정도로 수요가 있는 상황에서 완성작을 늘려 성공 가능성을 높여나가면 승산이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세종대 만화애니메이션과 한창완 교수는 “민·관이 동일한 문제의식을 갖고 다른 나라에 없는 한국 애니메이션 만의 영역를 개척하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전했다.

최혜리 기자 choi.hyer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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