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탱하는 시민, 전횡하는 엘리트

이재훈 기자 2025. 3. 24.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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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는 기어코 30m 높이 시시티브이(CCTV) 관제탑에 올랐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헌정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건 법조와 관료 엘리트들이다.

기꺼이 저항의 매개나 파편이 되겠다는 시민의 의지를 배반하는 법조와 관료 엘리트들의 전횡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2025년의 광장을 '윤석열 파면'으로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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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리재에서]

서울 중구 한화 본사 옆 30m 높이 시시티브이 관제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형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왼쪽)과 광화문 앞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에 참석한 유하영씨. 한겨레 김영원 기자·‘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제공

김형수는 기어코 30m 높이 시시티브이(CCTV) 관제탑에 올랐다. 관제탑에 앉아 다리를 펴면 종아리 아래가 공중에 뜬다. 조선업 하청노조 지회장인 김형수는 “불황이 오면 희생을 강요하고 수천억 흑자를 내면 떡고물 조금 던져주는” 원청 한화오션(옛 대우조선해양)에 원·하청 이중구조 개선과 임금격차 해소를 요구하기 위해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많은 사람이 때리면 맞고 무릎 꿇으라면 꿇으며 살아왔을 것이다. 그래도 누군가는 왜 때리냐고 이야기했고, 맞서 싸웠고, 왜 무릎 꿇어야 하는지 물었고, 끝까지 버텼다. 그랬기에 지금 우리가 맞지 않아도 되는 세상, 무릎 꿇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 일을 하고 있다.”(이번호 기승전21)

유하영은 내란죄 피고인 윤석열 파면을 촉구하기 위해 거의 매일 광장에 나온다. 12·3 내란 당일 국회로 달려갔고, 윤석열이 체포를 거부하고 버틸 때 ‘키세스 시위대’에 참여했다. 그는 이제까지 자신이 누려온 “당연한 권리들이 사실 굉장히 당연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광장에 나왔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나간다고 뭐가 바뀌냐고 묻는 이들이 있다. 솔직히 바뀔지 안 바뀔지는 모른다. 저는 그냥 거대한 역사 속에 글자 하나 쓰는 거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것이 모여서 문장이 되고, 문단이 되고, 글이 되고, 책이 된다면, 저는 제가 한 페이지가 될 수 있었음에 감사할 것이다.”(이번호 표지이야기)

김형수의 말에는 기꺼이 세대를 잇는 저항의 매개가 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고, 유하영의 말에서는 기꺼이 당대의 저항에 보이지 않는 파편이 되겠다는 뜻이 읽힌다. 이들의 말은 미처 기록되지 못한 수많은 시민의 저항 의지가 역사와 시대를 거슬러 우리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탱하고 있다는 사실을 엄중히 보여준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존엄과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헌정 체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는 건 법조와 관료 엘리트들이다. 검찰과 법원 엘리트들이 윤석열 구속 취소 과정에서 보여준, 권력자와 가진 자를 위해서만 작동하는 인권 수호 의지는 ‘법 앞의 평등’이란 말이 얼마나 공허한 수사인지 알려줬다. 게다가 윤석열 탄핵심판 선고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온 국민 앞에 생중계된 내란이라는 단순명쾌한 사안도 다수의 법비를 동원해 어떻게든 뻗대면 법리 싸움이 지리멸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줬다.

한덕수 총리와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연합뉴스

더욱 큰 문제는 윤석열의 권한을 대행하며 대통령이라도 된 것처럼 권력을 행사하고 있는 관료 엘리트 한덕수와 최상목이다. 100일 동안의 권한대행 체제에서 두 사람이 행사한 거부권은 15건이나 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5년 동안 대통령 7명이 행사한 거부권 개수(16건)에 육박한다. 권한대행은 대통령과 달리 민주적 절차를 거쳐 선출된 권력이 아니지만, ‘시험 능력주의’의 확신에 갇힌 이들에게 민주적 절차는 권력의 정당성에 아무런 조건이 되지 못한다.

기꺼이 저항의 매개나 파편이 되겠다는 시민의 의지를 배반하는 법조와 관료 엘리트들의 전횡은 역설적으로 우리가 2025년의 광장을 ‘윤석열 파면’으로 닫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파면 이후, 체제전환과 사회 대개혁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재훈 편집장 nang@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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