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위법성’ 판단 안 한 헌재…尹 탄핵선고 ‘힌트’ 없는 게 ‘힌트’
여야의 정치적 입장 따라 해석도 각양각색…해석전쟁 후폭풍 이어질까
“尹 파면 후 조기대선 관리하라는 뜻” vs “이재명 세력에 헌법의 철퇴”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헌법재판소가 한덕수 국무총리의 탄핵소추를 기각하면서 한 총리가 즉시 업무에 복귀했다. 헌재는 한 총리가 12·3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았으므로 파면 사유가 되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비상계엄의 위법성에 대한 판단을 내놓지 않았다. 그럼에도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내용을 엿볼 수 있는 몇 가지 힌트가 보인다는 전문가들의 해석이 나온다.
헌재는 한 총리가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에 공모하거나 묵인·방조했으므로 파면돼야 한다는 국회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비상계엄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비롯해 수사기록 증거 채택, '내란죄 철회' 논란 등 쟁점에 관한 판단은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밝힐 것으로 보인다.
이날 기각 의견을 낸 5인과 유일하게 인용 의견을 낸 정계선 재판관까지 총 6인은 비상계엄 위법성에 대한 판단에서 "피청구인(한 총리)이 비상계엄 선포의 절차적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국무회의 소집을 건의하는 등 적극적 행위를 했음을 인정할만한 증거나 객관적 자료는 찾을 수 없다"고만 적시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적법했는지, 선포 전 국무회의가 실체를 갖춘 적법한 회의였는지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한 총리 사건의 경우 비상계엄 적법성이 쟁점이 된 탄핵소추 사유는 5개 중 1개에 불과하고, 한 총리가 계엄 선포에 관여하지 않은 이상 이번 사건에서 계엄의 적법성을 정면으로 다룰 필요는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선고와 관련해 힌트를 안 주기 위해 무미건조하게 사실관계만 적시한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있다.
탄핵을 소추한 국회 측은 한 총리 탄핵 기각 결정 안에 비상계엄의 주무자는 명백히 헌법을 위반했다는 메시지가 있다고 해석했다. 국회 측 황희석 변호사는 "헌재가 한 총리의 헌법재판관 미임명은 헌법·법률 위반이라면서도 전체적으로는 (파면까지는) 모자란다고 판단한 것 같다"며 "그럼에도 한 총리가 국정 운영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메시지는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황 변호사는 이어 "(한 총리에 대해) 비상계엄의 실질적 실행에 관여했단 구체적 증거가 없어서 헌법·법률을 위배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는데, 거꾸로 비상계엄을 적극 실행한 주무자는 꼼짝없이 헌법을 위배한 것이고 비상계엄 자체의 영향을 고려하면 이게 얼마나 중대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내부적으로 판단이 섰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한 총리 기각 결정문에 미뤄볼 때 헌재 심판의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은 윤 대통령 측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날 MBC인터뷰에서 "윤 대통령 탄핵 사건과 한 총리 탄핵 사건에서 피청구인이 주장한 절차적 문제가 겹친다. 수사기록을 헌재 증거로 삼을 수 있느냐와 내란죄 철회 문제다. 그러나 한 총리 심판에서 이런 절차적 하자를 문제 삼지 않았기 때문에 윤 대통령 심판에서도 같은 판단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보다 한 총리의 탄핵 심판 결정을 미리 선고한 자체만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과를 예상할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임 교수는 "윤 대통령의 파면 결정을 할 경우 대통령 권한대행은 조기 대선을 준비하고 관리하는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게 된다"며 "헌재가 미리 한 총리의 탄핵 기각 결정을 통해 한 총리를 복귀시킴으로서 윤 대통령 파면 결정 이후에 체제를 안정적으로 이끌길 원하는 의도에서 한 총리 기각 결정을 먼저 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임 교수는 "헌재가 사회 분위기가 과열된 것이 식을 때를 기다린 것 같은데, 가라앉지 않고 더 과열돼가고 있다"며 "이번 주 내로는 결정이 나오리라 본다"고 전망했다.
여권은 윤 대통령 탄핵 기각에 더 기대를 싣는 분위기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기각은 더불어탄핵당의 '9전 9패', 그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이재명 세력의 입법권력을 동원한 내란음모에 헌법의 철퇴가 가해진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실도 이날 공지를 통해 "기각을 환영하며, 더불어민주당의 탄핵 남발이 악의적 정치 공세라는 점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계엄 사태와 관련해 형사 재판, 탄핵소추 등에 넘겨진 고위 공직자 중 사법기관으로부터 본안 판단을 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국회는 지난해 12월14일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 소추안을 가결한 뒤, 대통령 권한대행직을 수행하던 한 총리도 12월27일 탄핵심판에 넘겼다. 헌재는 두 차례 변론준비, 한 차례 변론을 거쳐 탄핵 소추로부터 87일 만인 이날 심판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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