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억 피해 낳은 전세사기, 납득 안 되는 반토막 감형
[김태근]
부족한 주택 사업자금을 '신탁계약'을 이용한 대출로 메운 임대인, 그는 주택의 소유권을 부동산신탁회사에 넘겼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마치 소유자인 양 거짓으로 임대차계약을 체결했고, 임차인들의 보증금을 신탁회사에 지급하고 채무를 상환하는 용도로 유용했습니다. 피해만 무려 15억 원. 하지만 '신탁주택 전세사기'에 5년 형을 선고한 1심과 달리, 2심 재판부는 반토막의 형을 선고했습니다. 피해금액 회수가 불투명한 상태에서도 "피해가 대부분 회복될 것"이라며 감형한 항소심 판결, 그 부당함을 김태근 변호사가 비평했습니다.
1심 : 대구지방법원 박성인 판사 2024. 7. 23. 선고 2024고단534
2심 : 대구지방법원 제2-2형사부 손대식(재판장), 남근욱, 김정도 판사 2025. 2. 7. 선고 2024노2958 판결
주택 소유권도 없이 피해자 기망, 15억 챙긴 전세사기범
피고인(임대인)은 이 사건 공동주택의 공사비 등 사업자금이 확보되지 않자, 2017년 6월경 금융기관으로부터 대출금 29억 3000만 원을 빌리면서, 부동산신탁회사와 사이에 자신을 위탁자로, 부동산신탁회사를 수탁자로, 금융기관을 우선수익자로 하는 부동산담보신탁계약을 체결하고, 부동산신탁회사에 신탁계약을 원인으로 하여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하였다.
결국 관련 법령 및 위 신탁계약에 따라, 사건 공동주택 20세대의 소유권은 부동산신탁회사에 이전되었으므로, 수탁자인 부동산신탁회사가 이 부동산의 소유자이자 임대인으로서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여야 하고, 위탁자에 불과한 피고인은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려면 우선수익자인 금융기관의 양해에 따라 부동산신탁회사의 사전승인을 받아야 하며, 피고인이 적법하게 임대차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금융기관과의 협의가 없는 한 임대차보증금은 부동산신탁회사에게 이전하여야 한다. 금융기관은 신탁계약의 체결로 채권회수가 보장됨에 따라 이 사건 공동주택에 관하여 근저당권설정등기 등 별도의 담보물권을 설정하지 않게 되었다.
그럼에도 피고인은 등기부등본상으로는 담보물권의 제한이 없는 임대차목적물에 관하여 자신이 적법하게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수 있는 것처럼 행세하였다.
그러나 사실 피고인은 피해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할 때 이 사건 공동주택의 소유자가 아니었고, 임대차계약에 관하여 금융기관의 양해, 부동산신탁회사의 사전승인은 물론 각 회사와 임대차계약체결 여부에 관하여 협의조차 하지 아니한 상태였으며, 정기적으로 발생하는 소득이나 현금화 가능한 적극 재산이 부족하여 수시로 세금을 체납하고 있는 등의 사정으로 임대차계약에 따른 임대차보증금을 부동산신탁회사에 지급하거나 금융기관에 대한 채무상환에 사용하는 방법으로 부동산신탁회사 등으로부터 임대차계약체결에 관한 동의를 받을 계획이 없었으므로*, 피해자에게 유효한 임대차계약에 따라 임대차목적물을 사용, 수익하게 하고 임대차계약기간 종료 시 임대차보증금을 반환할 의사나 능력이 없었다.
* 범죄사실 표현이 다소 어색하나, 쉽게 설명하자면, 본래 위탁자인 집주인은 수탁자인 부동산 신탁회사 명의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거나, 수탁자인 부동산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을 조건으로 위탁자 명의로 주택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여야 하나, 이 사건의 임대인은 본인 명의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면서, 부동산 신탁회사의 사전 승낙을 받지 아니하였다. 그리하여 세입자들은 임대인과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였지만, 부동산 신탁회사의 사전승낙이 없어, 법률적으로 보호받지는 못한다. 이러한 범죄 사실이 신탁 사기 사건의 전형적인 구조이다.
피고인은 위와 같이 피해자를 기망하여 총 16명의 임차인인 피해자와 임대차 계약을 체결하고 임대차보증금 명목으로 합계 15억 원을 건네받았다. 이로써 피고인은 피해자를 기망하여 재물을 교부받았다.
사건의 개요 : 신탁주택 전세사기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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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독] ‘구멍 뚫린’ 법원 등기국… 고통받는 전세 피해자들, 2023. 5. 29.자 대구MBC뉴스 자료화면 |
ⓒ 대구MBC |
이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은 위 공소사실을 모두 인정한 후, 피고인에게 5년을 선고하였다. 그런데 1심 판결에 대한 항소심 절차에서, 항소심 재판부는 이 사건 임대 주택에 대하여 한국자산관리공사에 의하여 공매절차가 진행 중이고, "2024. 10. 10. 기준으로 감정액이 42억 5900만 원으로 평가되어 우선수익자인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금 합계 29억 3000만 원을 공제하더라도 피해자들의 피해가 대부분 회복될 것으로 보이는 점"을 이유로, 1심 선고형 5년에서 2심 선고형 2년 6개월로 감형하였다.
피해금액 회수 못 할 수도 있는 상황, 감형이 웬 말인가
그러나 2024. 10. 10. 기준으로 감정액이 42억 5900만 원으로 평가되어 공매절차가 진행 중이더라도, 통상적으로 감정가의 70~80%로 매각되는 것이 현실이며, 이에 따르면, 최소 29억 8130만 원(70% 매각 가정)에서 최대 34억 720만 원(80% 매각 가정)으로 매각되는 것을 가정하면, 최소 매각금액 시에는 피해자들의 피해가 거의 회복되지 않으며, 최대 매각금액을 가정하더라도, 약 5억 원 정도가 남아 피해자들의 피해가 각 1/3 정도 회복되는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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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자산관리공사 온라인 공매 절차 사이트(온비드) 갈무리 |
ⓒ 김태근 |
"피해회복의 가능성만으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 전세사기 판례 잊었나
① 전세사기 범행은 주택시장의 건전한 거래질서를 교란하고, 서민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임대차보증금을 이익 추구의 수단으로 삼아 그들의 생활 기반을 뿌리째 흔드는 중대범죄라는 점에서, 엄중한 처벌을 통하여 이를 근절하여야 할 공익상 요청이 대단히 큰 범죄다. 이런 범죄에 맞선 사법당국은 그 처벌에 있어 단호한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다. ② 피고인은 피해회복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에 피해자들이 이 사건 범행으로 인한 재산상 손해와 심리적 고통을 호소하면서, 이 법원에 피고인의 엄벌을 거듭 탄원하고 있다. ③ 피고인은 수사 과정에서부터 줄곧, 정부와 부동산 대책 변화로 인한 각종 규제, 금리 인상, 부동산경기 악화 등으로 보증금을 반환 못한 것일 뿐이라고 주장했고, 당원도 이런 사정을 일부나마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하기는 했다. 그러나 부동산경기나 이자율 등의 경제 사정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하고 변동 가능한 것이므로, 임대인으로서는 임대차 만기의 대거 도래와 같은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대비해야 한다. 수익을 올리려는 개인의 경제활동 자체를 탓할 수는 없고, 이런 형태의 범죄를 촉발하는 전세 제도나 금융시스템 등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고 보이기는 하나, 자신의 탐욕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 탐욕은 타인의 고통 앞에서 즉시 멈춰야 한다. 여러 사정에 불구하고, 이 사건의 주된 책임은 위험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무리하게 임대사업을 벌인 피고인에게 있다. ④ 피고인은 나쁜 의도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사기 피해자의 처지에서 보자면, 가해자가 나쁜 의도로 돈을 편취한 것과 선한 의도로 돈을 편취한 것에 무슨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없다. ⑤ 피고인은 피해를 막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주장한다. 피고인이 피해를 방지하기 위하여 어떤 노력을 했는지 분명하지 않을 뿐 아니라, 설령 나름의 조치를 취했다 하더라도, 기망행위의 의도가 크게 중요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피고인이 최선의 노력을 다했든 다하지 않았든, 현실적인 피해회복이 없는 이상, 그러한 사정은 유리한 양형요소로서 고려할 가치가 없다. ⑥ "너무 지치고 힘들어서, 정말 천만 원이라도 돌려주면 합의해 주고 싶다"고 토로한 한 피해자의 법정 진술처럼, 재산범죄에서 형을 감경하는 가장 중요한 양형요소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변제임에도, 이 사건 피해는 제대로 회복된 바 없다. ⑦ 피고인은 다른 부동산이 있어 변제여력이 있다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유보된 약속은 참된 약속이 아니다. 유보된 희망 역시 희망이 아니라, 또 다른 기망일 뿐이다. 피해회복의 가능성만으로 형을 감경할 수 없다. ⑧ 피고인은 공판 과정 내내 사죄하고, 반성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항상 지적하듯이 사죄와 용서는 법원에 구하는 것이 아니다. 법원은 형을 정할 뿐 피고인을 용서해 줄 권한이나 자격이 없다. - 부산지법 동부지원 2024. 1. 24. 선고 2023고단1574 판결(판사 박주영)의 판결 이유 중 |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참여연대 홈페이지,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이 글의 필자는 주택세입자법률지원센터(세입자 114) 운영위원장 김태근 변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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