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 쓴 참회는 용서를 부르는가 [배철현의 ‘카라바조로 보는 인생’]

2025. 3. 24.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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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참회(懺悔)하십니까?”

로마 철학자 키케로가 실수하는 인간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적절하게 말했다.

“실수하는 것은 인간적이다. 그러나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부인하는 자는 바보다.”

자신의 실수를 진정으로 인정하는 행위는 용서의 발판이다. 구차한 변명은 더 심한 벌을 유발시킬 뿐이다. ‘참회(懺悔)’에서 ‘참(懺)’은 원래 한자가 아니라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면서 ‘뉘우치고 용서를 구한다’란 팔리어 ‘ksama’를 음역한 단어다. 자신을 깊이 응시하고 잘못을 찾아내고, 그 실수를 저지른 자신을 스스로 꾸짖고 다시는 그런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참회다.

로마에 정착해서 승승장구하던 카라바조가 1606년 5월 28일, 인생에서 돌이킬 수 없는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르기에 보편적이며, 막을 수가 없기에 운명적이다. 카라바조는 낮과 밤에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살았다. 낮에는 로마 성당과 귀족들의 궁궐에서 신의 은총을 입은 천재적인 화가로 칭송의 대상이었지만, 밤에는 로마 뒷골목에서 육신의 욕망과 폭력을 거침없이 분출하는 ‘너무도 인간적인’ 동물이었다.

카라바조는 로마 뒷골목에서 운명적인 여인을 만난다. 그녀는 당시 모든 로마 남성이 만나고 싶어 하는 창녀 ‘필리데 멜란드로니(1581~1618년)’다. 시에나에서 태어난 멜란드로니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로마로 이주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생계를 위해 13세인 딸을 로마 뒷골목 창녀로 만들었다. 카라바조는 뛰어난 미모를 지닌 멜란드로니를 보고 첫눈에 반했다. 카라바조는 멜란드로니를 1590년 후반부부터 다수 그림의 모델로 그렸다. ‘한 창녀의 초상화’ ‘성녀 까드린’ ‘마리아와 마르다’에서 마리아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자르는 유딧’에서 유딧으로, 심지어 ‘그리스도의 매장’에서 막달라 마리아로 등장한다.

멜란드로니의 포주는 라누키오 토마소니라는 불리는 귀족 청년이었다. 이들은 가톨릭 교회의 개혁운동으로 강화된 로마 교구청 기록에 자주 이름이 언급되는 골칫덩어리였다. 로마 교구는 1599년 멜란드로니를 ‘코르티지아나 샨달로사(cortigiana scandalosa)’, 즉 ‘자주 말썽을 부리는 창녀’로 낙인찍었다. 그녀는 모든 시민이 참석할 수 있는 성례전에 참여할 수 없었다. 그녀는 토마소니가 선물해준 칼을 불법적으로 항상 소지하고 다녔다. 멜란드로니는 1600년 후반에, 또 다른 창녀인 프루덴자 짜키아가 토마소니와 잠자리 사실을 알고 칼을 휘둘러 그녀의 손목에 치명적인 상처를 낼 정도로 난폭했다.

멜란드로니를 사랑하는 두 남성, 즉 카라바조와 토마소니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이 다혈질 청년들이 1606년 5월 28일 결투를 벌였다. 멜란드로니의 고객인 카라바조는 그녀의 포주인 토마소니에게 화대를 오랫동안 지불하지 않았다. 토마소니가 그런 카라바조를 동성애자라고 놀리면서 싸움이 시작되었다. 그들의 싸움은 한 귀족의 궁궐에 마련된 테니스장에서 벌어졌다. 카라바조는 넘어진 토마소니의 성기를 자르기 위해 칼을 뽑았으나, 잘못 내리쳐 허벅지 위쪽에 위치한 대퇴동맥을 끊었다. 이 광경을 보던 토마소니의 동생들은 그를 급히 근처 병원으로 옮겼으나, 토마소니는 곧 과다 출혈로 사망하였다. 카라바조도 이 결투로 심한 부상을 입고 1592년부터 거주하며 자신에게 명성을 가져다준 로마를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골리앗의 머리를 들고 있는 다윗, 1606년, 유화, 125 × 101㎝, 로마 보르게제 미술관.
살인자가 그린 참회의 초상, 카라바조의 절망과 구원

개인 간 목숨을 건 결투는 로마교회가 금지하는 불법행위고 그 과정에서 일어난 살인행위는 중범죄였다. 로마당국은 그의 머리에 ‘반도 카피탈레(bando capitale)’를 선언한다. ‘반도 카피탈레’는 교황 관할 지역에서는 누구나 그 범인을 죽이면 현상금을 수여받을 수 있다는 법령이다. 목숨을 두려워한 카라바조는 로마 관할권 밖에 있는 나폴리로 도망쳤고 이후 처절한 방랑의 여정이 시작되었다.

카라바조는 살인을 저지른 그해, 1606년 여름에 나폴리에 잠입해 자신이 처한 절망적인 미래를 헤쳐나갈 방안을 모색한다. 자신의 참회를 알리는 그림을 그의 후원자이자 주교인 스키피오네 보르게제에게 기부하여 사면을 구걸할 작정이었다. 그는 이미 목이 잘려진 자신의 모습으로 자신을 묘사할 수 있는 참회의 장면을 성서에서 찾았다. 구약성경 ‘사무엘상’ 17장 48~51절에 등장하는 홍안의 청년 다윗이 거인 골리앗의 목을 자르는 장면이다.

(48) 드디어 그 블레셋 사람이 몸을 움직여 다윗에게 점점 가까이 다가오자, 다윗은 재빠르게 그 블레셋 사람이 서 있는 대열 쪽으로 달려가면서 (49) 주머니에 손을 넣어 돌을 하나 꺼낸 다음, 그 돌을 무릿매로 던져서, 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맞히었다. 골리앗이 이마에 돌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50) 이렇게 다윗은 무릿매와 돌 하나로 그 블레셋 사람을 이겼다. 그는 칼도 들고 가지 않고 그 블레셋 사람을 죽였다. (51) 다윗이 달려가서, 그 블레셋 사람을 밟고 서서, 그의 칼집에서 칼을 빼어 그의 목을 잘라 죽였다.

카라바조는 이 이야기의 전개를 모두 생략하고 오직 51절에 집중했다. 그는 다윗이 골리앗의 목을 잘랐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왼손으로 드는 장면을 창안했다. 이 장면은 심리적으로 복잡한 그의 심경을 묘사하고 있다. ‘사무엘상’에 등장하는 세 인물, 즉 다윗, 골리앗, 밧세바 이야기를 통해 자신, 토마소니, 멜란드로니와 엮었다. 구약성서 이야기에서 다윗은 자신의 궁궐에서 훔쳐본 밧세바를 차지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당시 이웃 나라 암몬과의 전쟁터의 최전선에 배치하여 전사하게 만들고, 밧세바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동일한 방식으로 카라바조는 멜란드로니를 차지하기 위해, 토마소니를 살해하였다.

카라바조는 이 두 상황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림에서 다윗은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살해하고 목을 잘라 왼손으로 들어 올리는 승리의 순간에도 기쁘지 않다. 골리앗의 잘린 목에서는 아직 피가 뚝뚝 떨어지고 있다. 다윗의 얼굴에는 복잡한 심경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왼쪽으로 비스듬하게 기울어진 얼굴의 반은 그림자에 잠겨 있다.

머리가 잘려진 골리앗은 다름 아닌 카라바조 자신의 모습이다. 토마소니를 살해하여 쫓기는 자신의 모습이다. 그런 골리앗을 보는 다윗의 얼굴에는 안타까움, 연민, 사랑이 스며 있다. 이 그림에서 다윗은 예수다.

잘려진 골리앗의 머리가 된 카라바조는 한 곳을 응시하고 있다. 그는 반은 죽었고 반은 살았다. 그의 오른쪽 눈의 초점은 희미해지고 감기고 있지만 왼쪽 눈은 분노와 고통으로 훨훨 타오르고 있다. 그는 단테 ‘신곡’ 지옥편에 등장하는 저주받은 영혼처럼, 불길 가운데 영원히 고통을 받고 있는 죄인과 같다. 그는 이 그림에서 다윗으로 등장하는 그리스도가 참회하고 있는 골리앗 모습을 한 자신을 용서해줄 것을 탄원하고 있다. 참회만이 용서와 사면을 일으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배철현 더코라 대표]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02호 (2025.03.26~2025.04.01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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