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Z순경]"경찰은 현장에서 탄생한다"…파출소 막내가 된 실습생
지난 20일 오후 8시께 서울 금천구 대명시장 먹자골목. 술기운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취객들이 하나둘 거리를 서성이기 시작했다. 서울 금천파출소 이다영 순경(29)은 한 손에 수첩을 들고 골목 곳곳을 둘러봤다. 술집과 식당이 몰려 있어 주취자 간 시비 등 사고가 끊이질 않는 이곳에서 이 순경은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주변 상황을 수첩에 기록했다.
이 순경은 지난 1월 금천파출소에 배치받은 현장 실습생이다. 경찰 공무원 합격자는 중앙경찰학교에서 약 6개월간 교육을 받고 2개월가량 현장 실습을 나간다. 이후 경찰학교 졸업을 한 뒤 정식 경찰로 배치받는다. 이 순경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현장에서 적용하는 과정"이라며 "실습을 마치면 경찰학교로 돌아가 졸업을 한 뒤 실습했던 곳에서 본격적으로 경찰관의 업무를 시작한다"고 말했다.
경찰학교 교육을 마치고 처음 실습생으로 들어왔을 때 느꼈던 어려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경찰학교에서 체력 훈련부터 체포술, 사격 등 다양한 교육을 받지만, 막상 현장에 와보니 현장 관리부터 민원 신고 처리까지 막막하기만 했다. 이 순경은 "지난 1월 처음으로 출동했던 곳이 가정폭력 현장이었는데, 첫 현장이라 그런지 긴장해서 얼어붙었다"며 "이때부터 선배들이 어떻게 현장을 관리하고, 피해자와 가해자에게 무엇을 질문하는지 등을 매일 수첩에 적으면서 실수를 줄이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선배들의 조언과 사건 처리 방법을 적어둔 수첩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가르침은 단호함이었다. 이 순경은 "처음 민원인을 상대할 때 친절하게 해야 한다는 생각에 모든 사람에게 웃는 얼굴을 보였다"며 "시민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은 좋지만, 범법 행위자를 대할 때는 단호해야 한다는 점을 선배들로부터 배우고 이를 실천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부족한 부분을 계속해서 고민하다 보니 어느덧 민원인 등을 대하는 게 익숙해졌다. 이 순경은 "민원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공감"이라며 "처음에는 민원 응대를 할 때 화를 내는 분들도 많이 있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다 보니 해결되는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민원인의 화가 가라앉으면 이때 제가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과 도움주기 어려운 부분을 설명한다"며 "이때부터는 이들도 상황을 잘 이해해준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공감 능력을 통해 길거리에서 잠든 취객을 무사히 집까지 돌려보낸 적도 있다. 지난 2월 40대 여성이 길거리에서 술에 취한 채 잠들었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이때 이 순경을 포함해 경찰관 3명이 출동했다. 당시 경찰들은 잠든 여성을 깨우면서 집이 어디냐고 물었지만, 여성은 시비를 걸며 공격적인 모습을 보였다. 이 순경은 "여성에게 다가가 진정시킨 뒤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순간 저를 안아주려고 하더라"며 "이때 집 주소를 알 수 있게 됐고 무사히 집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이 순경이 시민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줄 수 있는 것은 다양한 아르바이트 경험 덕분이다. 이 순경은 경찰이 되기 전 카페, 화장품 가게, 워터파크 등 다양한 곳에서 끊임없이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 순경은 "여러 사람을 상대했던 경험이 경찰 업무에도 도움이 됐다"며 "시민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이들의 목소리에 공감할 수 있는 것은 과거 많은 사람을 응대했던 경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경험은 수사 능력에서도 빛을 발했다. 주로 서비스업에서 아르바이트를 많이 했던 이 순경은 사람들을 볼 때 얼굴 특징을 잘 관찰하고 기억하는 능력으로 최근 편의점 절도범을 잡아냈다. CCTV를 확인할 때 절도범이 이전에도 비슷한 사건으로 즉결심판 받은 범법자라는 점을 알아챘다. 이 순경은 "수사 과정에서 '저 사람 어디서 많이 본 사람 같다'는 생각을 했고 이를 선배들에게 보고해 용의자를 특정해 검거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로서의 첫발을 뗀 지 얼마 되지 않아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당연히 있다. 파출소 소속 경찰관은 하루 12시간 이상을 근무한다. 금천파출소의 주간 근무자는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30분까지 일하며, 야간 근무자는 오후 7시에 출근해 다음 날 오전 7시30분 퇴근한다. 이 순경은 "아직 적응 중이라 집에 가면 거의 잠만 잔다"며 "그러다 보니 휴일에도 친구를 만나기보다는 체력을 보충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자부심이 이 순경을 버티게 하는 원동력이다. 이 순경은 최근 집을 찾지 못하는 치매 노인을 집까지 데려다준 적이 있다. 금천구청역 벤치에 앉아 집을 기억하지 못하는 노인으로부터 보호자 연락처를 알아냈다. 이 순경은 "보호자가 '고맙다'고 하는데 경찰로서 뿌듯함을 느꼈다"며 "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 같아 자존감도 높아졌다"고 말했다.
어릴 적 경찰차가 지나갈 때 막연하게 멋있다고 생각했던 이 순경은 어느덧 현장에서 경험을 쌓아가고 있다. 아직 업무를 배우는 중이라 선배들에게 꾸중을 들을 때도 있지만, 스스로 성장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성취감을 느낀다. 이 순경은 "원래 조용하고 소극적인 성격이었는데, 경찰 업무를 하면서 매사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태도를 갖추게 됐다"며 "적극적인 자세로 시민들에게 도움을 줄 때마다 더 좋은 경찰이 되고 싶다는 생각뿐"이라고 말했다.
이 순경은 다음 달 7일 경찰학교로 복귀해 10일이면 경찰학교를 졸업한다. 이후 금천파출소에서 정식 경찰관 생활을 시작한다. 실습을 통해 배운 현장의 경험들이 그를 진짜 경찰로 만들어가고 있다.
박승욱 기자 ty1615@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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