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에서 꽃피우는 대한민국 AI 스타트업 생태계 [최재붕의 AI생존코드]

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 2025. 3. 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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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바이오·로봇까지…새 성장동력 만드는 혁신기업들 ‘질주’
탄핵 정국 속에서도 청년들은 글로벌 무대에서 돌파구 찾는다

(시사저널=최재붕 성균관대 부총장)

요즘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나라 이대로 가도 괜찮을까요'다. 걱정 가득한 표정에서 깊은 우려와 두려움이 느껴진다. 사실 그럴 만하다. 전 세계는 AI 패권전쟁으로 엄청난 자본과 인력을 쏟아붓는 중인데, 우리는 정치권의 끊임없는 권력 다툼 속에 대통령마저 공백 상태다.

더욱이 우리는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한가운데에 있다. 미국은 AI 시대의 핵심 기술인 최첨단 반도체 제조 능력을 가진 우리가 중국과 손잡는 것을 원치 않는다. 반도체 설계 및 제조, AI 소프트웨어 개발 역량을 갖춘 국가는 중국과 우리뿐이기에, 우리는 전략적 선택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만약 우리가 미국과 협력한다면 AI 시대의 중요한 파트너로 자리 잡을 수 있지만, 중국과 손잡는다면 오히려 우리 제조업의 경쟁력이 위협받을 가능성이 크다.

이미 중화학 산업에서 나타나는 변화만 보더라도, 중국이 기술력을 축적하며 우리를 추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도체·가전·중공업 등 여러 분야에서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으며 경쟁력을 갖췄듯, 중국 또한 같은 방식으로 우리 산업을 압박하고 있다. 결국 얼마 남지 않은 기술 우위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미국의 제조 파트너가 되는 것이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현명한 선택지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미국과는 어떻게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까.

2023년 1월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가전·IT(정보기술) 박람회 'CES 2023'에 마련된 서울시 K-스타트업 기업들의 전시관 모습 ⓒ연합뉴스

미국 VC와 손잡은 혁신 창업가들

지난달 미국 실리콘밸리 출장길에 만났던 한국 청년들을 통해 그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출장의 목적은 한국의 스타트업을 미국 시장에 진출시킬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탐색하는 일이었다. 한국 스타트업을 집중 지원하는 VC(벤처캐피털) 4개사를 만나 미팅을 했다. 한국 청년들이 창업한 4개의 스타트업을 만나볼 수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 청년들은 놀라울 만큼 잘 도전하고 있었다. 실력으로 충분히 인정받으며 미국 시장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단지 몇 개의 기업만 크고 있는 게 아니라 성장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는 게 놀라웠다.

UKF(United Korean Founders)라는 비영리단체가 1년에 두 번 포럼을 개최하며 한국인 스타트업과 VC들의 투자상담과 네트워킹을 주선하는데, 작년 뉴욕 포럼 때는 참가 인원이 2000명을 넘었다고 한다. 올해는 참가자가 5000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행사를 준비 중이라고 했다. UKF에는 한국 외교부와 경기도 경제과학진흥원도 참여하고 있다.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늘어나면서 VC들도 자금이 풍부해졌고 투자 여력도 커졌다. 특히 최근에는 AI·바이오·로봇 등 하이테크 기업의 창업이 크게 늘어났고, 미국 주요 VC들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만난 한 AI 스타트업은 상장 이전인데도 이미 2조5000억원의 가치를 인정받아 투자하겠다는 VC도 줄을 서 있다고 한다. 이 기업은 VC를 대상으로 투자해 달라고 IR을 하는 것이 아니라 투자하겠다는 VC에게 왜 우리가 당신네 자금을 투자받아야 하는지, 그걸 받으면 어떤 혜택을 우리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 발표해 보라고 하는 중이다. 놀라운 일이다. 이 창업자는 스탠퍼드 박사 과정 중 취업을 결정하고 구글에서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이후 유튜브에서 역량을 쌓았고 거기서 만난 최고의 AI 천재를 설득해 CTO로 영입하면서 스타트업을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글로벌 빅테크들이 모두 파트너로 삼을 만큼 AI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고 매출도 빠르게 성장 중이다. 핵심 직원들 대다수는 한국인이다. 더구나 한국에 R&D센터를 두고 150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

이렇게 성공한 스타트업이 많아진다면 우리나라 청년들이 미국 시장에 진출할 때 성장을 도와줄 수 있는 생태계도 풍성해진다. UKF가 점점 활성화되는 것도 여기서 도움을 받아 성장한 기업이 많아지는 덕분이다. 성공의 롤모델이 많아지니 도전자도 늘어나고 투자 펀드도 증가하면서 선순환의 바람을 타고 있다는 게 이들의 분석이었다.

글로벌 무대에서 한국 기술의 위상을 높이다 

스타트업에 도전하고 VC를 만드는 한국 청년들은 대부분 유학생이거나 교포 1.5세 또는 2세들이다. 그동안은 미국 주류 사회에서 편의점이나 세차장 등 스몰 비즈니스를 주로 하던 교포 2세들은 높은 교육열에 힘입어 미국 명문대를 졸업할 수 있었고, 많은 하이테크 기업에 뛰어들었다. 또 우수한 학생들이 유학길에 오르면서 하이테크 산업에 매료돼 미국에 정착하게 됐다. 이들이 모여 풍성한 생태계의 중요한 인적자원이 됐다. 거기다가 미국 내에서 한국의 K팝, K드라마 등 한국 문화에 대한 팬덤이 형성되면서 사업의 다양성도 크게 확장되었다. 실제로 최근 K뷰티, K푸드를 기반으로 하는 스타트업들에서 성공 사례가 늘어나면서 사업 도전자도 많아졌고 UKF가 활성화되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한국 스타트업이지만 모두 미국 기업들이다. 한국 같은 규제도 없어 혁신을 사랑하는 인재들에게는 더없는 창업 천국이다. 트럼프가 좋아하는 미국 내 일자리 창출 기업인 동시에 한국과 동반 성장이 가능한 기업들이다. 이들이 미국 주류 사회와 끈끈한 네트워킹을 만들어간다면 이스라엘처럼 동반 성장의 중요한 파트너가 될 수 있다. 아귀다툼하는 국내 정치로 인해 우울했던 마음이 열정에 찬 청년들과 미팅을 이어가면서 희망찬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됐다. 대한민국의 기적을 만든 기업가 정신 DNA가 어디 가겠는가.

선진국이 되면 개도국에서 성장했던 산업들은 어느 정도 사양길에 접어들 수밖에 없다. 또 중국의 제조 경쟁력이 올라가면 많은 우리 기업이 쓰러지는 것도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다면 그만큼의 새로운 산업과 일자리가 필요하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긴밀하게 연계된 생태계를 유지하면서 심지어 전쟁 중에도 국부를 창출하고 있다. 그 중심에 수많은 유대인, 유학생, 또 첨단 기술력의 이스라엘 스타트업들이 만든 미국과의 연계 생태계가 있다. 비슷한 처지의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우리 청년들이 이미 그런 생태계를 꽃피우는 중이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땅 위에 당당히 선진국을 건설한 기성세대의 후예들답다. 우리나라 참 어렵다. 그래도 희망은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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