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달한 광고의 이면... 커피 못마시게 구청이 내린 조치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2025. 3. 22.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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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1998년, 커피수난시대

[이길상 기자]

 1998년 9월 21일 <한겨레>에 실린 맥심 광고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세상 가장 향기로운 커피는 당신과 마시는 커피입니다." 배우 한석규씨가 맥심커피 광고에 등장해서 손에 든 커피잔을 지그시 내려보며 속삭였다. 안성기씨가 오래도록 맡았던 광고 모델이 이 해에 남자 인기 연예인 1위로 등극한 한석규로 교체되었고, 여자 연예인 인기 1위 최진실은 롯데백화점 모델로 등장했다.

맥심커피의 경쟁 제품인 네슬레의 테이스터스 초이스는 "감사의 마음에서는 향기가 납니다"로 대응했고, 롯데칠성의 레쓰비 캔 커피 광고는 손발을 오그라들게 하는 버스와 지하철 대화로 인기를 끌었다. 버스에서 레쓰비를 마시던 전지현이 "저 이번에 내려요"라고 하자, 류시원이 성급히 따라 내린다. 지하철에서 레쓰비를 마시던 명세빈이 "저 이번에 내려요"하자 박용하는 "어, 진짜요?" 하며 뒤에 있던 여자 친구를 앉혀서 명세빈을 민망하게 한다.

이런 달달한 커피 광고가 유행하던 1998년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광고처럼 달달하지도 유쾌하지도 않았다. 1998년은 그야말로 역사학자들에게는 "존재감 없는 해", 혹은 "낀 해"로 여겨진다. 1997년에는 IMF 외환위기와 온갖 대형 사고가 잇따랐고, 1999년은 새천년으로 가는 마지막 해라는 굵직한 이미지가 남아 있다면, 1998년은 뚜렷한 이미지가 없다.

1998년, 또다시 찾아온 커피수난시대

역사학적으로 뚜렷한 이미지는 없지만 당시를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공포에 가까운 비참함이 넘치던 해가 1998년이다. 내부적으로는 나라가 망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여전히 남아 있었고, 밖으로는 나라가 망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자주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8월에는 러시아가 국채를 상환할 수 없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했고, 이 여파로 남미 경제는 위기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10월에 브라질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게 되었고, 아르헨티나는 금융위기를 맞았다. 커피의 국제 거래 가격이 계속 하락하자 커피 수출국 멕시코, 볼리비아, 콜롬비아, 페루, 에콰도르 등의 국고가 바닥을 보였고, 이를 극복하고자 이들 나라 정부는 공공요금을 인상했다. 서민들은 분노를 표출했고 정치는 불안해졌다. 다시 군사 쿠데타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전문가들은 "민주 체제가 무너지면 민주주의가 30년 후퇴할 것" 혹은 "이들 나라 중 몇몇은 결국 망할 것"이라는 우려까지 제기되었다.

사실 1998년의 우리나라도 이들 나라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1인당 국민소득에서 우리나라가 6000달러 수준이었고, 브라질은 5000달러, 멕시코나 칠레는 4000달러 수준이었다. 1인당 국민소득은 1년 사이에 40%가 감소하였고, 경제는 "플러스 성장"이 아니라 "마이너스 성장"이라는 생소한 현상을 맛봐야 했다. 그해 경제성장률은 -5.1%였다. 반면 물가는 7.5%나 올랐다. 당시 언론에 자주 등장했던 단어를 보면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공포감을 알 수 있다. IMF, 외환위기, 실업난, 노숙자, 금 모으기, 구조조정 등이다.

<조선일보>는 1998년 5월 30일에 특집 'IMF 6개월'을 실었고, 제목은 '중산층 반쪽 살림'이었다. 중랑구 신내동에 사는 중견 기업 차장 이모씨 가족의 겨울나기가 주제였다. 1200명이 일하던 이씨의 일터에서 250명이 명예퇴직을 했다. 이씨는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월급은 20% 줄었다. 양복 한 벌로 겨울을 났다. 신학기 시작과 함께 아이들 사교육비를 줄였다. 태권도, 미술, 피아노, 학습지 모두 끊었다. 우유와 오렌지 주스도 차례로 끊었다. 아내는 "우유 그만 넣으라"고 말하면서 참담함에 눈물을 흘렸다. 6개월간 외식은 딱 한 번이었다. 중학생 아들은 가족신문에 쓴 현진건의 '술 권하는 사회' 독후감에 "이 책의 배경은 30년대인데 지금과 상황이 비슷하다"고 썼다.

아내 서씨는 커피를 마시다가 '이것도 사치 아닌가' 싶어 화들짝 놀라기도 했다. 서씨는 남편이 최근 명예퇴직한 이웃을 찾아갔다가 둘이 부둥켜안고 엉엉 울었다. 서씨의 말이다. "겨우 중산층이 된 줄 알았는데 하루아침에 다 무너졌으니까." 서씨는 살림에 보탬을 주려고 출판사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남편은 수수료 아끼려고 공과금 봉투를 들고 은행 여섯군데를 걸어서 다녀왔다. 이씨 회사에서 내달에 또 대규모 감원이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아내의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를 했지만, 아내도 이씨도 웃을 수 없었다.
 1998년 5월 30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IMF 6개월 중산층 반쪽 살림’ '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6월 8일 경향신문에도 영등포구 신길동에 사는 회사원 이모씨의 이야기가 실렸다. 어느 날 여덟 살 딸아이의 필통을 보니 볼펜대를 끼운 몽당연필들이 들어있었다. 이전 같았으면 흐뭇하였겠지만, 지금이어서 측은한 마음이 앞섰다. 그런데 며칠 전 출근하는 이씨를 딸아이가 배웅하면서 이씨 손에 100원짜리 동전 3개를 쥐여 주는 것이었다. "이게 뭐니?"라 물으니 "아빠, 오늘 커피값 하세요. 제가 아빠한테 용돈 드리는 거예요"라고 했다.

전국의 기차역 대합실 난로의 불이 꺼져서 열차 이용객들이 추위에 떨어야 했다. 지도자들이 위기에 빠뜨린 나라에서 시민들은 이런 모습으로 살아야 했던 IMF 외환위기 이듬해 1998년 대한민국이었다.

물론 이때도 커피는 희생양이었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것은 무능한 지도자들이었는데, 왜 커피가 특별히 비난받는지는 모를 일이었다. 역사상 네 번째였다. 고종커피독살 사건 직후, 일제 말 태평양전쟁 때, 그리고 5.16 쿠데타 직후 몇 년간 커피는 이 땅에서 배척해야 할 죄인 신세였던 적이 있었다. 외환위기는 커피 퇴출 운동을 다시 불러왔다.

IMF 시대의 덕목은 절약이었고, 커피는 절약의 반대말이었다. 국민이 모은 금 300킬로그램을 1차로 수출하여 받은 돈이 260만 달러였는데, 연간 커피 수입액이 2억 달러나 된다는 비난이 거셌다. 전량 수입하는 커피 대신 우리 땅에서 나는 차를 마시자는 운동이 거셌다. 서울의 서초구청에서는 공무원들과 음식점을 대상으로 커피 안 마시기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쳤다. 커피를 마시지 말자고 공문을 발송하는가 하면, 커피 안 마시기 캠페인에 동참하는 업소에 대해서는 위생검사 면제 등 혜택을 주었다. 당연히 받아야 할 위생검사 면제가 혜택인 나라였다. <매일경제> 표현대로 '커피수난시대'였다.

당시 인기 있던 율무차, 둥굴레차, 녹차 원료의 90퍼센트 정도를 수입하고 있다는 사실, 커피 수출로 수천만 달러의 외화를 벌어들인다는 사실, 수출에 목숨 거는 나라가 외제 추방운동을 벌이는 것에 대한 외국에서의 비판이 거세다는 사실 등은 알 바 아니었다. 오로지 여론에 영합하는 정책을 쏟아낼 뿐이었다. 외환위기가 세상 물정은 모르고 여론 영합 정책에 몰두한 탓에 벌어졌다는 것을 전혀 모르는 정책 입안자들이었다.

동서식품에서는 모든 광고에 "세계로 수출하는 우리 커피 맥심"이라는 문장을 넣어야 했다. 무슨 물건이든 수출하는 상품이라는 것, 아니면 우리 것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살아남던 시절이다.

삶의 향기를 찾기 힘든 불안한 하루하루

시절만큼이나 쓰고 검은 커피 '에스프레소'가 본격적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이 1998년이었다. <조선일보>는 8월 28일 자에 광화문에 있는 정통 에스프레소 전문 매장 '세가프레도'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고, <동아일보>는 9월 4일 자에 청담동 여피거리에서 에스프레소 전문점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하루에'를 소개하였다.

<동아일보>는 10월 20일 자에 에스프레소 특집을 실었다. 자그마한 잔 데미타스에 담긴, 커피 맛을 아는 사람들을 위한 에스프레소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는 기사였다. 여피거리 청담동의 '문화기호'인 에스프레소 전문 매장 '커피미학'도 소개되었다. 에스프레소 기반 커피 음료 전문점 스타벅스는 서울 1호점 개점을 미루고 있었지만, 서울에는 이미 에스프레소 전문 매장들이 하나둘 등장하고 있었다.

이해 10월 29일에 발표된 제4회 동서커피문학상 대상 '미장원에서'에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작가는 미장원에서 다듬어지는 여자 머리를 보면서 "미완성인 그 모습이 하나의 예술처럼 느껴졌다. 완성을 향해 다가가는 미완의 행위들, 그것에서 삶의 아름다움은 완성되는 것이 아닐까. 혀끝에 맴도는 커피 향의 여운처럼 삶의 향기도 그런 여운 속에 머무는 것이 아닐까"라고 속삭인다.

존재감 없던 1998년, 나라가 망할지, 나의 삶이 무너질지 모르는 절박한 시절을 사는 사람들이 여운 속에서 삶의 향기를 찾기는 어려웠다. 그 시절의 여운은 모두 불안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런 시절이 다시 돌아왔다는 것이 몹시 슬프다. 지금 우리는 모든 여운이 불안으로 가득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다. 다섯 번째 커피수난시대가 올지도 모른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 커피인문학자)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 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 역사비평사.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겨레, 매일경제 1998년 기사 일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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