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몰라도 짜릿한 ‘승부’…유아인이 더 밉다 [쿡리뷰]

심언경 2025. 3. 2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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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가 진입장벽이지만, 정작 바둑을 모르면 더 재밌는 바둑 이야기다.

'승부'는 대한민국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다만 바둑과 두 사람의 일화에 정통하다면, 한층 더 지루하게 느껴질 대목들이긴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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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승부’ 공식 포스터.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이 기사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바둑이라는 소재가 진입장벽이지만, 정작 바둑을 모르면 더 재밌는 바둑 이야기다. 바둑에 천착하는 대신 배우들의 탁월한 연기, 촘촘한 영화적 장치에 집중하다 보면 막막하게 느껴졌던 러닝타임도 훌쩍 지나간다. 디테일로 승부수를 띄운 영화 ‘승부’(김형주 감독)다.

‘승부’는 대한민국 바둑 레전드 조훈현(이병헌)과 이창호(유아인)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이다. 사제에서 맞수로 변모하는 이들의 관계성, 수반되는 인물들의 심리 변화가 핵심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이병헌과 유아인은 캐스팅 당시 최고의 선택이었을 터다.

조훈현은 남의 자식을 허투루 가르칠 수 없다는 책임감으로 이창호를 엄하게 키운다. 하지만 정석을 벗어나 자신의 바둑을 찾은 제자와 프로로 대면하고, 끝내 정상의 자리를 내어주면서 충격에 빠진다. 이 같이 간략한 설명만으로 공감하기 힘든, 미묘하고 복잡한 감정을 지닌 인물이다.

하지만 이병헌은 이병헌이다. 그는 자신의 필살기인 눈빛을 비롯해 비언어적 표현을 총동원해 인물의 다단한 심경을 그려낸다. 어떤 부분이 뛰어났다고 짚기 힘들다. 세세한 인물 묘사 하나하나가 모여 조훈현 그 자체가 됐다는 평이 적확하겠다.

유아인의 캐릭터 표현 역시 놀랍다. ‘국수’급 연기를 펼치는 이병헌 앞에서 이창호처럼 한 치의 물러섬이 없다. 촬영 시기(2020~2021년)와 마약 투약 혐의를 받는 때(2020~2023년)가 맞물리는데, 이창호에게선 황당할 정도로 유아인을 찾을 수 없다. 스승의 완고한 가르침에 위축되는 듯하지만 끝내 자신도 틀리지 않았다고 증명하는 과정이, 그를 만나면서 읽기 쉬운 책처럼 전개된다. 말미에는 턱을 괸 채 장고하는 석불만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영화 ‘승부’ 조훈현(이병헌) 스틸. 바이포엠스튜디오 제공

무엇보다 두 사람의 연기를 돋보이게 하고, 관객이 바둑이 아닌 이들의 서사에 몰입하게 만드는 미장센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카메라는 제1회 응창기배 결승 최종국으로 향하는 조훈현, 제29회 최고위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이창호를 각각 동일한 구도로 쫓는다. 전자는 작품의 시작을, 후자는 관계 전복과 함께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장면이다. 아울러 조훈현이 대국에서 승리를 거둔 것처럼, 이창호 역시 조훈현을 꺾는다는 복선이다.

본인만의 길을 개척한 이창호, 그런 제자를 인정하는 조훈현은 신발끈 하나로 표현한다. 운동화 끈도 잘 묶지 못해 스승의 손을 빌렸던 이창호는 어느 순간 벨크로 스니커즈를 신는다. 이를 발견한 조훈현은 이창호를 프로답다고 평한다. 세상이 정한 기준과 다른 방식을 택한 이창호의 성장, 독특한 기풍을 피력하는 이창호에게 기본을 강조했던 조훈현의 변화를 압축적으로 담아낸 신이다.

바둑 기사를 주인공으로 내세워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대국 시퀀스에서는 바둑돌의 외형 변주, 사운드와 리듬감을 활용해 재미를 더하고자 했다. 여기에 조훈현의 내레이션, 남기철(조우진)의 중계를 적절하게 배치해, 판세를 읽지 못해도 극의 흐름을 따라갈 수 있게끔 해뒀다. 다만 바둑과 두 사람의 일화에 정통하다면, 한층 더 지루하게 느껴질 대목들이긴 하다.

1980~1990년대 시대상 고증도 훌륭한 편이다. 호불호를 차치하고 이처럼 세심한 노력이 곳곳에 보여서 유아인에게 더욱 화가 나는 ‘승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지금으로서 긍정적인 변수를 찾는다면, 당초 공개 예정이었던 온라인스트리밍서비스(OTT)보다 영화관에 더 적합한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제 포석은 끝났다. 왠지 남기철이 이창호에게 건넨 위로가 떠오른다. “그럼 그냥 열심히 이겨. 별 수 있냐.”

오는 26일 개봉. 12세 이상 관람가. 상영시간 115분.


심언경 기자 notglasses@kuki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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