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뒤 인터뷰 회피한 선수들…미디어에 빚진 것 없다?
골프의 메이저리그 - PGA 투어를 가다
긴장감이 만만치 않았다. 이날 가장 긴장감이 컸던 건 ‘선수가 (팬이나 미디어에) 빚을 졌는지’에 관한 담론이었다. 콜린 모리카와가 이 담론을 처음 꺼냈다. 그는 직전 대회인 아널드 파머 인비테이셔널에서 역전패했고, 인터뷰를 거부했다. 매킬로이도 지난해 US오픈에서 역전패한 뒤 인터뷰 없이 떠났다. 이런 일이 늘고 있다. 모리카와는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기간 내내 인터뷰 회피 관련 질문을 받으면 대개 친절히 답했다. 그러면서도 “나는 누구에게도 빚진 게 없다”고 말했다.
선수 출신 유명 해설가 브랜들 챔블리는 “톰 왓슨은 59세였던 2009년 디 오픈에서 우승을 앞뒀다가 마지막 홀에서 역전패하고도 기자실에 들어와 ‘장례식도 아닌데 왜 분위기가 썰렁한가’라며 인터뷰했다”며 “훨씬 더 쓰라린 패배를 당해도 인터뷰는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모리카와는 “팬을 존중한다”면서도 “가혹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빚진 건 없다”고 반복했다.
스타의 ‘빚’ 담론은 배우 험프리 보거트가 시작했다. 네 차례 결혼 등 무대 밖 삶이 그리 모범적이지 않았던 보거트는 “배우는 연기만 잘하면 된다. 내가 대중에게 빚진 건 좋은 연기뿐”이라고 말했다. 이 논리가 스포츠계로 들어왔다.
오래전 우연히 만난 유명 교포 선수에게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내가 그걸 할 의무가 있나요”라는 답이 돌아왔다. “의무는 없다. 그러나 인터뷰를 하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팬이 더 잘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는 인터뷰를 거부했고, 나는 이를 존중한다. 개인적으로 요청한 인터뷰는 선수의 선택사항이지 의무사항은 아니다.
공식 인터뷰는 다르다. 선수는 미디어에 빚이 없지만, 팬과 대회를 위해 큰돈을 낸 스폰서에는 빚이 있다. 퍼포먼스를 보여주는 것 외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등을 공식 인터뷰에서 말해야 한다. 미디어는 그 통로일 뿐이다. 타이거 우즈는 잘 치든 못 치든 거의 매번 인터뷰했다. 지겹기도 했을 텐데 거부하지 않았다.
안병훈은 “선수로서 모리카와를 이해하지만, 나라면 인터뷰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병훈은 지난해 소니 오픈에서 연장 끝에 졌다. 연장에서 그레이슨 머리는 14m 퍼트를 넣었지만, 안병훈은 1.2m 퍼트를 넣지 못했다. 가슴이 찢어졌을 텐데도 안병훈은 인터뷰했다.
중앙일보가 ‘골프의 메이저리그’를 찾아갑니다. 성호준 골프전문기자가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제네시스 인비테이셔널부터 디 오픈 챔피언십까지 25개 대회 현장을 찾아가 생생한 뉴스 및 분석과 이면의 깊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중앙일보 프리미엄 구독 서비스 ‘더 중앙일보 플러스’를 통해 ‘PGA 투어의 낮과 밤’ 시리즈도 함께 연재합니다.
폰테 베드라비치=성호준 골프전문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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