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건 비행, 흑산도민들이 위험하다

희음 2025. 3. 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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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환경생태 현장르포 - 특별기획 '전국 신공항이 품은 위험'] 필사적으로 막아야 하는 흑산공항

지난해 12월 여객기 참사 이후 공항 안전 문제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 진심 어린 애도는 다시는 이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러나 현재 새로 공항을 짓겠다는 곳이 전국에 열 곳이다. 신공항 건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미 조류 충돌을 비롯한 안전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 왔다. 이대로라면, 참사는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 기록팀은 현재 예정 중인 공항 건설이 어떤 안전 문제를 안고 있는지, 왜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지, 생태적인 지역발전은 어떻게 가능한지 기록하고자 한다. <기자말>

[희음 기자]

 흑산공항 사업계획지역(뒤)과 인접한 예리 마을 모습이다.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흑산도(黑山島). 검은 산의 섬이라는 뜻이다. 산과 바다가 검게 보일만치 푸르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혹자는 큰 산이라는 의미의 '검뫼'를 한자로 잘못 차용하면서 흑산이 되었다고도 해석한다. 여기서 중요한 건 산의 색이나 크기가 아니다. 섬의 대부분을 이루는 것이 산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예리마을 주민들의 삶을 깎고 파괴해 지어지는 것

산 위에 공항을 지을 수는 없다. 공항, 특히 활주로 공사를 위해서는 산을 깎아내는 일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흑산공항 계획의 첫 번째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흑산도의 중심부에 자리 잡고 있는 대봉산 일대를 모조리 깎아 활주로를 만드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대봉산 너머에는 주민들이 모여 사는 예리마을이 있다. 대봉산이 예리마을의 방풍림 역할을 해주고 있었던 셈이다. 지형적 조건 때문에 바람과 해일과 태풍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이 섬의 마을 사람들을 지켜주고 있었던 게 대봉산이다.

이 산이 사라지고, 대신 공항이 지어진다면 마을은 어떻게 될까? 오래도록 마을을 가꾸고 마을에 기대어 살아가던 이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 마을에도 드디어 비행기가 들어오게 됐다며 마냥 기뻐할까? 아니면 태풍이 불어닥칠 때를 늘 염려하며, 언제 어떻게 대피를 해야 할지 몰라 불안과 공포에 떨게 될까?

"예리마을의 주민들은 태풍에 완전히 취약해요. 7, 8, 9, 10월에 오는 태풍에요. 항상 그래요. 제가 여기서 28년째를 살았는데, 큰 태풍이 올 때마다 막 지붕들도 날아가고 주민들이 엄청나게 피해를 많이 봤어요. 그런데 그 산까지 깎여버리면 태풍을 막아주던 것 자체가 없어지는 거예요. 그게 방파제 같은 건데, 방파제 없이 파도가 몰아치면 그 피해는 다 누가 보겠어요?"

흑산도에서 28년을 살아온 김선복 주민의 이야기다. 그녀는 예리마을이 처한, 보다 구체적인 어려움도 들려주었다.

"주민들 사는 곳들이 전부 다 40~50년도 더 된 집이에요. 옛날식 슬레이트 지붕으로 돼 있거나, 양철만 덮어서 생활하는 데가 많이 있어요. 볼라벤이나 매미 같은 큰 태풍이 앞으로 오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잖아요. 지구 온난화는 계속되고 바다 수온은 높아가고 그럴수록 태풍도 더 많이 발생할 거잖아요. 그럼 그런 약한 집들은 어떻게 될지..."

흐려지는 말끝에 마음을 얹어, 그 약한 집들에 대한 상상을 한다. 그 집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사람들, 다음에 올 태풍에도 여전히 그 집에 머물러 있을지 모를 사람들에 대한 상상을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흑산공항을 추진하는 동안 주민들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처음 내세워진 주된 논리가 건강권을 포함한 주민 생존과 생계의 문제였다는 점이다. 흑산도 예리마을 사람들이 태풍과 해일의 위협에 수시로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침묵한 채로 말이다.

배가 뜰 수 없는 기상 조건이라면 비행기도 결항될 수밖에

예리마을의 문제를 말하지 않고도 짚을 문제는 많다. 주민 건강권 운운의 핵심은 응급 의료 처치를 위한 이동 수단을 확보하자는 것이었다. 흑산도 내에는 종합병원이 없기 때문이다. 목포까지만 하더라도 두 시간이 걸리고 하루 네 번밖에 운행하지 않으며 그마저도 결항이 잦은 선박편은 위급한 환자를 이송하는 데 맞지 않다. 그래서 비행기가 필요하고 공항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흑산공항 토지이용계획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계획변경(안), 2018.2.
ⓒ 다도해해상국립공원
그러나 배가 뜰 수 없는 기상 조건이라면 비행기도 결항될 수밖에 없다. 또한 흑산공항은 위성 장치의 정확한 계측을 통한 자동 운행을 하는 '계기 비행' 대신, '시계 비행' 기준으로 설립되는 공항이다. 사람이 맨눈으로 앞을 보고 수동으로 비행기를 조종해야 한다는 뜻이다. 고도의 기술과 훈련이 필요하고,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 시계 비행 방식을 도입한 공항은 전무하므로, 시계 비행을 할 수 있는 비행사 역시 드물 것이다. 만일 이 기술을 가진 이가 늘어난다고 하더라도, 비·바람·안개가 그 어떤 공항 및 공항 예정지보다 강도 높고 빈번한 흑산도에서라면 결항률이 얼마나 높을지 알 수 없다.

ATR 기종으로 시계 비행, 괜찮을까?

문제는 또 있다. 흑산공항은 애초 ATR 기종 중 50인승 항공기를 기준으로 활주로를 고안했다. 그런데 해당 기종이 더는 생산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 국토부가 이를 80인승(ATR72) 기종으로 바꿨다. 활주로 확장이 필요해졌다. 공항 등급을 최소 한 등급 이상 높여야 하는 상황인 것.

국토부는 활주로 길이는 현재(1.2㎞) 그대로 유지하고 착륙대만 확장하는, 최소의 등급 상향 방안을 선택했다. 이 등급에 맞추면 예산은 덜 늘어날 수 있지만, 여전히 계기 비행은 불가능하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의 정인철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현재 항공사 근무하시는 비행사분들과 인터뷰를 많이 나눴어요. 그분들이 하시는 말씀을 그대로 인용하면, 미친 짓이라고, 어떻게 사람들을 프로펠러 비행기에 태우고 시계 비행을 해서 이착륙할 생각을 하느냐고, 나머지는 논할 것도 없다고 말씀들 하세요. 그리고 당연히 본인들도 위험하죠.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요. 다른 일할 곳도 많은데 굳이 그런 위험까지 감내하면서 비행기 몰고 돈 벌 생각을 할까 싶어요."

ATR 기종은 기체 내 결빙을 해소하는 데 취약하다는 결함이 존재하는 등 안전성 논란이 제기되어 왔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이 2022년 발행한 <흑산공항 추진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ATR 기종의 경우, 최근 10년간 9건의 사고가 발생했다. 인명 피해가 발생한 경우가 6건이었는데 이 중 기계적 결함에 의한 사고가 3건이었다. 그리고 탑승 인원 전원이 사망한 경우 또한 3건이나 되었다.

보고서 발행연도인 2022년 이후에도 사고는 있었다. 2023년 1월에 72명이 탑승한 예티항공 ATR72가 네팔 카스키 지구에서 추락해 71명이 사망하고 1명이 실종되었다. 탑승했던 이들 모두가 희생된 것이다. 2024년 8월에는 62명이 탑승한 보이패스 ATR72가 브라질 상파울루주 지역 주택가로 추락했고 이 또한 전원이 사망했다.
 지난 2024년 8월 10일 브라질 상파울루주 비녜두에서 62명이 탑승한 비행기(브라질 항공사 보이패스의 ATR72 기종)가 추락한 현장의 잔해.
ⓒ AP/연합뉴스
누가 위험과 공포에 탑승하겠는가

'조류 및 야생동물 충돌위험감소에 관한 기준'에 의하면, 흑산공항 부지 8km 이내에는 있어서는 안 되는 시설이 무수히 속해 있다. 조류보호구역, 사냥금지구역, 호수 및 늪지 등. 특히나 공항 부지는 국립공원이었던 구역을 끼고 있어 더욱 그럴 수밖에 없다. '국립공원이었'다며 과거형으로 말하는 이유가 있다. '흑산공항의 빠른 추진'은 윤석열의 대선 공약이었다. 때문에 흑산공항 추진에 걸림돌이 된다는 이유로 2023년, 공항 부지에 해당하는 구역이 국립공원에서 지정 해제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이를 별개로 두더라도, 흑산공항 부지는 동아시아-대양주 철새이동경로에 포함된, 국제적인 보호가 필요한 구역이다. 또 흑산도와 홍도는 국내 철새 개체의 80%가 쉬어가는 곳이다. 조류 충돌 위험은 당연히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전략환경영향평가 보고서에도 물새류, 맹금류의 비행기 충돌 위험이 클 것이라 명시하고 있다. 이에 대한 대책은 제시되지 않았다.

이처럼 심각해 보이는 조류 충돌 위험 지표에도, 정인철 사무국장을 비롯한 전남지역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은 말한다. 조류 충돌의 위험보다 항공기 기종과 운행 방식에서 기인하는 위험이 훨씬 크다고. 상시적으로 안개가 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흑산도에서, 조종사의 시력·판단력과 좋은 컨디션만을 전적으로 믿고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위험과 공포에 탑승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아닐까.
 흑산도 일대 모습
ⓒ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모두를 위해 여객선 공영화가 시급하다

그렇다면 대안은 무엇일까. 정인철 사무국장과 김선복 주민은 여객선 공영화를 강조한다. 정인철 사무국장은 응급 의료를 위한 닥터헬기 도입이 필요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다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 우리 도시에서 버스 타고 다니는 거 다 공영제잖아요. 지하철, 버스, 기차... 육지에 사는 사람들은 그 혜택을 보고 있는 거예요. 요금이 조금씩 인상되고는 있지만 그래도 안정적이고 편리하게 이용하잖아요. 흑산도의 경우는 주민 선박 요금 자체는 싸요. 문제는 여객사들이 대부분 선박을 돌려쓰다 보니, 상태가 너무 안 좋은 배들만 다닌다는 거예요. 그러니 날씨 조금만 안 좋으면 안 뜨죠. 서비스와 안전성 모두 (주민들이 느끼기에) 최악이에요. 당장 이걸 개선해 주는 게 섬 주민들에게 절실해요. 그래서 공영제가 필요한 거예요."

김선복 주민은 더욱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주었다.

"주민들한테는 뱃값 천 원 받아요.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주의보가 내려지는, 바람의 기준 초속이 있다고 쳐요. 배 안 뜨는 기준이요. 그 기준에 못 미치는데도 사람 좀 없다 싶으면 여객사에서 예비 특보를 때려버리는 거예요. 그러고는 운항 안 해요. 외부인들에 대한 여객선비 문제도 커요. 국내 여행은 이동 교통비가 여행지 결정에 영향을 많이 주잖아요. 근데 지금 목포에서 흑산도 오는 편도 여객선비만 거의 4만 원이에요. 이렇게 비싸면 다 제주도 가지 여기 안 오거든요. 여객선 공영제를 해서 관광객들 요금을 낮추는 방법밖에 없어요. 그리고 비행기 뜨면 흑산도 코스는 더 짧아져서 1박도 안 하고 잠깐만 있다가 바로 홍도로 가겠죠. 흑산도는 원래부터 홍도 가는 경유지였거든요. 결국 우린 더 안 좋아져요."

앞서 50인승 ATR 비행기가 단종된 탓에 80인승 기종으로 변경하면서 활주로 착륙대를 확장하는 계획이 발표되었음을 언급했다. 이로 인해 예산은 애초 1835억 원에서 6700억 원으로, 무려 3배 이상 증액되었다. 증액된 예산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심의를 거쳐야 한다. 타당성재조사 과정을 밟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이번 타당성재조사가 흑산공항 전면 무효화를 위해 주어진 문턱일 것이라 믿는다. 흑산도 주민의 삶을 구하기는커녕 위험에 담보 잡히는 사업이 추진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기에. 흑산공항의 무효화는 하나의 뜻깊은 응답일 것이다. 흑산도 주민뿐 아니라 흑산도의 과거와 지금과 미래를 지키고 싶은 이들, 흑산도와 연결된 모든 존재들을 지키고 싶은 이들에 대한 응답 말이다.

[필자 소개] 희음: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노동을 하며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난다. 이 땅 위의 모든 존재들의 삶이 살 만한 것이 되려면 어떤 저항과 목소리와 돌봄이 필요한지 더듬어 찾는 중이다. 시집 <치마들은 마주 본다 들추지 않고>, 그림책 <무르무르의 유령>을 펴냈다. <김용균, 김용균들>, <우리 힘세고 사나운 용기>를 함께 지었다.

덧붙이는 글 | 공동진행 : <(사)세상과함께>, 익천문화재단 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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